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서민들의 여름반찬

세칸 2007. 7. 11. 13:37

제가 자주 들락거리는,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블로그의 주인장이 호박잎 쌈을 소개하는 게시글에 '콩잎 쌈도 요즈음 계절에 빠질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자세한 레시피를 알려 달라는 답글이 있었답니다.

레시피....제가 집 짓는 레시피야 잘 알지만 음식 레시피야 남에게 알려 줄 수준이 아니라 안에다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레시피를 들은되로 적어 보겠습니다.

질기지 않은 부더러운 콩잎을 따와, 잘 씻어 물기를 빼고 먹기 좋게 잎자루를 가지런히 하여 묶음을 만듭니다.

양파는 길게 채썰고 청고추 홍고추도 썰어 놓습니다. 밀가루 풀이나 찹쌀 풀을 쑤어서 물을 보충하여 훌렁훌렁할 정도로 해 식힙니다.

적당한 용기에 콩잎을 담고 식힌 풀물에 양파, 청,홍고추, 다진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간히 간하여 붓습니다.

콩잎이 잠길 정도로 붓고, 콩잎이 떠 오르지 못하게 눌러서 요즘은 2~3일 밖에서 익히고 냉장고에 보관하여 먹는 답니다.

너무 익혀 시어지면 신선한 맛을 못보실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 보니 열무 물김치 담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다르다면 고추가루를 조금도 쓰지 않는다는 것일 겁니다. .......음식 레시피! 좀 쑥스럽네요.ㅋㅋ

 

콩잎 김치, 또는 콩잎 물김치라 부른답니다.

김치처럼 먹어도 되겠지만 손바닥에 가지런히 잘 펴서 밥 한 숟갈 올리고 갖은 양념한 멸치젖과 걸죽하니 지진 된장을 올려서 쌈으로 먹어야 제되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지 싶습니다. 고추장이나 쌈장을 곁들여도 괜찮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김치국물, 된장물이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만 그런게 오히려 흡족하고 좋을 수 있습니다. 나중까지 손에서 냄새가 좀은 납니다.ㅎㅎ 

 

열무 물김치. 요즘같이 무덥고 밥맛 없을 때는 이 만한 반찬도 없습니다. 지진 된장 몇 숟갈 넣고 비비면 한끼는 훌룡히 해결되지요. 

적당히 부더러운 넘이라야 풀냄새도 안나고 씹는 맛도 있습니다. 조금 시어져도 먹는데는 아무 문제도 안됩니다.

 

오이 장아찌. 오이, 청양고추, 마늘을 간장에 식초를 넣어서 담는 답니다.

새꼼하고, 오이는 아싹 아싹하니 씹는 맛이 좋습니다. 고기 먹을때는 없어서는 안됩니다.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콩잎 장아찌 랍니다. 조금 질긴 콩잎이라야 씹는 맛이 있습니다.

묵은 고추장이나 된장, 막장에 박아 뒀다가 이듬해에 꺼내 먹는 답니다. 여름에 물에만 밥위에 얹어 먹으면 짭쪼름 하니 그만 입니다.

 

우리집 된장. 아주 맛있는 된장은 아니지만 여름에는 없으면 안되지요. 멸치 넣고 지집니다. 

 

열무 김치. 식은 밥 위에 얹어 먹으면 밥맛이 있다 없다 할 새가 없습니다. '산초'가루가 아주 조금 들어 있어 알싸 합니다.

 

콩잎 쌈이나 호박 잎쌈도 싸기 귀찮으면 밥위에 젖갈과 된장을 먼저 올려 놓고, 그 위에 쌈을 덥어서 젖가락으로 입에 가져가면 손에 냄새도 배지 않고 쌈밥 먹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항상 보리를 놓아 먹습니다. 아이들도 쌀밥만 주면 싱겁다고 안 좋아 합답니다. 이런 먹는 버릇이 여든까지 가겠지요. 

 

서울이나 남도 쪽에서는 콩잎을 먹지 않습니다. 부산 사람이 보리국 먹지 않는것 처럼.

보리 된장국도 먹어보니 구수하니 먹을만 했습니다. 콩잎도 상큼하니 먹을만 하답니다. 앙념 맛도 있겠지만.... 

                                                                  점심먹다  반찬들을 당겨 놓고 사진찍는 꼴이 우스운지.... 밥먹다 같이 웃었습니다.ㅎㅎ

 

저는, 콩잎 하면 생각나는게 단풍콩잎 이랍니다.

하숙집 밥맛이란게 아무리 잘 해줘도 어머니 손맛이나 향수까지 전해 주지는 못한답니다.

눈물나게 우스운 에피소드 하나 소개 합니다. 1980년대 초, 고속버스 터미널 화물보관소로 단풍콩잎을 �O으러 갔습니다. 

봄에 밥맛을 잃은 아들에게 어머님이 고속버스 화물로 단풍콩잎을 보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네가 좋아하는 거라 작년에 손수 따서 양념해 보낸다는 글과 남주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고 물표도 들어 있었지요.

화물 보관소에서 얼마나 창피를 당했는지..... 사각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비닐로 포장을 야물게 했지만, 더운 고속버스 아래의 화물칸에서 부풀어 올라 국물이 새고 지독한 냄새가 나서 밖에다 내 놨더군요. "도대체 그게 뭐 길레 다 썩은 악취가 나느냐"는 겁니다. 

그 뒤로 어떻게 상도동까지 갔는지 모릅니다. 아마 걸어서 왔지 싶습니다. 제가 맡아도 냄새가 엄청 났으니....

남 주지 말라고는 하셨지만 아무도 먹질 않았습니다. 먹는 저를 보고는 신기해 하기도 냄새 때문에 싫어 하기도 했지요.  

요즈음은 단풍콩잎도 고깃값보다 비싸고 중국것도 들어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시피....단풍콩잎은 벌레먹지 않고 노랗게 단풍이 잘든 넘으로 골라  간간한 소금물에 담궈서 한달 정도 싹힙니다.

이 과정을 두어번 하지 싶습니다. 잎맥이 싹아 먹을때 전혀 억새지 않습니다. 이때 콤콤한 냄새가 생기기도 합니다.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고, 즐기는 사람은 오히려 이 냄새가 안나면 먹지도 않습니다.

맑은 멸치 젖갈에 고춧가루, 다진마늘, 통깨, 참기름(조금)을 썩어서 한장 한장 양쪽을 발라서 재어두고 먹을때 양만큼 꺼내 먹습니다.

많이 꺼내 젖가락으로 뒤적이면 정말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하니 조심하고 신경써야 합니다.

집에 단풍콩잎이 없어서 이미지를 올리지 못합니다만 늦은 가을 쯤에는 이미지를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단풍콩잎, 저는 밥도둑넘이라 부른답니다. 더운 밥에 얹어 먹으면 '나무칼로 귀를 베어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콤콤한 냄새는 어디에도 없는 향기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