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큰놈이 학교에서 조그만 사고(?)를 쳤습니다.
어찌보면 사고를 친게 아니라 사고를 당한 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옆 친구의 책을 봤는데, 제 아들놈 손이 그림그리다 씻지 않아서 좀 지저분 했던가 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놈이 '코가 쑥 빠져서' 책을 한권 내밀며 한다는 이야기가 이 책과 똑같은 책을 한권 자기용돈으로 사줄 수 없냐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옆친구가 '자기 아빠가 사준 귀한(?) 책을 동석이가 더렵혔으니 새책으로 사달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더렵혀진 책을 가져왔길레,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더렵혀 지지도 않고해서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더냐?"고 재차 물으니 선생님이 타일러도 도저히 안된다고 했다면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립니다.
애 엄마를 시켜서 "그애 엄마에게 책이 조금 더렵혀 졌다지만 보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냥보고, 그 책대신 다른책으로 따로 한 권 사주면 안되겠느냐"고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애가 까탈스러워 그러니 개념치 말라면서 자기가 잘 타이를 테니 책은 사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답니다. 이런 애들이 요즈음의 애들 이랍니다. 지나치게 풍족해도 탈이될 수 있음인데......
초등학교 3학년의 '책사랑'이 유별나기도 하고 괜한 상처가 될 수도 있겠기에 [마일리지]도 쓸겸 겸사하여 애들책과 제책 몇권을 주문했습니다.
제책은 ['07년 독서목록2] 에서 [최성현]선생의 책만 주문했습니다.
아래사진의 5권입니다. 잘 팔리지(?) 않아서 그런지 대게 주문후 2~3일이면 배달되던 책들이 5/11주문하여 5/17일 에서야 도착했습니다. 일주일이 걸린 셈이지요.
4권은 編,譯書이고 한권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과 그림을 엮은 책입니다.
최성현선생은 위의 사진속 책외에도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산에서 살다], [별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꽃을 꺽을 수 없다]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는 [생명의 농업], [짚 한 오라기의 혁명]등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도 없는걸 보면 �O는 이도 없을뿐 아니라 잘 팔리지도 않는 모양입니다만, 내용만은 어느 베스트셀러 못지 않은 주옥같은 책들 입니다.
소개하고 싶은 책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입니다. 발행처-도서출판'삼신각'
부재가 '나무와 평생을 함께한 어느 궁목수의 삶'이라 되어 있습니다.
어느 궁목수가 저자인 [니시오카 츠네키츠]입니다.
저자의 서문을 잠시 소개 하겠습니다.
(전략)......저는 고대(古代) 건축물을 취급하는 목수입니다. 1300년 전에 지어져서, 지금도 창건 당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법륭사에서 수많은 선인들의 기예와 지혜를 배워 왔습니다. 그 기술이나 사고 방식은 매우 아름답고 심오해서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문화와 일본인이 계승해 온 기술과 지혜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래의 기술과 지혜는 기계나 컴퓨터로 전승되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기계는 데이타를 넣으면 결과를 내놓습니다. 중간과정은 모르더라도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하물며 직인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다른 재료들 앞에서, 이렇게 하려면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고, 요렇게 하려면 저렇게 하는게 좋겠지라고 경험과 육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방법은 낡았다 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기계나 오토메이션 등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다루는 것은 노송나무입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다릅니다. 각기 다른 나무의 성깔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맞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수령 천년의 노송나무라면 천년 이상을 지탱하는 건조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법륭사가 훌륭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하략)
이 책은 1991년(83세) 저자의 구술을 시오노 요네마츠씨가 받아적어서 만든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외에도 공저[이카루가의 궁목수 동량3대], [법륭사를 지킨 나무], [법륭사], [되살아나는 약사사의 서탑]과 저서에[나무로 부터 배우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포장을 풀자마자 바로 한번에 읽었습니다. 페이지 수도 200페이지가 채 못되거니와 얼마나 재미있는지 시간을 잊었습니다.
......커다란 가람을 짓는데는, 커다란 노송나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약사사의 현재 재건하고 있는 가람에는 최소한 수령 2000년 전후의 노송나무가 필요합니다. 원목의 직경이 2m 전후, 길이 200m의 노송나무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니 아무리 못해도 수령 2000년 전후가 되는 것입니다. 기소(木會)는 일본의 노송나무 명산지 입니다만, 여기에는 수령 500년 정도의 것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의 나무로는 가람을 지을 수 없습니다. 부적당합니다. 길이가 모자라고, 굵기가 또한 부족합니다.
지금부터 2000년, 25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신대(神代)의 시대죠.
이 정도 수령의 노송나무는 현재로는 지구상에 대만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만의 수령 2000년 이상의 노송나무 원시림 속에 들어가보니, 그것은 노송나무가 아니라 신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 지더군요. 이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노송나무의 존엄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요. 노송나무의 수명은 2500년부터 3000년이 한도입니다만, 삼나무의 경우는 천년, 소나무는 500~600년 정도 입니다. (본문P29~30)
저는 본문의 이 대목을 읽다 하마터면 까무러칠뻔 했답니다. 나무라면 저도 '조금은 안다' 했더니 기원전의 살아있는 나무라니......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흔히 살아있는 화석으로 '메타쉐콰이어'를 들먹입니디만 노송나무에 대면 시쳇말로 게임이나 되겠습니까?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대만의 그 노송나무숲을 꼭 가보고 싶습니다. 아니 꼭 가보겠습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이천년'이상을 살아온 나무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역자인 최성현 선생의 후기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전략)......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관해 깊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멘트가 주요 건축소재가 되어 있는 오늘날 나무가 중심 테마인 이 책은 과거와 현대 건축의 장단점을 아울러 비춰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 역자로서의 바람이자 보람이다.
노송(老松)나무는 편백(扁柏), 회목(檜木), hinoki cypress라고도 부른답니다.
측백나무과에 속하고 상록의 교목입니다.
역자의 말마따나 건축을 업으로 하거나 나무를 다루는 모든이들은 꼭 일독을 권합니다.
나무나 나무제품를 사랑하는 이들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도 일독을 권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사람이 일독의 범주에 들어가네요.
책값도 얼마나 착한지 모릅니다,......6,800원.
저는 특히 이 노송나무(회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마 동양에서는 제일 크다할 목욕탕인 부산의 '虛心廳'의 회목탕을 수리할 때의 기억때문일 것입니다.
'90년대초에 처음 건설할때는 일본에서 설계하고 자재를 가져다 일본인 기술자가 시공을 했었지만 2003년에 보수할 때는 제가 맡아 하면서 회목을 구하지 못해 애를 많이 태웠었지요.
요즈음, 히노끼 욕조니 향목이니 하며 인테리어 자재로 더러 사용하는 붐이 일고는 있습니다만 제대로된 자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것입니다. 대게 3~40년생의 어린나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http://blog.daum.net/samgan/508215 에 가시면 회목탕의 보수공사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목조건축-부석사 [무량수전]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 정보센터(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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