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저장음식은 밥도둑

세칸 2007. 12. 2. 10:40
저장음식은 밥도둑

저장음식의 달인 권영순 주부(왼쪽 세 번째)가 이웃에게 무료 저장음식 강좌를 해주고 있다.

 

강서구 화곡동에 유난히 이웃 주부들이 자주 드나드는 집이 있다. 이웃 주부들은 이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 받는다. 행복한 표정으로 각자의 집을 향하는 주부들의 손에는 때로 작은 반찬통이 들려 있고 그 속에는 ‘고구마줄기 절임’ ‘콩잎 저장김치’ 등 다양한 음식들이 담겨 있다. 이웃을 초대해 저장음식의 깊은 맛을 선보이고 때로 무료 저장음식 강좌를 여는 이 주부는 바로 권영순씨.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토속음식의 전통을 잇고 그 전통의 맛을 이웃과 아낌없이 나누는 저장음식의 달인이다.


행복플러스가 권영순(52)씨 집을 노크했을 때 때마침 방문한 이웃 주부 몇 명이 권씨에게 음식 강좌를 듣고 있었다. 이 날의 강좌는 ‘고추절임 만드는 법’. “일주일 전 여러분이 1차로 절여 놓은 고추를 꺼내볼 거예요. 잘 삭힌 고추를 이제 씻어 양념에 재워놓을 겁니다.” 저장음식 특유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가운데 주부들은 권씨 강좌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이처럼 권씨는 자주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 ‘무료 저장음식 강좌’를 열고 있다. 이웃 주부들 사이에서 권씨는 ‘저장음식의 달인’으로 통한다. 권씨는 집안에서만 음식 강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권씨의 손맛이 소문 나면서 주변에서 메모지와 펜을 들고 찾아와 비법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덕분에 아파트 정자나 시장 초입에서 몇 명의 주부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강의하는 권씨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손맛과 창의력이 만나 무궁무진한 저장음식 개발해

굳이 세보지 않았지만 권씨가 만들 수 있는 저장음식은 약 80종에 달한다. 그 중에는 깻잎절임, 오이지, 갓김치 등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 ‘콩잎 저장김치’ ‘콩잎 물김치’ 등 직접 개발한 요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저장음식에 매료되었을까? “결혼 전부터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죠. 특히 계절마다 새로 나오는 제철 채소를 어떻게 하면 오래오래 두고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저장음식을 접하게 된 겁니다. 친정어머니에게 저장음식을 배우면서 특유의 깊은 맛과 향에 푹 빠지게 됐죠.”

권씨는 책과 자료를 통해 조상들이 했던 전통의 저장비법을 공부했다. 새로 생긴 음식점의 젓갈이나 김치 등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찾아가 맛을 본 후 주방장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와 그 맛을 재현해 보며 새로운 저장음식의 맛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권씨는 저장방식으로 요리 만드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거의 모든 채소와 나물들을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말려서 저장하는 것은 나물 종류가 많은데, 취나물, 고춧잎 등 잎이 푸른 채소는 일단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서 햇볕에 말리면 맛있게 되죠. 또한 고사리,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등은 가격이 저렴한 제철에 구입해 말려 활용하면 좋아요. 그밖에 다양한 재료를 저장음식으로 만들 수 있죠.”

권씨의 집에는 항상 저장음식으로 넘쳐난다. 이 많은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주방과 베란다에는 대형냉장고 2대, 김치냉장고 2대, 그것도 모자라 별도의 냉동고까지 마련했다. 베란다의 빨랫줄에는 빨래보다 시래기가 널려 있을 때가 많단다. 베란다 한쪽에는 항아리 3개가 놓여있다. 각각 1년, 2년, 3년 묵은 된장이 담겨 있다.

 

저장음식의 비법은 ‘정성’

권씨는 저장음식이 ‘허리가 휘도록 많은 시간과 손길이 필요하고 정성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푸른 채소 등 제철 채소와 나물을 깨끗하게 손질해 말리고 전통의 장과 양념에 재워 놓아야 완성되는 게 저장음식이죠. 오랜 시간과 정성이 담겨야 특유의 깊고 깔끔한 맛이 난답니다.” 권씨는 이렇게 힘들게 만든 저장음식은 꼭 맛으로 보답한다고 한다. 식욕이 없을 때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맛깔스런 음식이며 갑자기 귀한 손님이 찾았을 때 걱정을 덜어주는 고마운 음식이라는 것. 특히 권씨는 지인에게 선물하고 이웃에 나눠줄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단다. “정월대보름에는 정성 들여 말린 나물을 삶아 볶은 후 오곡밥과 함께 고마운 분들께 선물로 드려요. 받는 분들이 맛있게 드실 때 정말 행복하죠.” 

권씨는 식구 수에 맞춰 밥을 짓지 않는다. 보통 이웃과 나눠먹는다는 생각으로 많은 양의 밥과 반찬을 만든다. 행복플러스가 찾은 날도 권씨는 새벽부터 큰 솥에 멸치와 된장을 넣어 구수한 시래기찌개를 끓여 강좌를 들으러 온 주부들에게 대접했다. 돌아가는 주부 손에 반찬을 쥐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권영순씨 추천 저장음식 만들기

 

콩잎 저장 김치

재료: 콩잎 1kg, 양념장 재료(멸치국물ㆍ젓갈(까나리액젓이나 멸치액젓)ㆍ물엿 1컵씩, 다진 마늘ㆍ통깨ㆍ생강ㆍ설탕 1작은술씩)

만드는 법

1. 콩잎을 소금물에 넣어 15~20일 동안 삭힌다.

2. ①의 콩잎을 꺼내 삶은 후 3~4일간 찬물에 담가 놓는다.

3. 준비한 재료로 양념장을 만든다.

4. ②의 콩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2~3장씩 ③의 양념장을 묻혀 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쌓아 보름 동안 숙성시킨다.

 

 

 

고추 절임

재료: 풋고추 1kg, 빙초산 50ml, 양념장(간장 500ml, 식초 150ml, 설탕 150g)

만드는 법

1. 항아리에 고추를 담고 빙초산을 넣은 물을 고추가 잠길 만큼 붓는다. 

2. 일주일 후 고추를 꺼내 깨끗한 물에 씻고 물기를 뺀다.

3. 준비한 양념장 재료를 섞어 끓인 후 식힌다.

4. 항아리에 ②의 고추를 넣고 ③의 양념장을 붓는다.

5. 고추가 뜨지 않게 돌로 눌러주고 보름 동안 숙성시킨다.

 

 

 

 

 

행복플러스, 글=박명림 리포터, 사진=김승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