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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 소원은 텃밭 한뙈기?

세칸 2007. 7. 14. 20:34

도시인 소원은 텃밭 한뙈기?

황토집과 텃밭이 담아 낼수 있는 것은 제한적

 

 

오전 내내 풀을 뽑았다. 풀을 뽑아서는 뿌리의 흙을 털고 고추두둑에 나란히 깔아 주었다. 감자밭에도 풀을 깔아 주었다가 동네 할아버지가 감자에는 아무것도 깔지 말라고 해서 다시 걷어냈다.
가지와 토마토, 그리고 오이와 옥수수 주위는 풀을 뽑지 않고 낫으로 베어 깔아 주었다. 풀이 뽑을 수 없을 만큼 자랐기도 해서지만 뽑지 않아도 덮어주기만 하면 더 이상 풀이 안 자라기 때문이다.
조심을 한다고 했는데도 호박넝쿨 한 줄기를 부러뜨렸다. 여리디 여린 호박줄기가 손이 닿자마자 톡 하고 부러져버린 것이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부러진 호박 줄기를 맞대어 보다가 꺾꽂이하듯 묻어 주었다. 부러진 호박줄기에서 나온 투명한 수액이 피 같았다.

황토집에서 텃밭 가꾸며 살고싶은 도심들
낮에는 늘어지게 한숨 잤지만 아직도 햇볕이 뜨거워 밀쳐놨던 잡지들을 다시 이것저것 들추다 보니 이곳 지방 시사잡지에 아는 후배 글이 보인다. 그 잡지의 편집장이 역시 아는 후배인데 두 사람도 서로 절친한 사이라고 들었다. 아마 그 인연으로 글이 실렸나 보다. 이 후배 글은 경제정보를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 한 것이었다. 글 끝 부분에서 "한적한 시골에 황토집 하나 지어 작은 텃밭 가꾸며 살고 싶다"고 했다.
당장 그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시골 갑갑해서 못 산다더니 왠 텃밭이야. 너 변심했구나"라고 한바탕 했다.
그 후배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형, 요즘은요. 글이 품위를 갖추려면 그런 식으로 농사니 황토집이니 하는 말을 한마디 해야하는 것 아녜요?"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갖고 싶은 게 펜티엄 노트북에 번듯한 승용차가 제일인줄 알아 왔는데 이제는 '시골에 땅마지기나 장만하여 텃밭 일구며 사는 것'이 요즘 사람의 소박한 꿈이 되어 있구나 싶었다. 꿈이란 이루어지는 순간에 꿈이 아니니까 황토집과 텃밭이 영원한 도시인의 꿈으로 머무르고 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도시를 망가뜨린 그 솜씨들이 시골까지 침범?
우리 동네에도 보면 전주 시내에서 매주 일요일이면 와서 밭을 매는 중년 부부가 있는데 엊그제도 고추 심은 밭에 풀도 별로 없건만 농약을 마구 뿌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하긴 했지만 농약을 뿌리다보면 마스크마저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실정이라 내 숨이 다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 부부가 자신들의 '소박한 꿈'에 스스로 독약을 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이 가서 인사를 건네고 밭을 둘러 봤더니 왠걸. 고추에 진딧물이 번지고 있었다. 작년 탄저병 때문에 불을 싸지르고 했지만 이번에는 벌써 진딧물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밭 주인은 앞으로 고추를 따 낼 때까지 제초제 한번 더 뿌릴 것이고 탄저병 예방약도 뿌릴 것이다. 솔직히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로 옆 동네에는 싼 땅 구해서 유럽 별장처럼 집을 지어 놓고는 담장에 철조망까지 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깬 유리조각을 촘촘히 세워 둔 것도 모자라 철조망을 삥삥 쳐 놔서 동네를 완전히 망쳐 놓았다.
도시를 다 망가뜨려 놓은 사람이 이제는 시골까지 망가뜨리려고 한다는 경계를 품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풍경이다.
콩을 심을 곳에는 풀을 걷어냈다. 언제 잔뜩 흐린 날을 골라서 심든지 아니면 해거름 판에라도 심어야 하기에 메주콩을 시루에다 넣고 물을 주고는 삼베 수건으로 덮어두었다. 한 사흘 지나서 싹이 나면 그때 심을 것이다.
들깨를 심기 위해 미리 땅을 고르는 작업도 했다. 그래야 비가 오면 열일 제쳐 두고 들깨 모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들깨는 병도 없고 해충도 없다. 취도 그렇다. 강한 향내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섞어짓기를 하기에 좋은 작물이다.
이때 문득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가 한 말의 뜻이 생각났다.
감자는 원래 건조하고 물이 잘 빠져야 하는 작물이라 풀을 덮으면 습기 찬다는 것일 게야. 그래서 할아버지의 감자농사법에 감자밭에는 아무것도 덮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시골은 공기나 물이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우리집을 찾을 때도 처음에는 으레 애들 먹을 과자 한 보따리와 맥주박스, 그리고 시뻘건 생고기를 사 들고 왔다. 나는 몸에 시멘트라도 발라놓은 듯 굳어져버린다. 마당에 불판을 걸쳐놓고 역겨운 고기 굽는 냄새 속으로 소시민의 허름한 푸념들을 양념 삼아 허풍도 떨고 의기투합하여 건배도 외치기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좀 달라지는 느낌이다.
고기와 술로 생겨나는 탁한 기운이 맹렬하게 전신을 휘감고 있는 동안 내 영성은 오물을 뒤집어쓰는 느낌이 그것이다.
붉은 갓 상추와 치커리, 쑥갓과 봄당근을 뽑아 소쿠리에 담았다. 밭둑에 있는 씀바귀와 뽕잎도 따 담았다. 요즘 저녁으로는 커다란 냉면 그릇에 온갖 야채를 썰어 넣고 당근이나 고구마, 무같은 구황식품도 잘게 썰어 넣고는 생채식을 한다. 특히 깨끗하게 농사지은 들깨기름을 덤뿍 부어서 생채를 비벼 먹으면 뿌득뿌득 몸에 생기 도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들깨 모종을 붇고 보니 들깨가 두말정도 남아서 깨끗이 �耉� 두었다. 읍내 장에 가서 들기름을 짤 생각이다. 이번에는 볶지 않고 그냥 생 들기름을 짜 볼 생각이다. 고소하기는 덜해도 생 들깨 냄새가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소쿠리가 가득 채워지는 걸 보면서 시내 후배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시골에 작은 황토집 하나 짓고 텃밭이나 가꾸는'것이 지친 도시인들의 퇴영적이고 과분한 탐욕이 아니기 위해서는 새 소쿠리에 뭘 담아야 할까? 그야말로 소박한 꿈이 되려면, 참으로 값어치 있는 새 생활이 되려면 뭘 버리고 뭘 주워 담아야 할까.
채소와 당근 등속으로 채워진 소쿠리를 들여다보며 어두워진 논둑 길 따라 돌아오면서 떠 올려 본다. 시골은 공기나 물이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살기위해 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황토집과 텃밭이 담아 낼수 있는것은 너무나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마당까지 시멘트를 바른다거나 비싼 잔디를 깔고는 거름자리 하나 둘곳이 없어서는 굳이 황토집을 지을 이유가 없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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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기자 nongju@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