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마당, 아파트로 들어오다

세칸 2007. 11. 21. 15:17

 

여기서 즐겨라, 그대 상상속의 욕망을

[아파트 변혁을 꿈꾸다] 마당, 아파트로 들어오다

 

가구마다 두 층 높이의 마당이 설치된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거치는 이 공간은 바람도 불고 바깥 소리도 들리는 곳이다. 좀 더 넓고 크게 조성된 마당에서는 농구 경기와 같은 활동도 가능하다. 컴퓨터그래픽=SALT건축연구소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두 종류로 나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

이 땅에 아파트가 세워진 지 40년. 한국의 아파트는 독특하다. 곧 허물어질 것으로 진단 받으면 값이 폭등한다. 인테리어에는 신경을 쏟지만 아파트 건물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 일확천금의 기회면서 사회적 지위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아파트는 온 국민의 관심사지만 한국의 아파트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바뀌어야 한다. 값이 많이 오르는 아파트에서 살기 좋은 아파트로, 단절된 아파트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아파트로, 환경을 파괴하는 아파트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아파트로.

10명의 소장 건축가가 나섰다. 이들은 각각 매주 한 번 파격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아파트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건강한 아파트 문화를 향한 젊은 건축가들의 꿈을 소개한다.》

 

집을 쌓아 올려 만든 것. 아파트에 관한 인식은 대개 이렇다. 그러나 집, 주택은 건물과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주택이 아파트가 되는 과정에서 건물은 쌓였지만 마당은 사라졌다. 놀이와 여가의 감수성을 담을 빈 공간이 사라지고 아파트에는 대신 계단, 엘리베이터, 복도라는 기능적인 장치들이 들어섰다. 아파트는 살기 위해 쌓아올린 기계의 모습이 된 것이다.

편하다, 안전하다. 아파트의 성취는 눈부시다. 그러나 획일화, 익명성의 비난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아쉬워하는 것들은 대개 마당과 함께 사라진 것들이다.

 

개인의 마당―현관문 열면 뜰이 보인다

이제 아파트에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발코니와 같이 흔적만 남아 있다가 확장공사의 제물이 되는 공간이 아니다. 바람도 불고 바깥 소리도 들리는 곳. 나무도 자라고 농구도 할 수 있는 마당.

여기서 제시되는 마당은 두 층 높이를 갖는다. 따라서 단위 가구는 복층형이 기준이다. 현관으로 들어갈 때는 당연히 마당을 거친다. 지금의 아파트들은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바로 현관문이 연결된다. 입구의 위치가 고정되는 조건은 아파트의 평면을 만드는 데 커다란 구속이다.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달라도 전국의 아파트가 방과 거실이 빼곡한 채 모두 비슷한 평면을 갖게 된 것은 ‘현관 위치의 고정’이라는 업보에서 시작한다. 마당을 통해 현관으로 들어서게 되면 훨씬 더 자유로운 평면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아파트가 주택을 닮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로 주차장 상가 차곡차곡 아파트 중간에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마당이 조성된다. 탁아소, 체육시설, 근린상업시설이 설치된 부분의 옥상에는 숲이 조성될 수 있다. 이 옥상은 때로는 운동장으로 디자인될 수도 있다. 자동차 도로 위에 대중교통로가 존재한다. 그 위에 주차장, 상업시설이 차례로 올라선다. 도로의 아랫면은 업무시설이다. 컴퓨터그래픽=SALT건축연구소  

 

마을의 마당―건물 허리에 공동시설을

마을 마당도 필요하다. 이제 지리적, 혈연적 인근관계에 의해 형성되던 공동체의 시대가 지나갔다. 새로운 공동체는 사회적 인근관계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혼합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중요하다고 해도 도시의 공동체는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동마다 이러한 공동체를 담을 수 있는 마을 마당이 조성된다. 건물의 허리 부분이 그 위치다.

유아원이나 탁아소가 필수적인 마을 마당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초등학교는 도시설계에서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요소였다. 아파트 설계에서는 유아원, 탁아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육아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유능한 여성인력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여성인력을 좌절시켜 온 이 문제의 해결 주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탁아소는 아파트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마을 마당이 되어야 한다.

체육시설, 상업시설 등의 공간도 마을 마당으로, 건물의 한 부분이 된다. 지금 과잉 중복 공급되는 세탁실과 같은 부분도 공용 세탁공간으로 새로운 마을 마당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도시에서는 자연지형을 깎아 평지를 만든 후 도로와 대지를 조성해 왔다. 여기서는 자연지형에 맞춘 건물 위에 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를 세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컴퓨터그래픽=SALT건축연구소

 

도시의 마당―공중도로 만들면 숲은 그대로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는 택지를 공급하기 위해 계속 확장되고 조성되었다. 도시의 개발주체들은 이전의 자연과 지형을 변화시켜 도로를 만든 후 구획된 대지를 분양하면서 신도시를 만들어 왔다. 경사면은 깎고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 들어서는 아파트들은 시끄럽고 위험하다고 도로를 혐오해 왔다.

우리에게 얼마나 더 신도시가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면 그 도시의 대지는 도로 위를 이용할 수 있다. 도로의 상부는 주거공간이고 하부는 업무공간이 될 수 있다. 평지를 요구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깎고 메울 필요가 없다. 이전에 대지가 되기 위해 희생되던 자연은 그대로 자연으로 남을 수 있다. 아파트 창밖으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숲이 보이게 된다. 그 숲은 도시의 마당으로 남는 것이다.

 


서현 건축가 · 한양대 교수

-필자 약력-

서울대 건축과, 서울대 대학원 건축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졸업

저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등

건축 작품: 효형출판사 사옥(경기 파주시) 서울대 인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서울 관악구) 해심헌(제주시) 김천상공회의소(경북 김천시) 등

현재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SALT건축연구소 지도교수

 

 

 

 

※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017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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