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고집이 도시를 바꾼다
‘디자인 세계’는 철저히‘전제 군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디자인으로 일어선 도시들의 경우, 천재적 예술가 한 명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경우들이 많다. 지루한 런던을‘디자인의 벤치마킹 도시’로 변신시킨 사람은 건축 명장(名匠) 노먼 포스터(Foster·72)경(卿). 그는 런던 시청과 일명‘에로틱 오이’로 불리는 스위스 르 타워, 카나리 워프 역사(驛舍) 등을 선보였다. 이 건물들은 금속과 유리, 테크놀러지를 자유자재로 결합해 하이 테크 건물의 새로운‘기준’이 되고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를 재개발한 도쿄의 쇼핑센터‘오모테산도 힐스’(2006년 완공)는 189억엔(약 1800억원)의 건설비용을 쏟아 부었지만 지상 높이를 지상 6층(18m)으로 제한하고, 대신 지하를 6층(지하 30m)이나 팠다. 건물 앞의 오래된 느티나무의 높이(18m)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67)의‘미학적 고집’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막 세계적 디자이너들을‘초빙’하고 있는 상황. 초현실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 대표 건축가인 렘 쿨하스(Koolhaas·64)는 삼성 리움 미술관과 서울대 미술관 건축에 참여했으며, 쿨하스의 제자인 자하 하디드(Hadid·58)는 동대문 운동장터에 새로 생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파크를 설계했다. 리처드 로저스는 현재 서울 여의도 통일 주차장 부지에 들어설 국내 최고층 복합 시설인 파크 원(Parc1)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중동의 두바이를 봐라 도시가 나라의 얼굴"
윤정호 기자 jhyoon@chosun.com
입력 : 2008.01.22 02:00 / 수정 : 2008.01.22 03:55
대통령직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맹형규 의원은 21일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와 관련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간판이 무분별하게 난립한 경우가 없다"며 "도시 건축에 디자인 개념을 가미해 국토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맹 의원은 "그동안의 무질서한 개발이 만들어낸 도시 흉물들을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왜 도시 공간에 디자인 개념을 가미하려고 하나.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습부터 선진화돼야 한다. 파리나 도쿄 같은 선진 도시들은 이미 공공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도시의 조화롭고 균형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도시만 아름다워진다고 선진화가 되나.
"도시의 아름다움이 나라 전체를 평가하는 이미지가 되는 시대다. 두바이를 봐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도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맹형규 기획조정분과 간사(오른쪽)가 21일 정동기 법무행정분과 간사와 함께 자료를 보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인수위의 우선 추진 과제에서 빠져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었다. 최근 보고 과정에서 이 당선자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고 추진을 지시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일 때 해낸 청계천 복원, 종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등이 '디자인 코리아'의 대표적인 예다."
―어떤 문제부터 고쳐 나가려고 하나.
"성냥갑 같은 아파트, 무질서한 광고판, 논밭 한가운데 우뚝 선 아파트 등이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다. 또 대운하나 새만금 프로젝트는 친(親)환경적 요소까지 가미한 공공디자인의 대표 상품이 될 것이다."
―정부 주도의 시설물 평가 등은 또 다른 규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민간인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갈 거다. 10월 발족하는 국가건축위원회에 건축도시디자인분과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협의하는 체제가 될 거다. 이 프로젝트는 이 당선자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이어져야 할 장기 과제다."
맹형규 인수위 기획조정위 간사는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 인수위 브리핑 룸에서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맹 간사는 대운하를 위해 디자인과 친환경을 생각한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뜻에 따라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서경덕 기자 jeraldo@chosun.com
휴대폰·가전 디자인은 '일류'… 도로·간판은 '삼류'
디자인은 선진국 진입 보여주는 '가늠쇠', 공공디자인 수요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는 차기 정부가 '디자인'을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소득 2만 달러의 길목에서 선진국의 '가늠쇠'로 인식되는 디자인을 국정의 중심에 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디자인 정책의 획일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거리를 미술관처럼…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1년반 전부터 시작돼, 모든 행정에 디자인 결합… '성냥갑 건물' 不許
대통령직인수위가 21일 발표한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는 그 동안 서울시가 추진해온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를 범국가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정책이다.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은 2006년 7월 취임 직후부터 서울을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를 성장동력 삼아 경제를 되살리는 게 목표다.
시는 이를 위해 건축·도시설계 등 모든 행정을 디자인을 통해 통합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부시장급의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신설하고 권영걸 서울대 미대학장을 영입했다. 간판·현수막 등 광고물 정비, 가로 경관 및 보행환경 개선, 건축 디자인, 도시경관 관리 등 여러 실·국에 분산돼 있던 도시 디자인 관련 업무를 총괄 지휘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공공건축물은 물론, 아파트 같은 민간 건물에 대한 외관 디자인도 사전 자문을 받도록 '도시디자인 조례' 등 각종 법규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디자인 심의를 대폭 강화해 성냥갑 모양의 건물은 아예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거리를 미술관처럼 꾸미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와 함께 서울의 색과 서체, 상징 개발 작업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철거공사가 시작된 동대문운동장 부지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디자인플라자 & 파크'(가칭)가 들어선다. 이곳에는 디자인 전시관과 체험관, 전시 컨벤션홀 등 디자인·패션 산업을 지원하는 각종 시설이 들어서고 디자인 인력도 양성하게 된다.
서울시는 도심 주요 거리를 디자인과 감성, 자연이 어우러지는 고품격 거리로 꾸미기 위해 강남대로·이태원로·능동로·대학로 등 10곳을 '디자인 거리'로 선정했다. 이들 거리는 보도블록·벤치·가로등·버스정류장 등 각종 시설물이 서로 통합돼 조화를 이루는 '토털 디자인' 방식으로 설계된다. 올해 말이면 단순히 걷는 거리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향취가 묻어나는 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권영걸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은 "올 상반기 중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간판과 가로 환경, 공공시설물 등이 조화되는 거리를 만드는 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정치, 디자인을 이야기하다'
인수위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 도시·건물 아름답게, "혁신도시·대운하·새만금 사업 우선 추진"
맹 의원은 "신도시, 혁신도시, 한반도 대운하, 새만금 사업 등 주요 국책사업의 경우, 우선적으로 디자인 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시범사업을 벌일 생각"이라고 했고,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디자인 통합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특색 있는 경관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맹 의원은 기존 광고판 정비 등에 대해서는 "관련 지자체와 논의하겠지만 재건축 건물부터 적용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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