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감성을 끌어안는 테크닉, 사랑을 베푸는 디자인

세칸 2007. 11. 24. 23:30

감성을 끌어안는 테크닉, 사랑을 베푸는 디자인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입력 : 2007.11.23 00:19 / 수정 : 2007.11.23 02:37

 

서울 방문한 세계 유명 디자이너 2인 

 

최근 세계 산업디자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두 명의 디자이너 이브 베하르(Yves Behar·40)와 아릭 레비(Arik Levy·44)가 잇따라 서울을 찾았다. 두 사람은 대학 동기 동창. 세계적인 디자인학교인 미국 ‘아트 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의 스위스 분교에서 같이 꿈을 키운 친구다. 가끔씩 윈드서핑을 함께 즐기고, 술 한잔을 곁들이는 막역한 사이. 공통분모는 이뿐만이 아니다. 둘 모두 다국적 배경을 가지고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이고, 테크놀로지와 감성을 결합한 디자인을 철학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들은 사흘의 시간차를 두고 방문했지만, 서로의 방한 사실을 몰랐다. 비슷하지만 다른 빛깔의 이들을 만나 디자인 철학과 한국 디자인에 대해 들어봤다.

 

 

이스라엘 출신 아릭 레비 “디자인에도 한국인 근성 통해” 

                              “내 디자인은 잘 버무린 야채샐러드 같은 것” 

 

“한국 사람은 생존 본능이 강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걸 악착같이 증명하려 하죠. 이스라엘 사람하고 정말 비슷해요.”

 

“한국이 고향 이스라엘과 비슷해 정이 간다”는 아릭 레비.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187㎝의 거구가 휘청거리며 말한다. 22~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홈 테이블 데코 전시회’의 초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산업 디자이너 아릭 레비(Levy)는 “한국이 고향 이스라엘과 참 많이 닮아서 편하다”며 입을 뗐다.

레비는 로레알, 르노자동차, 랑방, 카르티에 등 세계적인 회사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제네바 대극장, 네덜란드 무용극장, 핀란드 국립발레극장 세트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독일 미술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은 그를 필립 스탁(Starck), 론 아라드(Arad)와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3대 디자이너로 꼽았다.

그는 ‘친한파’ 디자이너다. 코오롱 스포츠 아웃도어룩 ‘트랜지션 라인’, 행남자기 ‘플루이드 라인’을 디자인해 화제를 모았고, 현재 LG전자 휴대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속성을 잘 아는 그는 “한국인의 찰거머리 근성이 디자인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아트 마케팅’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선 “디자이너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포드 자동차 달력 디자인해 놓고 경력에 포드 자동차 써넣는 디자이너도 있어요. ‘속빈 강정’ 같은 디자이너도 많고요. 선별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해요.”

“당신의 유명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187㎝ 키로 한국에 알려진 건 아니잖아요? 나는 하루 24시간 일하는 사람”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 전선을 탯줄 모양으로 엮어 만든 조명.

그의 별명은 테크노시인(Techno-poet). 1991년 ‘세이코 엡슨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테크놀로지와 감성이 어우러져 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이 붙인 애칭이다. 레비는 “예술과 기술, 휴머니티와 혁신, 머리와 가슴이 녹아있는 디자인이 진정한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코오롱의 신제품 등산복 안쪽에는 향수를 뿌리면 향이 오래가는 특수천을 동전 크기로 붙여뒀고, ‘탯줄’이라는 이름의 조명은 전선을 엮은 듯한 모양으로 차가운 느낌을 없애는 등 인간미를 디자인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레비는 강아지 액세서리부터 극장 무대까지 디자인한다. 그는 “지금 내 머리 안에는 200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며 “한번에 여러 영역을 생각하다 보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붙인 별명은 ‘워터맨(waterman)’.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스물넷까지 그곳에서 윈드서핑 사업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생업 터전을 버리고 스위스에 가서 디자인을 공부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무용수였던 연인이 스위스로 가버렸어요. 못 참겠더군요. 사랑 찾아 스위스로 갔어요. 그리고 디자인과 또 사랑에 빠졌죠.”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모국어 히브리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5개국어를 한다. “뭐랄까, 온갖 야채가 섞여 있는 ‘샐러드’, ‘야채 수프’ 같은 사람이에요. 디자인에도 그 모든 경험을 녹이려 한답니다.”


 

스위스 출신 이브 베하르   “싼 제품도 디자인 뛰어날 수 있어”   

                               “반짝 스타일과 혁신적 아름다움은 다른 것” 

 

장난꾸러기 같은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이브 베하르.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지난 11일 단돈 100달러짜리 노트북 컴퓨터 ‘XO 랩탑’이 세상에 공개됐다. ‘가난한 나라 어린이에게 값싼 노트북을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비영리 단체 ‘OLPC(One Laptop per Child)’의 주도로 탄생된 노트북이다. 100달러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도 놀라웠지만, ‘XO’의 독특하고 귀여운 디자인 역시 화제를 몰고 왔다.

노트북을 만든 주인공은 스위스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이브 베하르(Behar). BMW의 ‘미니(MINI) 모션 시계’, 허먼 밀러의 LED 스탠드 ‘LEAF’, 코라콜라 재활용 병, 버켄스탁(Birkenstock) 신발 등 실험적인 디자인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얼마 전 타임지로부터 ‘2007년을 빛낸 선각자(visionaries) 25명’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가 일본에 들렀다 ‘20시간 체류’ 일정으로 18일 서울을 찾았다.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피로회복제였다.

베하르는 도시락만한 크기(24.2㎝×22.8㎝)의 앙증맞은 XO 랩탑을 들고 나왔다. “싼 제품은 디자인이 나쁘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장난감처럼 갖고 싶으면서도 오지 아이들이 불편 없이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에 집중했죠.” ‘디자인도 중요한 사회 공헌’이라고 믿는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무보수’로 참가했다.

XO 랩탑에는 전기가 없는 곳에서 쓸 수 있는 ‘자가 발전 시스템’, 인터넷이 안 깔려 있어도 500m 이내에 있는 사람끼리 접속할 수 있는 ‘WiFi 무선네트워크’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어린이에 대한 배려가 숨었다.
  • 100 달러 짜리 노트북 ‘XO 랩탑’.

그의 이번 방한 목적은 “빅 컴퍼니(Big company)와의 중요한 프로젝트”. 끝내 회사 이름은 함구했다. 베하르는 삼성, 팬택앤큐리텔 등 국내 기업과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유명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와 기업들의 협업현상에 대해 그는 “혁신성과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개념인 ‘디자인’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뼈 있는 말을 했다.

“‘구찌’나 ‘찰스 앤 레이 임스(Eames)’ 같은 명품 회사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제품이 그냥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혁신적이기 때문이에요.” 같은 맥락에서 그는 “‘LG프라다폰’, ‘삼성아르마니폰’은 디자인이 아니라 스타일에 가까운 제품”이라며 “단기적으로 반짝 인기를 누릴지는 몰라도 혁신적인 고전은 못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요즘 그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충성)는 이제 사라질 겁니다. 제품 자체에 스토리를 담고, 고객이 그 스토리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텔링에서 고객과 회사를 연결하는 접착제(Glue) 같은 존재이지요.”

베하르는 터키계 아버지와 옛 동독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17살 때 동독을 탈출해 영국 런던에서 난민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난히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해외 출장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10개월짜리 아들의 이름은 스카이(Sky). “샌프란시스코의 파란 하늘처럼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아트 센터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이브 베하르와 아릭 레비를 배출한 학교는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Pasadena)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학교 ‘아트 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의 스위스 캠퍼스. ‘아트 센터’는 그래픽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 분야는 세계 최고. 미국에서 잘나가는 자동차 디자이너의 90% 이상이 이곳 출신이다. BMW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Bangle), 자동차 디자이너 고든 부에리그(Buehrig), 프리만 토마스(Thomas) 등이 아트 센터를 졸업했다. 이밖에 영화 ‘펄프 픽션’으로 아카데미상 작가부문상을 탄 로저 아바리(Avary)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이지아도 아트센터에서 공부했다.

베하르와 레비가 다닌 스위스 캠퍼스는 지난 1996년 없어졌다. 스위스 캠퍼스를 나온 동문은 400여명 정도.

  • 산업디자이너 아릭레비가 자신이 '테크노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데 대한 생각을 말한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23/2007112300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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