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살찌고 있는 가을

세칸 2007. 8. 31. 03:58

살찌고 있는 가을

 

지난 느낌이란 항상 그런지도 모르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지 싶습니다.

그런 무더위도 절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처서'를 넘기더니 풀이 꺽이고 꼬리를 내렸습니다.

며칠 전국적으로 계절에 걸맞지 않고 반갑지 않은 폭우가 내려 피해를 입은 지역도 있다 합니다.

결실과 수확을 앞두고 경작한 수고가 물거품이된 그 허망한 마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니 자연재해니 하며 말들이 많지만 어찌보면 사람에 의한 결과일 것입니다.

인재를 천재로 책임을 전가해야 마음이라도 덜 답답하고 하늘에다 주먹질하는 하소연이라도 해 볼수 있겠기에 그렇지 싶습니다.  

넓은 길을 좁히거나 길을 막아버리면 논이나 밭, 집마당이 길이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물길을 막아 수해를 입은 뒤에 천재를 운운함은 이와 같은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코미디언이 "지구를 떠나거라~"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별 의미도 없겠지만 한편으론 지구는 참 편안 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가, 경제가 문제란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환경과 자연생태가 더 크고 시급한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배 부르구만"하는 이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가치는 여기에 있음이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풀과 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어쩌면 농사란 풀과의 전쟁인지도 모릅니다.

감나무 밑의 풀이 무릅까지 크도록 내버려 뒀습니다만 더 이상은 방치하기가 남새스럽고 난감하여 베어냈습니다.

제초재를 뿌리기는 싫고 베어내기도 만만찮아 두꺼운 부직포를 깔아 뒀습니다만 풀들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부직포를 가을에 걷어내어 말리고 봄에 다시 깐다면 좀은 덜 하겠지만 이것도 만만찮은 노동이고 혼자서는 싶지도 않습니다.  

 

며칠전, 감나무 밑의 풀을 베다 비를 만나 중지 했다가 오늘 마저 베어 냈습니다.

예초기를 꺼낸김에 마당이나 진입로 주변의 잔듸도 깍아 냈습니다. 예초기로 잔듸깍기! 참 재미 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풀베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초기로 풀베기는 돌이 많은데나 조경수 사이사이의 좁은데가 성가시고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자주 하다보면 요령도 생기고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게도 됩니다. 어쩔수 없이 더러는 잔돌이 무릅아래를 때리기도 하여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가을은 봄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꽃도 봄꽃과는 다르고 나무도 그렇습니다. 풍만하고 완숙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농사 짖지 않는다면 부추(정구지)꽃이 하얀줄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 베어먹진 못했지만 정갈함이 느껴지는 흰꽃을 구경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경상도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향신채인 방아 랍니다. 새순잎을 따서 된장찌게, 민물매운탕이나 추어탕, 멍멍탕 등등에 넣습니다.

꽃은 보라색이고 자루모양으로 뭉쳐서 핍니다.

 

땅콩 두고랑. 땅콩 즐겨 드시죠? 모양이 어떤지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호박. 잎으로는 쌈을, 애호박은 된장이나 나물로, 늙어서는 떡이나 범벅으로 온갇맛을 꾸준히 줍니다.

구덩이 10여개면 친구나 친지들이 같이 먹어도 남는 별 손도 가지않는 채소중의 채소랍니다.

 

2년전에 심은 배나무에 배가 열린게 아니라 달렸습니다. 봉지 속에 있는 놈은 조금 더 큽니다만 크는게 하루가 다릅니다.

 

단감. 이 놈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많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가지가 찢어지지나 않을지.....추석 전후의 태풍만 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그게 어디 마음같이 되겠습니까!

가지가 땅에 닿은 것도 있습니다. 수정뒤에 바로 쏙아 내기를 해야 되지만 그 일 또한 만만찮은 일입니다.  

  

종류가 다른 단감입니다. 크기와 당도도 맛도 더 좋습니다. 경상도에서 '도~감'(동이,독)이라 부른답니다. 

 

가지가 찢어질듯 하지만 나름의 요량은 하고있지 싶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기도 합니다.

 

잎이 가리지 않아 햇빛을 본 놈은 그을렸는지 익어가는지 색이 다릅니다. 

 

수세미. 요즘엔 별 소용도 없지만 예전에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잎은 '박'이랑 비슷합니다만 꽃색은 다릅니다.

진순이가 사진찍는 모습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메어 놓을 수 없는 강아지를 기르는 우리안에 갇혀 있습니다.

 

메실나무 사이의 채전(채소밭)입니다. 상치와 근대등 여름 채소를 뽑안내고 가을 상치와 열무, 배추를 심었습니다.

베어낸 풀로 덥어둔걸 새싹이 돋아난걸 보고는 아침에 걷어냈습니다. 

 

쪽파도 한고랑 심었습니다. 메실은 5~6M 간격에 한 구루를 심습니다.

메실밭 아래는 상당한 면적의 유휴공간이 있으므로 채전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단풍은 분명한데.....씨앗이 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열려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단풍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을 주시면 고맙겠지요!

 

오후 3시에 과수원의 풀베기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풀베기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1년에 한번 하는 산소의 벌초가 남았습니다.

날씨도 흐릿하니 일하기엔 그만이라 고향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농장에서 30분 이면 넉넉하답니다.

산소의 벌초는 그리 급한게 없지만 제 시간이 어찌될지 알 수 없어서 가능하면 서둘러 처리할 심산입니다.

여덟 상구(군데)의 산소도 산소지만 진입로가 더 일이 많고 큰일 이기도 합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고향의 들머리에 들어서니 기어코 한줄기 하고 맙니다.

앞에 보인는 곳부리가 예전의 뱃머리가 있던 곳의 윗쪽쯤 입니다. 앞과 뒤의 물줄기가 모여 합수하고 큰산 밑의 회동동으로 흐릅니다.

언덕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다 철수 했습니다.

 

요즘의 젊은 친구들은 핑게도 많고 변명도 가지가지 다양하기도 합니다.

1년에 한번인 산소의 벌초를 얼추 10년을 거의 혼자 하고 있습니다. 8상구, 휴발유 10L를 소비하는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하루에 2상구를 꼬박 나흘은 해야 하는 강행군 입니다만 그리 힘들다 생각은 않고 재미나게 하고 있습니다.

 

간혹 벌초를 못하여 묵혀둔 산소를 대하곤 합니다. 사정이 얼마나 딱하여 이 지경이 됐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때만 해도 사내 아이를 낳으면 '벌초꾼 보탰다'는 덕담아닌 덕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존재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1년에 한번, 하루 정도의 시간은 윗분들을 돌아보는 것도 무의미 하지민는 않을 것입니다.

 

이 가을의 문턱을 넘으며 고맙고 따뜻한 마음을 품어봅니다.

그 어려운 시절, 밥 맛이 별로라며 덜어주시던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이 새삼 생각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이지만 열린 생각으로 마음이라도 가을처럼 살찌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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