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

세칸 2007. 7. 9. 20:28
 
자주 들락 거리며 눈여겨 보아 왔지만 오늘은 유독 아래의 두 글이 마음에 와닿아 담아 왔습니다. 
누구나 잘 세겨 보아야 할 글이라 생각하며 저 또한 살아 있는 동안의 경계해야 할 경구로 삼습니다.
옛글이 고리타분 할 수도 있겠으나 '뼈에 새겨도 아프지 않음'은 그 가르침이 오늘날이라 해서 다르지 않기 때문 입니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라 감히 一讀을 권합니다.
 

 

  

집안 간의 화목
 
사람들은 처자를 사사로이 여겨 자기의 소유로 생각지 않는 이가 없다. 이밖에는 아버지의 형제나 자신의 형제라 해도 밀쳐내어 도외시한다. 이에 화초나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혼자 가만히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마침내 내 소유가 될까? 아니면 저 사람이 대대로 전하는 것이 될까?” 내 것이 될 것 같으면 지켜 보호하고, 남의 것이 될 것 같으면 흘깃 보고 만다. 기와 하나가 깨져도 큰 집이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도 이를 내버려 두고, “저것은 나와는 먼 친척들이 기거하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돌멩이 하나만 뽑으면 큰 방죽의 물이 다 빠져버린다. 그런데도 내버려 두고, “저것은 나와는 먼 친척이 물을 대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종이 한 장을 얻으면 돌아와 아내 방의 창문을 바른다. 널빤지 하나가 생기면 가지고 와서 자식의 책상을 만든다. 잗달고 자질구레해서 마음 씀씀이가 간사하고 세세하다. 재산을 모아서 집안의 바탕을 두터이 하기를 바라면서, 덤불이 타고나면 여우와 토끼가 어디에 살며, 못이 다 말라버리면 물고기가 어찌 살며, 연곡(蓮谷)이 무너지면 온 집안이 어느 곳에 의지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윤종문, 종직, 종민에게 주는 말[爲尹鍾文鍾直鍾敏贈言]〉   

人莫不私其妻子, 以爲己有. 自此以往, 雖諸父兄弟, 推而外之. 於是播一草壅一木, 必默自商量曰: “是終爲我有乎? 抑爲彼所傳世者乎?” 我則護之, 彼則睨之. 一瓴觖則大厦將崩, 舍之曰 : “彼唯我疏屬之所寢興也.” 一礫拔則大陂將竭, 舍之曰: “彼唯我疏屬之所灌漑也.” 得一張紙, 歸而補妻之牖, 獲一㭊木, 歸而造兒之案. 璅璅屑屑, 用心奸細. 冀以聚其財產, 厚其基業, 不知藪之旣焚, 狐兎焉宅; 池之旣竭, 鯤鮞奚穴; 蓮谷其顚, 擧族何依.


손은 안으로 굽지 밖으로 휘는 법이 없다. 물론 제 처자식이 아깝고 귀하지만, 제게 딸린 식솔만 귀하다 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울타리를 지켜 나가는 마음, 화합으로 서로 보듬고 토닥이는 정신이 필요하다. 나 하나만 잘되면 되고,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는 큰 번영을 이룰 수 없다. 집안이 잘 되려면 형제간 화합이 우선이다. 제몫만 챙기려 들고, 남 생각할 줄 모르면 결국은 분란이 일어나, 피를 나눈 형제 사이에도 깊은 골이 생긴다. 연곡(蓮谷)은 해남 연동(蓮洞)을 가리킨다. 연동의 종가를 중심으로 일가가 단합해서 함께 번영할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 글이다.
 

 

 
사치를 경계함

즐거움은 지나치게 베풀어 줌이 없고, 복은 과도하게 도타운 법이 없다. 어떤 이는 얼어 굶주리고, 어떤 이는 비단 옷에 귀한 음식을 먹는다. 네가 짠 것도 아닌데 어이 아롱진 비단옷을 입고, 네가 사냥한 것도 아니면서 어이 살진 고기를 도마에 가득 얻어 놓는가? 열 집 먹을 양식으로 어찌 한 입을 기르며, 한 달 먹을 양식을 왜 하루에 다 먹어 치우는가? 바야흐로 풍족하고 넉넉할 때에는, 너는 어깨를 으쓱대겠지. 백성들은 “저 사람 참 야박하고 잘났구나.” 할테고. 그러다가 몰락해서 재물이 흩어지면, 뉘 감히 다시금 거들먹거릴까? 거친 쌀로 밥 해먹고, 남루한 옷 나부낄 때, 백성들은 “저 사람 지금 어찌 저렇듯 고달플까?” 이렇게 말하면서, 처자식을 데려와서 손가락질을 하며 경계하리. 즐거움은 누림을 급히 하지 않아야 늙도록 이어지고, 복은 다 받지 않아야만 후손까지 미친다네. -〈사잠(奢箴)〉
  
樂無偏畀, 福罔偏篤. 孰凍而餒, 孰錦而玉. 汝所不績, 胡纈以(黹+盧). 汝所不畋, 胡肥盈俎. 十家之療, 胡養一口, 三旬之給, 胡罄卯酉. 方粲方錯, 汝乃昂肩. 民曰彼哉, 何佻何儇. 旣落旣散, 疇敢復驕. 疏糲其饞, 襤褸其飄. 民曰彼哉, 今何卒憊. 拓厥婦子, 指以爲戒. 樂不亟享, 延及耄昏. 福不畢受, 或流後昆.


복락(福樂)을 끝까지 누리려 들지 마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사치는 끝간 데를 모른다. 하나를 가지면 더 갖고 싶고, 더 갖고 나면 다 갖고 싶다. 즐거움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된다. 곶감을 빼어 먹듯 아껴아껴 즐겨라. 복은 조금 부족한 듯 누리는 것이 옳다. 나 혼자 다 누려 자손에게 갈 복까지 다 빼앗아 버려서는 안 된다. 있을 때 더 나누고, 넉넉할 때 아껴 쓸 줄 알아야 한다. 베풀면 더 풍족해지고, 나누면 더 커진다.
 
 
윗글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의 옛글 공부방[옛글의 뜻과 정]-마음 속 옛글
[다산어록청상]에서  담아 왔습니다. http://www.hykorea.net/korea/jung0739/
윗 단락은 원문의 국역이고, 중간은 원문이며, 아랫단은 정민 선생의 해설 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형제간 또는 일족끼리의 재산다툼으로 집안이 온전히 남은 예가 없습니다.
적은 재물로 큰 뿌리를 상하게하는 우를 범함이 오늘날에만 있는 현상이 아님에도 교훈으로 삼지 못함이 안타깝다 할 것입니
다. 적게는 가족간의 문제고 크게는 사회적, 국가간의 문제도 될 것입니다.
'三代부자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 통제나 절제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입니다.
부정하고 사악한 축재는 후대에서 손가락 사이로 새 나가 버리고, 혀 끝에서 녹아버리며, 방탕과 사치로 재물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후손까지 망쳐 버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의 뜻을 안다면 아래의 말을 교훈으로 삼아 실천함이 자신이나 후대를 위해서뿐 아니라 따뜻하고 건강한 사회
를 위해서 새기고 새겨야 할 덕목이기에 정민선생의 말을 사족으로 그듭 덧붙입니다. 
[있을 때 더 나누고, 넉넉할 때 아껴 쓸 줄 알아야 한다. 베풀면 더 풍족해지고, 나누면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