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한국화 대가 민경갑

세칸 2007. 11. 24. 17:30

한국화 大家  민 경 갑
옛것 바탕으로 새로운 것 만들어야 하는데,
         ...... 요즘엔 너무 쉽게 그리는 것 같아

 

민경갑 화백 (photo 김영훈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유산(酉山) 민경갑(閔庚甲·74)의 그림은 너무나 아름답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을 사용해서 그려낸 산과 자연은 보는 이의 마음을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의 그림에는 50여년간의 실험과 도전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칠순을 넘긴 화가의 철학이 서려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왜 山을 그리느냐고? 인생이 다 담겨 있잖아”

 
민 화백은 반 세기 동안 산을 그려온 한국화의 대가로서,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미술분과 회장이다. 지난 10월 14, 15일 이틀에 걸쳐 그를 만났다. 대한민국 예술원 미술전(10월 31일까지) 전시장과 민 화백의 작업실에서였다. 작업실에서의 만남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민 화백의 작업실은 아담한 우주이자 건강한 자궁처럼 느껴졌다. 또 전시장에서 입고 있었던 양복보다 물감이 예술처럼 번진 작업복이 더욱 친근하게 보였다.
 
그는 대한민국 예술원 미술전과 함께 열리는 제13회 마니프(MANIF·10월 19일~11월 1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도 참여한다. 마니프는 화랑별로 작품을 전시하는 다른 아트페어와는 달리 130여명 작가별로 전시실을 운영한다.
 
반 세기 동안 산을 그려온 이유는 무엇인가.  “산이 좋기 때문이다. 산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 사계절이 있고 인내와 순응이라는 자연철학이 있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에는 선배들이 ‘산을 잘 그리려면 산에 올라야 한다’고 한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나중에야 그 뜻을 알았다. 산 정상에 오르니 산이 아주 잘 보였다. 의대생들이 해부학을 배우듯 산을 타면서 산맥과 산세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50년 이상 그림을 그려왔지만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내 그림이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의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괴로움 없이는 창작을 할 수 없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 “아주 어려서부터 그렸지만 정식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3때였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권유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어릴 적 꿈이 원래 화가였나. “그렇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했는데 나중에 인정을 해주셨다. 대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마땅한 선생님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개인 레슨도 제대로 받지 않고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는데. “실기 과제가 그릇에 담긴 사과를 그리는 것이었다. 동쪽에서 햇빛이 비춘다고 했는데, 나는 서쪽에서 해가 비추는 정물화를 그렸다. 마감 시간을 얼마 안 남겨놓고 막 지우고 다시 그렸는데 독특한 질감이 생겨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국전에서 특선을 했지만 가난 때문에 계속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대학시절 재료가 부족해 아끼고 아끼면서 그림을 그려야 할 때도 힘들었지만, 결혼하고 가장이 됐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림으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걱정됐다. 당시에는 아내가 먹 갈아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새벽 5시 반쯤 일어나 운동과 목욕을 한다. 그 덕에 매일 9시부터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규칙적으로 작업을 해야지 리듬이 깨지면 안 된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먼저 재료가 다르다. 한국화는 먹과 한지를 사용하고 서양화는 유화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한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서양화는 신체의 눈으로 보고 그리지만 동양화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화를 그리면서 괴로울 때가 많았다. 먹이 한지에 번져 들어갈 때는 멋있는데 마르고 나면 가벼운 느낌이 너무 아쉬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종이를 불로 지지고 두드리는 등 각종 실험을 다 해봤다. 지금은 멀리서 보면 큰 덩어리 질감이 파스텔로 그린 듯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 한국화 순수 기법임을 알 수 있다.”
 
민 화백의 그림 색감은 서양 유화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한국화의 매력은 번짐이다. 이는 움직임을 느끼게 해준다. 또 내가 사용하는 색은 모두 식물성 재료를 통해 얻은 것이라 산과 자연을 표현하기에 좋다.”
 

“한국 미술 수준 낮아지고 시장은 너무 과열”

 
요즘 국내 미술계에서 한국화의 위상은 어떠한가. “선진국에 문호개방을 하고 난 후 한국 미술 수준은 계속 낮아졌다.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있다. 서구를 너무 추종하다 보니까 자기 것을 잃어버린다. 자기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데 말이다. 또 후배들이 기초를 연마할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옛것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말이다. 미술 작품으로 일확천금이라는 결과를 얻기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그림 쇼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술 투자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철저한 학습 후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데, 당장 팔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니까 미술 작품이 점점 우리의 정서와는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원로의 작품들은 점점 소외되고 신예스타 작품들만 가격이 치솟는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얼마나 지속될지 미지수다. 작품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 평가해주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저변이 확대되고 미술품 경매와 판매시장이 커진다며 반기는 측도 있다. “작년에 1000억원대의 매출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경매회사가 가져가는 커미션이 30% 정도를 차지했다. 외국에서는 화랑이 경매를 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아예 주도를 하고 있다. 침체됐던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문화 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
 
후배를 양성할 생각은 없나. “요즘 후배들은 자기 세계를 강조하기 때문에 별로 가르쳐 줄 것도 없다. 미술계의 현주소는 비싼 작가가 우선이고 먼저 죽으면 선배다.”
 
화가가 안 됐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 “무엇을 했을까는 그림만 그려온 나로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인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붓을 들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다. 80세는 돼야 그림이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1기 ‘동열(童悅)’  

 

민경갑 화백이 말하는 시기별 작품

내 작품 세계는 195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총 5기로 구분된다. 기본적으로는 산과 자연을 주제로 해왔지만 그 표현방식과 철학이 변한 것이다.


1기 파괴와 도전(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대학 졸업 후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관습을 깨려 했다. 선배들 역시 무조건적인 존경을 강조하지 않았고 후배들이 새로운 능력을 보여주길 바랐다. 당시는 화가와 대중을 연결해주는 만들어주는 매스컴도 없었고 살기도 힘들었다.


2기 자연과의 조화(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어떻게 하면 자연을 더욱 미화시키고 인간과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산수·인물·화조 등 소재의 폭이 넓어졌고, 수묵·채색 등 기법도 다양해졌다.


3기 자연과의 공존(1990년대 중ㆍ후반)
자연과의 조화를 넘어 공존를 모색했다. 이때는 단순하면서 감각적인 화면이 전체적 이미지를 주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체적인 표현은 이미지화되고 그림 이외는 전부 여백으로 생각했다.


4기 자연 속으로(2000~2002년)
자연과 물아일체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이때 한국인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한국의 샤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예를 들면 나무에 하얀색 혹은 빨간색 천을 달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소박한 신념에서 비롯된 하나의 기원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래서 샤머니즘과 우리의 색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5기 무위(無爲ㆍ2003년~현재)
노자의 사상과 같은 무위자연을 표현하고 싶다. 자연의 질서는 결코 인간이 파괴할 수 없다. 그림은 작가가 의도한 어떤 대상이나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표현하지만 그 표현이 작위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
손유정 인턴기자ㆍ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3년

 

2기 ‘여명(黎明)’

 

3기 ‘산울림’ / 5기 ‘무위(無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