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 까지도.......

세칸 2007. 5. 2. 17:16

어떻게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책을 한권 선물로 줬습니다.

1980년 10월 2일 이라고 내지에 씌어 있습니다. 27년전이니 아직 새파란 20대 초반의 반짝일때 입니다. 

이중섭 화백의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 까지도]란 제목의 서간집입니다.

소를 잘 그린 화가의 소 그림은 없고, 책의 부제가 서간집이라 엽서화와 몇장의 소품 유화와 은지화만을 화보로 하여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수많은 엽서엔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로 가득한.......그런 책입니다.

차마 설렁설렁 읽지 못할 그런......눈물나게 아름다운 책입니다.

 

출판사는 韓國文化社이고 1980년 7월 20일 발행했습니다.

갑자기 왜 이책에 손이 갔는지 며칠을 다시 꼼꼼히 새기며 봤습니다. 

  

속표지 안의 흑백사진입니다. 넓은 이마와 쌍거풀이 크고 짙으며 턱이 유난히 긴 작가의 모습이 왠지 딴세상 사람 같이 보입니다.

꽁초에 붙이는 담배불.....참 맛있지요.

 

책을 읽으면서 한 여자의 지아비로, 두 아이의 애비로 얼마나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대에 제가 우리 식구들에게 마음으로라도 얼마나 인색하고 궁핍하게 굴었는지 많은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태성이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구려.

  태성아, 아빠는 태현이와 태성이를 정말 사랑해요. 할머니, 이모, 엄마들의 말을 잘 듣고 더욱 더욱 착한 아이가 돼 줘요.

  내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우리 남덕군, 당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굳게 굳게 포옹하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긴긴 뽀뽀를 보내오.

                                                                                                                                                     5월 20일   九村 

 

 

   그림만 잘 그린게 아닙니다. 자작시 한편이 실려 있습니다.

 

               소의 말

                      李   仲   燮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 시는 1951년 봄, 피난지 서귀포 방 벽에 붙어 있던 것을 조카 이영진씨가 보고 전한 것이라 합니다. 

 

 

-종이에 크레파스와 잉크 264*190

 

아이들과 끈-종이에 유채 497*324

 

바닷가의 歡喜-종이에 유채 412*285

 

은지화-153*103

 

아이들과 끈-종이에 유채 264*192

 

다섯 어린이-종이에 유채 175*235 

 

손과 비둘기-종이에 유채 140*170

 

사슴과 두 어린이-종이에 유채 145*123

 

두 어린이와 복숭아-종이에 유채 120*95

 

  秘  義     具    常

 

  鄕友 李仲燮이 이승을 달랑달랑 다할 무렵 이었다.

나는 그때도 검은 장미빛 피를 몇 양푼이나 토하고 사신처럼 가만히 누워 지내야만 했다.

하루는 그가 불쑥 나타나서 애들 도화지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애호박만큼 큰 복숭아 한 개가 그려져있고 그 한가운데 씨 대신 죄그만 머슴애가 기차를 향해 만세를 부르는 그런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이건 또 자네의 바보짓인가? 도깨비 놀음인가?" 하고 픽 웃었더니 그도 따라서 씩 웃으며, "복숭아, 천도 복숭아, 님자 常이, 우리 具常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흥얼 거리더니 휙 돌쳐서 나갔다.

  그는 그렇듯 가고 10년후, 나는 이번엔 肺를 꺼내 그 空洞을 쪼개 씻어 도로 꿰매 넣고 갈비뼈를 여섯개나 자르는 수술을 받고 외국 병상에 누워 있었다.

  마침 제철이라 날라다 주는 食床에는 복숭아가 자주오르는데 이것을 집어들 때마다 나는 중섭의 천도 생각을 하며 "복숭아, 천도 복숭아 님자 상이, 우리 구상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그의 그 말씀을 가만히 되뇌이기도 하고 되씹기도 한다.

  그런데 차차 그 가락은  무슨 영절스러운 축문으로 변해 가더니 어느덧 나에게 그 어떤 敬虔과 기쁨마저 주기에 이러렀다. 그리고 또한  내가 태중에서부터 절친한 또 다른 한 분의 음성과 한데 어울려 오는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피니 받아서 마시라.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 禮를 행하라"

                                                                                               <이 글은 구상 시인이 일본동경 교외의 한 병원 병상에서 썼음>   

산과 새-종이에 유채 130*145

 

  누구네 이중섭 그림    金  善   英

 

이중섭을 노래하던 사람들은 잠이 들고

그림들만 깨어 살그머니 벽에서 걸어 나와서 싸뿐사뿐 물감의 바다를 건너

몇십 년 전의 아름다운 이중섭의 미소를 타고서 진짜 소, 진짜 바다, 진짜 아이들과 진짜 진짜 천도화나무도 소리없이 기어가서

달밤에 달밤에

천도화와 소와 달과 까마귀를 데리고 놀다가

다시 아름다운 연기가 된 이중섭의 미소를 타고 돌아와 벽에 걸린다

이중섭, 중섭, 중섭을 노래하던 사람들은  잠이 들고 풍금소리 때문, 잠이 들고.

깊이 깊이 들었다 놓아도 잠이 들고

바닷물의 철썩소리에

그림 속의 바다만 깜짝 놀라 그림을 전부 열고 뛰어 나와 철썩거리고

이통에 바닷속 어린 아이들은 깜짝 놀란 꽃게에게 힘있게 물려 비명을 지른다 빙글 빙글.

담배 문 이중섭은 어디 있을까

 

 

꿈에본 병사-종이에 유채 125*140

 

 

-종이에 유채 150*187

 

아래 그림들은 엽서그림들 입니다. 크기는 140*90입니다.

책을 스켄하여 올리다 보니 원본보다 커졌습니다. 또 다른 맛이 있을것 같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좋아 못견디는 발가락군을 손에 쥐고 당신의 모든 것을 길게 길게 힘껏 포옹하오. 그럼 몸성히. 나의 소중한 아내여. 대향만을 신애(信愛)하고 편지 많이 많이 보내면서 태현이, 태성이와 함께 기다려 주시오.

                                                                                                                                                 5월 22일  李仲燮 大鄕 九村

 

 

  이  중   섭     金  春  洙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南捕洞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버린다.

五六島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위 떨어지거라. 

  

 

   이  중  섭   金  春  洙

 

바람아 불어라,

西歸浦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이  중  섭   金  春  洙

 

아내는 두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모발은 구름 위에 있다.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서귀포의 남쪽을 불고 있다.

서귀포의 남쪽

아내가 두고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이  중  섭   金  春  洙

 

씨암닭은 씨암닭,

울지 않는다.

네잎 토끼풀 없고

바람만 분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의 바람아

봄 서귀포에서 이 세상의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이  중  섭   金  春  洙

 

아내의 손바닥의 아득한 하늘

새가 한 마리 가고 있다.

하염없이 가고 있다.

겨울이 가도

대구는 눈이 내리고

팔공산이 亞麻빛으로 가라앉는다.

동성로를 가면 꽃가게도 문을 닫고

아이들 사타구니 사이

두개의 男根

마주보며 저희끼리 오들오들 떨고 있다.

 

 

  이  중  섭   金  春  洙

 

서귀포의 남쪽,

바람은 가고 오지 않는다.

구름도 그렇다.

낮에 본

네 가지 빛깔을 다 죽이고

바다는 밤에 혼자서 운다.

게 하 마리 눈이 멀어

달은 늦게 늦게 뜬다.

아내는 모발을 바다에 담그고,

눈물은 아내의 가장 더운 곳을 적신다.

 

  내가 만난 이 중섭   金  春  洙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이  중  섭   金  春  洙

 

다리가 짧은 아이는

울고 있다.

아니면 웃고 있다.

달 달 무슨 달,

별 별 무슨 별,

쇠불알은 너무 커서

바람받이 서북쪽

비딱하게 매달리나.

한밤에 꿈이 하나 눈뜨고 있다.

눈뜨고 있다.

 

 

 

  이 중섭  화첩   金  榮  泰

 

1. 달이 하나 떠 있다

   달의 피부는 많이 금이 가

   송곳으로 둘레를 어깨버렸다

   승냥이가 한 발 들고

   발 밑에 중섭이

   머리를 박살 낼까 말까 망설인다

   沙漠의 구석에는

   자라다 말은

   꽃나무 두 줄기를

   심어놓은 게 보인다. 

 

2. 蓮꽃 잎사귀에

   두 동자가 걸터앉았다

   생각보다

   연못은 깊고

   하늘은 더 넓다

   아버지의 생각도 그 만큼은 따뜻하다.

 

3. 늑대는 사납게

   일부러 눈을 부럽뜨고 달린다

   조그마한 하얀 나신이

   헝겊처럼 매달려 있다

   찌들지 않은 슬픈 마음 복판에

   덩달아 나도 숨어들어가

   가만히 고꾸라진다.

 

 

  나의 귀여운 즐거움이여, 소중한 나만의 오직 한 사람, 나만의 남덕이여.

5월 20일자 편지 놀랄 만큼 빨리 22일에 받았소. 어제 기쁘게 읽었어요. 여러가지 일로 염려하고 있는 모양인데........대향, 남덕, 태현, 태성이가 건재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어디 있겠소. 가난한 것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 주시오. 그저 빨리 만나는 일만이 중요한 당면 문제요.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와지는 것이 아니겠소.........(하략)

                                                                                                                                                                            大   鄕

 

 

  이 중섭의 아이들   朴  建  漢

 

  나는 매일 그들을 만난다.

  더러는 손바닥만한 잎들이 달린 수목들 사이에서, 혹은 파도가 이는 바닷가에서.

  어떤 놈은 옆으로 누워 먼 데 수평선을 바라보고,

  어떤 놈은 하루 종일 매미가 되어 있다.

  또 어떤 놈은 물구나무 서서 발바닥으로 하늘이나 굴리고......

  모두가 한결같이 발가숭이다.

  그런데 어떤 놈은 보이지 않게 나뭇가지에 옷만을 걸어놓고,

  또 어떤 놈은 모래밭에 그림자까지 벗어 놓고,

  오늘도 어디론지 가버렸구나.

  따가운 햇볕, 끼욱거리는 갈매기의 울음 소리에 너무나 익숙해 있는

  그들, 그들의 瞳孔에서 풀리는 오색 구름속에 나는 흠뻑 젖는다.

  나 또한 매일 발가숭이가 된 채.

 

 

(전략)........치호형, 문안의 인사 전해 주십시오. 오늘 사무실에 나가 보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이대통령(이승만)이 미국 가실 때 제 작품을 사가지고 가셨습니다.

                                                                                                                                  *작가가 남긴 유일한 한글 편지입니다.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이중섭, 또는 그의 엽서화       李   根   培 

 

원시목이 젖는다

벌거숭이의 나무가, 사람이, 짐승들이 달려나온다

하나의 몸짓은

하나의 슬픔을 낳는다

모든 것은 평화

천상의,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의 密會

고독의 선은

어둠의 실을 뽑아서 쓴다

사랑의 채색은

온몸으로 밤을 새우고난 다음의

햇빛의 눈부신 부분을 선택한다

불이 탄다,

원시림의 불, 벌거숭이의 불, 절망의 불, 미지의 불

아, 아 마침내 황홀(恍惚)에 싸여 붓을 든다

비로소 성취한다

전인미답의 땅에 이르러

그 혼신의 피, 어둠은

더욱 찬란한 지평을 열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나의 귀여우 태성이. 잘 있었니?

아빠는 건강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빨리 태성이와 엄마, 태현이와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서 못견디겠다.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거라.

                                                                                                                                                                   아빠  仲燮

  나의 사랑하는 태성이에게

  그간 잘 있었니?

  아빠가 보낸 그림을 보고........"우리 아빠 최고다아"하고 엄마에게 애기했다지.

  아빠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더 재미있는 그림을 자꾸 자꾸 그려서 보내 주마.

 

  태현 형이 공부할 때는 방해가 안되도록 밖에 나가 놀도록 해요.

                                                                                             아빠 仲燮 

 

 

(전략).....당신의 편지와 사진이 제게 더욱 더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부디 안심 하시기 바랍니다.

또 곧 편지하겠습니다. 하루빨리 오게끔 서둘러 주세요. 밤에는 당신의 사진을 안고 함께 자겠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   南   德

                                                                                                                              4월 27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제나 보고 싶은  내 아들 태현아 잘 있었니?

오늘 엄마한테서 온 편지에는 요즘 태현이가 운동회 연습으로 새까맣게 되어가지고 온다고?

태현이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보며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꽉 차있다.

지든지 이기든지 상관없으니 용감하게 싸워라. 아빠는 오늘도 태현이와 태성이가 물고기와 게하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단다.

                                                                                                                                               아빠  ㅈㅜㅇㅅㅓㅂ

 

 

(전략).......그 동안 서울은 추웠지만 어제부터는 봄날씨같이 따뜻해졌소. 더 추워져도 끄떡없으니 아고리를 굳게 굳게 믿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 주기 바라오. 나는 당신이 보고 싶소. 나는 당신의 그 휼룡한 모든 것을 힘껏 힘껏 포옹하고 싶소. 오래 오래 입맞추고 싶을 뿐이오. 자, 나만의 신나는 천사, 다시없는 나의 상냥한 아내여. 건강하게 잘 견디어 봅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긴 뽀뽀를 보내오. 상냥하게, 따뜻이 받아 주구려.

                                                                                                                                                                        仲   燮  씀

 

  李仲燮 年譜      李   英   進

 

  *간략하게 축약하여 편집하였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1916, 평남 평원군 송천리742번지. 아버지 장수이씨 희주와 어머니 안악이씨 사이의 3남매중 막내로 태

        어남. 형 중석은 12년 연상, 누이는 6년 연상. 비교적 부유한 지주집안임.

1920, 5세때 부친별세. 그림그리기에 빠졌다함.

1923, 평양시 종로 공립보통학교입학. 외가에서 통학함. 화가 김병기, 작가 황순원과는 동기. 작가 고 김

        이석은 한 반 위, 오영진은 두 반 위 였음.

1929, 평북 정주 고읍 오산고등보통학교 입학(3.1운동의 33인중 한 분인 이 승훈선생이 설립)

1930, 이때부터 한글 풀어쓰기 싸인을 씀.

1931, 동해안의 경승지인 명사십리와 송도원 해수욕장을 처음 접함. 바다를 소재로한 그림에 몰두함.

1934,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1년을 수학함. 

1935, 제국미술학교 포기, 문화학원 미술과 입학. 홍종명, 안기풍, 이정규와는 동급. 김환기, 유영국, 김

        병기, 문학수는 상급반임. 이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인색하기로 유명한 <朝日新聞>에 평이 실리

        기도 함.

1940, 문화학원 졸업. 동경에 체류하며 미술창작가협회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함.  

1941, 미술창작가협회 회우가 됨. 한국인은 김환기, 유영국, 문학수가 있었음. 5월 신미술가협회를 결성

        하고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창립전을 가짐.

1942, 4월, 6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소와 어린이>출품. 5월, 2회 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함.

1943, 7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望月>3부작이 태양상을 수상함. 5월, 3회 신미술가 협회전에 출품함.

1945, 5월 오랫동안 연애한 山本方子(결혼후 李南德)와 결혼. 원산시 광석동에 신접살림 차림.

1946, 원산 사범학교 미술교사직을 일주일만에 작파함. 첫아들이 태어났으나 디프테리아로 사망함.

1947, 둘째아들 태현 태어남. 소련의 노 평론가로 부터 대가들이나 받을 훌룡한 평을 들음.

1949, 세째아들 태성 태어남. 소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함.

1950, 12월 6일 배편으로 부산으로 남하함.

1951, 1월 가족과 제주도로 감. 12월 가족과 부산으로 다시옴.

1952, 2월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에 입단함. 은지화를 그리기 시작함. 부인과 두아들은 일본인 수용소

        에 있다가 제3차 일본인 송환선으로 동경의 친정으로 건너감.

        12월 부산 르네상스다방에서 기조전을 가짐.(이중섭,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

1953, 일본의 부인이 오산고등학교 후배 마씨에게 사기를 당함. 처가에서 큰망신을 당함.

        시인 구상의 도움과 지산만으로 부터 선원증을 얻어 몽매에도 그리던 처자를 만나러 일본으로 감.

        그러나 2주만에 돈을 마련키 위해 되돌아옴.

1954, 봄까지 통영에 있다가 진주를 거쳐 상경함. 부인의 빗을 갑기위한 전람회 준비를 함.

1955, 1월18일부터 27일까지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다. 유화41점, 연필화1점, 은지화등 소묘10여

        점을 출품함. 전시회는 성공적이었으나 돈은 만지지 못함. 

        원망과 자학으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냄. 구상, 최태응의 도움으로 미국공보원에서 전시회를 가졌

        으나 실패함.(정신분열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려 작품도 흩어짐.) 

        7월 성가병원에 1개월간 입원함. 8월 수도육군병원과 성 베드로 병원에 입원함.

        차도가 있어 퇴원하고 한묵과 하숙을  했으나 다시 황달에 걸렸으며 치료를 전혀 받지못함. 

1956, 영양실조와 간장염으로 극도의 고통을 겪음. 음식을 거절하기 시작함. 청량리 뇌 병원의 무료환자

        실에 입원시킴. 그러나 정신이상이 아니므로 간장염 치료를 위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함.

        뉴욕 현대미술관(Modern Art Museum)에 은지화 3점이 영구보존 키로 결정됨.

        9월 6일, 간장염으로 아무도 없이 홀로 숨을 거두다. 3일이나 무연고로 방치되었다가 뒤늦게 친지

        와 친구들이 홍제동 화장장에서 화장하고 봉원사에 맡겼다가 후에 망우리에 장사지냄.

        같은해 늦가을 조각가 고 차근호가 묘비를 세우다. 

        (*그의 부인은 두아들을 키우며 삵바느질 까지 하며 마씨에게 사기당한 돈 삼천만엔(당시)을 20년

        만에 다 갑았다 합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절대 궁핍의 시대에서 그는 작가적 영감을 얻어 행복해 했을까요? 

피카소의 '게르나카'가 불후의 명작이라서 그가 그 시대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 할까요?

 

이떤이들은 '쟁이들은 배부르면 천해진다' 고도 합니다만, 누가 감히 굶주려 보지도 않고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李仲燮,! 그는 천재였지만 불행했고 불행했지만 영혼은 아름답고 깨끗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른 세상에서라도 행복해 하기를, 진정 행복해 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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