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토루(土樓)
소우주를 닮은 미래주택의 원형
20세기 이전에 형성된 주택 중 가장 큰 집
중국 남동부에 위치하는 복건성(福建省)에는 세계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집합주택이 존재한다. 토루(土樓)라고 불리는 이 주택은 외부에서 보면 흙으로 구축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부에는 흙 그리고 내부에는 나무를 사용한 복합구조의 건축물이다.
커다란 원형의 평면을 가지는 토루는 외관이 견고하고 장대하여 주택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토루는 지름 40~60m 그리고 높이 10m 이상의 거대한 크기를 가지는데, 방어의 목적으로 창과 문이 극히 제한된 건물이다. 두터운 흙벽으로 구축된 외관은 중후하고 견고하여 마치 성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토루는 아마 20세기 이전에 형성된 주택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토루는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하고 또한 거주인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건물로서 풍토에서 파생되고 또한 그것에 순응하는 생태적인 집합주택이다.
이 토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한족(漢族)의 일종인 객가족(客家族)으로서 그 단결력 강한 사회구조와 억척스러운 생활력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동방의 유태인’이라고 불리는 객가족은 오래 전에 중국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계속해오다가 중국 남부에 정착하였다. ‘객가’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먼저 살고 있는 사람에 비해서 후에 이주한 ‘손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기존 주민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계속하면서 그들의 박해를 피해서 고립되고 격리된 생활을 지속해 왔다. 이 객가족은 많은 혁명가와 군인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중국의 실력자 등소평(鄧小平)과 이광요(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그리고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등이 객가족 출신이다. 또한 동남아를 비롯하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의 많은 수가 객가족으로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방어와 결속력을 위한 집합주택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면서 내부로는 결속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주택이 바로 토루다. 따라서 토루는 집합주택의 원형(原形)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구축 방법과 내부의 생활 방식 또한 특이하다. 외부에는 1m~60cm 정도의 두께로 흙을 쌓아 튼튼한 외벽을 구축하고 내부에는 나무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생활공간을 형성한다. 두터운 벽의 안쪽을 따라서 수많은 방들이 촘촘히 자리하게 된다. 건물의 높이는 3층에서 4층 정도의 규모를 가지는데, 건물의 중앙에는 커다란 마당이 자리하여 공동의 공간을 형성한다. 따라서 건물은 마치 커다란 원통(圓筒)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큰 규모의 토루에는 이 마당 가운데에 원형의 건물이 위치하는데, 이 건물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조당(祖堂)으로서 주택의 상징적 중심이 된다.
두터운 벽을 따라서 자리잡은 목조건물의 1층은 부엌과 식당으로, 2층은 창고로, 그리고 3층 이상은 가족들이 생활하는 방으로 사용된다. 1층에서 3~4층까지의 한 단위공간이 한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둥근 케이크를 자른 모양으로 각 가족에게 공간이 할당된다는 것이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네 군데에 좌우대칭으로 자리하고, 각 층에는 마당에 면해서 복도가 설치된다. 모든 공간의 크기와 모양은 모두 같으므로 대가족의 가장(家長)도 어디에 거처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의 구분이 없다. 방어의 목적 때문에 대문은 한 군데에만 위치한다. 마당에는 우물, 돼지우리, 닭장, 변소 등 부속건물이 늘어선다.
토루에서 집합주거의 원형을 본다
토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동성동족(同姓同族)으로서 일가를 이룬다. 객가족의 대가족은 보통 200~300명의 인구를 가지는데, 이들을 한 공간에 수용하기 위해서 가족 단위의 독립된 공간과 공동의 공간을 동시에 가지는 특이한 공간구조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토루의 공간구조는 특이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이어서 앞으로의 집합주택 건축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토루는 마치 하나의 소우주처럼 인식되어서 거칠고 삭막한 도시에 자리하여도 그 기능을 충분히 달성할 것 같다. 또한 그 속에서의 공간 체험도 느낌이 매우 극적이다. 황토색의 진흙벽은 요새와 같이 견고한 외관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내부로 들어가면 과일의 속과 같이 섬세하게 짜여진 생활공간과 함께 마당을 둘러싸는 공간구성 그 자체가 매우 극적인 느낌을 준다. 마당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오페라 극장의 객석처럼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과 같은 강렬한 느낌을 부여한다. 반대로 상층의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소공간에서 대공간으로 확장되는 시선의 움직임을 통하여 공간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개인의 존재를 편안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토루를 통하여 우리는 집합주거의 원래 모습을 보게 된다.
글·사진/손세관(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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