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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지닌 기업, 세계 속의 종합목재회사

세칸 2007. 8. 24. 13:29
혼을 지닌 기업, 세계 속의 종합목재회사

 

“기업도 하나의 생명체다. 혼이 없는 기업은 생명이 없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선창산업의 정해수(77세) 회장의 말이다.
선창산업은 지난 1959년 창업, 45년 간 끊임없는 변화와 격동 속에서도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만하지 않으며 겸손한 자세로 의연히 합판업계를 지켜가고 있는 기업이다.
정 회장을 회장실에서 만나 그의 사업관과 기업의 성장배경을 들어봤다.

 

Image_View성창기업은 우리나라 합판산업을 일으킨 기업으로 알고 있는
데 태동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친께서 일제시대 때 봉화에서 삼척탄광에 갱목을 납품한 것이 목재사업의 시작이었다.
합판공장을 한 것은 해방 후인 1948년으로 대구에서다. 일본인 기술자가 만든 합판기계를 사서 대구에 합판공장을 세운 것이 합판사업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춘양목으로 합판을 만들었다. 국내서 만든 기계들이므로 형편없었다. 작두 비슷한 것이 클립퍼이고, 풀도 ‘콩풀’을 썼다. 말로만 합판이었지 보잘 것이 없었다.
그래도 종업원은 100여 명이나 되었고 생산성은 좋지 않았으나, 가동은 꾸준히 되었다.
그러다가 6.25를 맞아 가동이 중단되었다. 1951년 인천의 대성목재는 폭격으로 파손된 기계 일부를 제주도와 마산에 갖다 놓고 있었는데, 그 기계를 모두 사서 대구공장으로 옮겨 다시 합판공장을 가동했다.
그때도 아직 수입원목이 없었을 때라 춘양목으로 합판을 만들었다. 드라이어도 없이 햇볕에 말렸다. 핫 프레스도 없어 인공 가압기로 접착을 했으며 쎈더 대신에 손으로 페이퍼를 밀어 합판의 결을 곱게 다듬었다.


남양재는 언제부터 수입했는지
1952년 정부는 남방의 원목을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원목수입 업무를 외자청이 담당했다.
정부가 보유한 달러로 원목을 수입해서 합판회사들에게 입찰로 불하 해줬다.
이때 성창기업도 빠짐없이 원목 불하 입찰에 참여했다. 당시 대성목재, 삼미사는 많은 양을 불하 받았지만, 성창기업은 기만 달러 정도 불하 받았다. 기만 달러이라야 2∼3만달러 정도지만 그때 2∼3만달러는 매우 큰 돈이다.
당시 정태성 회장은 대구공장을 가동하면서도 항상 항구가 있는 부산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956년 부산의 대동산업 창고 부지가 매물로 나왔다. 부친은 바로 그 부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새 기계를 도입해 공장을 지었다. 그때 나는 경리과장을 했었다. 부산 공장에서는 요소수지를 썼고, 열압도 했고, 종업원이 400여 명이나 됐다. 그때 우리가 한국 최초로 미국에 수출을 했다.
1958년 8월에 합판을 수입해 간 미국회사는 U.S.Plywood였고, 수출액은 3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나라 합판수출의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정해수 회장은 그때 선친과 태종대에 올라 망망대해로 빠져나가는 미국상선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던 기억이난다며 잠시 고개를 젖히고 회상에 잠긴다.)


선창산업의 초창기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우리 회사는 처음에 답십리에서 연탄공장과 비료공장을 하다가 67년 5월 소규모 합판공장으로 시작했다.
일산 2만매 생산능력의 공장이었는데, 공장가동 2년만에 5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다음해인 70년에는 수출목표량을 초과 달성해서 서울시장상도 수상했다.
이렇게 급성장한 선창산업은 71년 인천에 2만여 평의 부지를 확보해서 공장을 이전했다. 서독과 일본에서 합판기계를 도입해서 공장을 지었는데 8개월이 걸렸다.
72년 들어 수출액은 1천만 달러가 넘었고 종업원 수도 2천 명에 달했다.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73년에는 가구생산에도 손을 뻗쳐 ‘썬퍼니쳐’라는 상표로 국내판매는 물론 해외수출까지 했다. 삼영하드보드 회사를 인수해 경영을 일신했고, 74년에는 포르말린 공장 건설, 95년에는 MDF공장건설, 2001년에는 MDF 제2공장을 건설하는 등 날로 발전해 나갔다.


뉴질랜드가 원목수출을 줄이고 가공재 위주 수출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라디아타 파인을 항만과 가까운 구릉지에 조림해서 도로가 바둑판 같이 나 있고, 항만까지 끌어 내오는데 1시간 밖에 안 걸린다.
뉴질랜드 임상으로 봐서는 자기네들이 다 쓸 수도 없고 지금같이 벌채해서는 앞으로 성장하는 것을 모두 못 베어낸다. 가격을 올리려고 하는 얘긴지 모르겠다.

 

합판업계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
사실 어둡다. 그런데 어둡다 한 것이 20년이 돼 가고 있다.
침엽수를 사용한 것이 벌써 10년이 다 돼가고 있다.
현재까지 해왔지만, 꾸준히 욕심 안내고 하면 손해 볼 일도 크게 없다.
욕심을 내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김상혁 편집위원 shkim@wood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