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술은 어떤 술일까?

세칸 2008. 1. 22. 01:58

외국엔 2억원 짜리 술도 있는데…

왜 국내산은 14만원이 최고?

 

허시명 여행작가·'주당천리' 저자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양조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비싼 내 술, 어디 사먹을 테면 사먹어 봐라"고 배짱 좋게 술 빚는 장인이 어디 없나 싶어서였다.

내가 마신 술 중에서 가장 비싼 국내 술은 함양 지리산 팔선주에서 빚은 산삼주(700㎖, 알코올 13%)로 출고가가 4만3210원이었다. 요즘 와인은 10만 원이라 해도 별로라고 거들떠보지 않는데, 우리 술은 이 정도가 비싸다니 좀 쑥스럽다.

어느 미생물학회 행사장에서 20만 원이 넘는 국산 약용주를 본 적은 있는데, 맛보지는 못했고 다시 그 술을 만나지도 못했다. 가격으로 친다면 한산 소곡주에서 만든 도자기에 담긴 명품 불소곡주(2ℓ, 알코올 43%)가 출고가 14만원으로 가장 비쌀 것이다.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전국에 양조장이 1000개가 넘게 있어서, 혹여 그 사이에 더 비싼 술이 생겼는지 몰라서다.

그런데 한국은 묘한 나라다. 누가 더 값싼 술을 만들어낼 것인지 양조장끼리 경쟁하는 나라다. 이때 경쟁 상대는 주로 소주다. 소주는 가게에서 1000원 하고, 식당에서는 3000원 한다. 우리나라 알코올 소비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소주가 한 끼 밥값보다 싸다보니, 밥은 못 먹어도 술은 곤드레만드레 취할 수 있다. 영세한 양조업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소주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술값들은 절로 내려갔다. 이런 풍토에서 자존심을 앞세워 최고의 술을 만들어, 최고의 가격을 호령하는 술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2억원짜리 코냑 '보테 뒤 시에클'.

 

외국에는 해외토픽감이 되는 도도한 술들이 많다. 이게 마시라는 술인지, 그냥 기네스북에 올려보자는 술인지 모를 지경이다.

지난 연말, 프랑스 코냑 명가인 헤네시에서 출시한 코냑 '보테 뒤 시에클(Beaute du Siecle)'이 코냑 사상 최고가인 15만 유로(약 2억원)에 경매에서 팔렸다. 이 코냑은 헤네시 가문의 6대손인 킬리언 헤네시의 100회 생일을 맞아 100병 한정으로 생산한 제품이다. 2006년에는 멕시코에서 데킬라 한 병이 22만5000달러(약 2억1000만원)에 팔렸다. '아스텍의 열정'이란 이름으로 한정 생산된 제품인데, 금과 백금으로 된 술병에 담겨있었다.

배포가 크기로는 중국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중국에는 1억원짜리 마호타이주가 있다. 언젠가 해외토픽에 1억원짜리 마호타이주를 제조한 양조장에서 똑같은 기술로 빚은 마호타이주를 50만원엔가 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묘한 상술이다. 이 뉴스를 접하고서, 1억원짜리가 갑자기 50만원으로 할인되는 것 같아서 빨리 술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여 지역술 활성화 사업을 벌이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진도 홍주의 전남 진도군과 한산 소곡주의 충남 서천군이다. 소곡주 문제를 놓고 서천군수를 만나던 자리에서였다. 군수는 소곡주 값이 너무 비싸서, 판로를 확대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걱정했다. 소곡주 1.8ℓ짜리 됫병이 2만5000원 안팎인데, 사실 술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군수가 비싸다고 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싼 술, 소주를 소곡주에 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군수님, 서천군에서 최고 품질의 찹쌀을 심고 우리 밀도 재배하여 정성껏 술 빚고, 맛보면 누구라도 감탄할 만한 소곡주를 100병만 한정 생산하십시오. 그리고 번호표 붙여서 50만원에 팔아 보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 날부터 2만5000원짜리 소곡주는 아주 싼 술이 되어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