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공예가 고무영

세칸 2007. 9. 15. 15:21

공예가 고무영

 

 

노력과 땀으로 꿈을 키워가는 사람

2002년 이타미국제공예전(2002 Itami International Craft Exhibition)에서 한국인이 대상에 올랐다.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국제 공예전이고, 현대공예이기에 유리와 금속 등 모든 공예품들이 경쟁을 치렀다. 그 중에서 목공예로 당당히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공예가 고무영의 이름 옆에는 너무 간단한 소개만이 있었다. 이름과 그 전년도의 "2001 청주 국제공예공모전"의 동상 수상경력과 몇 줄만이 남겨져 있었다.
고무영은 학연과 지연등 그 모든 것을 상대로 경쟁했다고 말한다. 그가 그의 경력과 학력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도구로 삼는 것이 싫어서 였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기능인이 아닌 공예가가 되고 말겠다고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처음부터 기능인이 아닌 공예가가 되기 위해
Image_View공예가 고무영은 어린 시절부터 각오가 남달랐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당시 그 지역의 명문고등학교에 지원하기로 하고 학교의 입시특수반에서 노력하고 있었으나 그 이듬해부터 고교입시가 없어지면서 추첨식 배정이 실시되었다. 그렇게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그는 차라리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끝에 알아본 것이 "정수직업훈련원"이였다.
"당시 정수직업훈련원의 기대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직접지시로 진행된 일이기도 했고 전국에서 우수한 고교인력을 전문기술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만들어졌던 겁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1기 모집생이었으니까요"라며 당시를 설명해 주었다.
당시의 강사진도 대학의 교육을 맡을 유명한 사람들이 했다고 한다. 또 수없이 이곳 출신들의 교육생이 사회에서 가져야 할 사명감과 역할에 대한 많은 교육이 있던 터라 작가 고무영 또한 "난 기능인이 아니라 최고의 공예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늘 자신감과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기까지
Image_View그는 지난 6월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이제서라도 개인전을 열 수 있었던 건 지난해 국제공모전에서의 대상이 최고가 되겠다는 그의 꿈에 일부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동안 수많은 국내 공모전과 경진대회에 출품했지만 번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입선으로 끝냈었다. 그래서 90년도 이후부터는 한동안 작품출품도 하지 않았다. 학맥과 인맥의 벽이 너무 높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01년부터는 차라리 외국의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심사하는 국제공모전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국제공모전을 출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그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동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이듬해 26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제공모전인 "이타미 국제공예공모전"에서 작품 "합창(Chorus)"으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 6월 그는 그간에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던 내부와 외부의 생각들, 어떤 테두리 안의 사람들과 그 밖의 사람들, 그런 모든 것들과 융합하는 의미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의 개인전을 열었던 것이다.

 


최고의 테크닉과 디자인을 쫓아
Image_View그는 지난 청주비엔날레의 동상수상 작품서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그만의 개성있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제 작품의 형상은 만개한 꽃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만개한 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고 테크닉을 표현해 나가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라는 그는 요즘은 옻칠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의 작품에 크기의 대소에 관계없이 세계 최고의 칠인 생옻칠을 이용해 습칠기법을 적용했다. 그는 옻을 많이 타는 편이다. 그는 얼마나 묽게해야 그가 원하는 침투를 하는지, 얼마나 여러차례해야 원하는 도막을 만드는지를 계속 반복한 끝에 마침내 원하던 빛깔의 목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생옷칠을 고집하는 것은 옻칠이 아니면 그가 원하는 것을 찼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예가 고무영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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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번 작품에 쓰고 있는 나무는 홍송이다.
홍송은 일반적인 자재이지만 공예가 고무영이 찼는 나무는 좀 더 현대공예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모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
그렇게 고르는 나무들의 크기부터가 문제가 된다. 그는 이번에 길이는 최고 1500mm, 두께와 폭은 최고 400mm, 300mm의 큰 목재를 사용했다. 이런 목재를 터지지 않게 건조하고 속을 파내고 또 다시 그 위에 조각을 해야하니 목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정성들여 고르고 만든 자재는 그가 목재의 결을 살리기 위해 곧은결이든 무늬결이든 그 결을 모두 파내서 나무의 질감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홍송의 나뭇결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알면 그 공이 새삼스러울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전에 출품한 홍송 작품들 중 많은 작품을 "Street Furniture"로 구성했다. 그는 또 "공예의 본질은 "쓰임새"입니다. 사람들이 가까이서 만지고 쓸 수 있어야하고 생활의 많은 용도에 맞는 활용성을 가진 것이라야 합니다"라고 이번 전시회 작품들의 성격에 대해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