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껍데기 없는 밥집

세칸 2008. 5. 20. 07:01

껍데기 없는 밥집

구례 동아(실비)식당

 

하동, 화개에 살면서 장은 구례장을 다닙니다. 장이 크기도 하지만 비교적 저렴하고 다양하며 장꾼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동장은 2, 7일. 화개장은 1, 6일이었으나 상설장이 되었고, 구례장은 3, 8일입니다.

 

장에 가면 필요한 물건이나 찬거리를 사고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을 뺄 수는 없습니다.

돼지 내장을 넣은 국밥도, 팥죽이나 팥 칼국수, 쇠머리국밥이나 잔치 국수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대리운전자를 대동했을 때는 낮술 한잔하는 즐거움도 빼지 못합니다.

 

5/18일 일요일. 구례장에 식구들과 장구경을 갔습니다.

제 친구의 "구례에 가면 동아 실비집을 꼭 가봐라."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껍데기만 보고는 아무도 더갈라 안 할끼다."하던 친구의 말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함석에 페인트로 쓴 식당간판이 없었다면 아무도 식당이라 여기지 않을 외양은 마치 꿈속의 풍경같습니다. 

껍데기..., 그래, 껍데기는 먹는 게 아니니까...!

 

 

주차하는 동안 아이들이 들어가지 않고 쭈뼜거립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더는 외양은 밥 먹는 식당 같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살만해진 티가 겉멋이 되어 안팎으로 깨끗한, 그것도 부족하여 화려한 식당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깨끗하고 화려한 식당에서 외양만큼 식재료가 믿을 수 있고 위생적으로 조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좀 그렇다'라며 꺼리는 아이들을 앞서 비닐 휘장을 젖히고 들어갔습니다. 

4인용 테이블이 4조인 홀과, 주방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조리실이 맞붙어 있었고 옆에도 테이블 두어 개가 놓인 홀이 있습니다.

절대 켜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TV와 그 위에 얹혀 있는 양은 주전자 3개는 연출된 오브제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빠! 다른 데로 가면 안 돼요? ....!"

"왜!.....?"

"더...럽다! ...추접고..."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의 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먹는다는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일마 들아, 잘 봐라!, 추접은 게 아니고 오래된 거다. 아빠가 너그 만할 때는 이런 식당에도 몬 들어 와 봤다! "

"......!!!......"

   

 

주인 할머니가 우리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고, 들어왔다 그냥 나갔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유리창에 써놓은 차림표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으므로 '아이들과 밥 먹기 좋은 거'로 부탁을 했고 돼지주물럭을 추천했습니다.

가오리찜이 '먹을 만 하다.'라는 들은 말이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점심으로 먹기는 곤란하여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홀과 조리실이 같은 공간이라, 주인 할머니의 조리과정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고 정해진 레시피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안주로 먹는 주물럭이나 밥과 같이 먹는 주물럭이 다르고 어른이나 아이들이 먹는 것도 조금은 다르게 하는 듯 보였습니다.

콩나물과 미나리, 대파가 들어갔지만, 마늘과 고추는 적게 들어갔고 맵지 않으며 약간 단 듯한 돼지주물럭을 밥으로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밥과 같이 먹을 수 있게 배려한 할머니 만의 레시피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마늘종 볶음, 무우채, 마른 갈치조림, 콩나물과 대파무침, 반찬은 특이한 게 없었지만, 간은 심심하고 자극적인 맛은 아닙니다.

식당 반찬은 약간은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맛있다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더럽고 추접다는 소리를 하던 놈들이 걸신이 들린 듯했습니다.

요즘 더물 게, 뚜껑까지 채운 공깃밥을 다 먹고는 제 엄마가 남긴 밥까지 먹어치웠습니다. 

 

차림표가 없으니 가격표가 있을 리 없습니다.

4명이 밥을 먹고 저는 소주까지 한 병 마신 밥값이 15,000원이라 합니다.

계산을 잘 못하신 게 아닌가 하여 우리가 먹은 걸 다시 이야기하니 "그래만 주면 됩니다." 하시며, 아이들의 입이 매운 걸 염려하여 사이다를 한 병 꺼내 주셨지만, 아이들이 사양하였습니다. "배가 불러 먹을 수 없어요!" 

흔히, 이런 경우 '착하다.'라는 표현을 합니다만 저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아식당을 더나드신 분이나 구례 사람들은 '동아실비집'이라 한다 합니다. 

할머니는 밥을 팔아 장사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밥을 파는 것은 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시는지도 모릅니다. 낡은 간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들어 갔을 때, 이미 계시던 세 분의 어르신은 우리가 나올 때도 계셨습니다.

우리 뒤에 대여섯의 젊은이들이 가오리찜을 시켰고, 먹진 못했지만, 조리과정은 훔쳐봤습니다.

사진을 찍기가 민망하여 내부를 소상히 그리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동아식당을 추천해 드리지는 못합니다.

외양이나 내부가 너무 낡고 험하여 자칫 알맹이인 밥까지 거북해질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예감입니다만, 아마 저는 단골이 되지 싶기도 합니다.

밥장사와 밥하는 이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향수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