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건축연구소 살림의 [신 담틀집] 홍성 김종진씨의 34평 담틀집을 찾아서
흙건축연구소 살림(대표 김석균)이 1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어온 담틀집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연구되고 시공된 흙건축 공법을 몇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가장 자연친화적인 건축재료로 급부상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실험에 놓여있는 흙. 이를 이용한 다양한 건축형태와 각각의 전문가가 제안하는 노하우를 모아 국내 흙건축 발전의 거름으로 삼아 보자는 취지의 기획이다.
동네 사람들 몇 명이 달려들어 마치 도둑이 들듯 며칠 만에 뚝딱 지어진 집이라고 해서 일명 도둑집이라고 불리었던 흙담집. 흔히 지어졌던 우리의 살림집이었건만, 지금은 시골마을에서 쓰러져가는 흙담집의 흔적을 어렵사리 볼 수 있을 뿐이다. 흙담집이 자취를 감춘 사이, 일각에서는 과거의 흙담집을 짓던 공법을 현대화하여 오늘날 현실에 맞게 되살리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다짐흙집(rammed earth hose)이라고 번역되고 있으면서 호주, 미국 등 외국에서 활발히 시공되고 있는 이 공법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부활한 것은 1997년. 건축가 정기용씨가 설계한 파주의 연다산리주택을 가르켜 현대적 담틀공법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 후 10년간 현대적 담틀집을 짓고자하는 젊은 설계자와 시공자들의 노력과 실험이 이어져 왔다.
연다산리주택 시공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담틀집의 매력에 푹 빠져 10년 넘게 담틀공법 연구에 힘을 쏟아온 흙건축연구소 살림의 김석균(46) 대표도 몇 되지 않은 이 분야 전문가다. 처음 몇 년간은 흙의 성격조차 알지 못해 겪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10년의 세월은 “도심에서의 담틀집 건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의 노하우를 남겼다. 그가 많은 수업료를 지불하며 발전시킨 현대적인 담틀집의 모습과 시공과정을 공개한다. 지난해 지어진 충남 홍성 김종진씨의 34평 담틀집을 통해 흙건축연구소 살림의 노력으로 오늘날 다시 부활되고 있는 ‘新 담틀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현대적 평면에 흙담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집
충남 홍성 풀무농업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김종진씨가 담틀집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04년 여름, 풀무학교전공부에서 개최한 건축캠프에서였다. 이때 김씨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장인집 창고를 담틀공법으로 짓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큰 아이가 심한 아토피 증상을 보였어요. 병원에서는 무조건 아파트생활을 벗어나 건강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라는데, 다른 재료의 덧붙임 없이 흙만으로 온전하게 벽을 쌓아올려 지을 수 있는 담틀집에 믿음이 가더군요.” 김씨는 지인에게 설계를 맡기고 살림흙건축연구소 김석균 대표에게 시공을 의뢰해 2004년 10월 착공, 지난해 봄 입주했다.
34평 규모의 담틀집은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한 공동공간과 아이들과 부부의 방이 모여있는 사적공간이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져 있다. 구석구석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해 아기자기한 실내를 연출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또 양쪽 공간의 지붕은 낮추고 가운데 지붕은 올려서 마치 논과 밭 앞에 허리 숙여 일하고 있는 듯한 겸손한 모습의 외관을 만들었다.
담틀집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남서향으로 향하는 거실과 복도 면을 따라 현관까지 길게 이어지는 진입로의 벽면이다. 거푸집을 세워서 그 안에 흙을 채우고 다지는 것을 반복해가며 만들어내는 담틀집의 매력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퇴적층 같은 느낌을 주는 결들은 흙이 지닌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실감나게 드러낸다. 김씨 집의 모든 내력벽은 거푸집 안에 흙을 채워 벽을 만드는 담틀공법으로 시공됐다. 거푸집을 걷어낸 바깥쪽 흙벽 위에는 비로부터 벽을 보호하기 위해 발수제를 발라주었고, 실내의 흙벽에는 통기가 되는 한지를 얇게 바르는 것으로 마감공사가 끝났다. 담틀공법으로 만든 40cm 두께의 벽이 집을 지탱하는 구조재이자 마감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적을 쌓아 올려 만든 비내력벽에는 메쉬를 걸어 황토를 발라 주었다. 실내 바닥은 콘크리트 위에 보일러 바닥난방을 하고 황토미장으로 마무리한 후 마루와 장판을 깔았다. 부부의 방에는 전통 겹구들과 굴뚝을 놓고 그 위에 다시 보일러 난방을 설치해서 필요에 따라 난방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붕에는 경량목구조의 시공방식을 적용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슐레이션이나 스티로폼 대신 왕겨를 천장 단열재로 사용했다는 것. 백년 된 한옥의 술창고를 뜯다가 돌과 흙벽 사이에서 나온 왕겨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이 술창고는 1년내내 1~6도를 항시 유지했다고 한다. 벌레나 쥐의 소굴이 될 것을 우려해 흙, 생석회, 완전히 건조된 왕겨를 섞어서 사용하고 지붕에 벤틸레이터를 만들어 환기가 되게끔 했는데, 아직까지 벌레가 없는 것은 물론 겨울철 난방효과도 좋다는 집주인의 평이다.
김씨의 담틀집은 어릴적 시골에서 보던 담집들과는 사뭇 다르다. 벽면의 결도 고르고 매끈할 뿐 아니라 벽체의 휘어짐이나 울퉁불퉁함을 느낄 수 없다. 평면도 현대적이며 공간구성도 자유자재로 다채롭다. 담틀공법으로 내력벽을 만든 것을 제외하고는 기초공사, 바닥공사, 지붕공사 등에 현대적인 공법들과 재료들이 접목되고 있다.
흙건축연구소 살림의 담틀집짓기 10년 노하우를 담은 집
지난 97년 김석균 대표가 처음으로 담틀집을 지을 때만 해도 흙다짐 기계조차 변변한 게 없었다. 거푸집을 떼어낼 때 발생한 크랙을 보수하는데만도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흙담 윗부분에서 내부로 물이 스며들어가 어렵게 쌓은 담을 다시 털어낸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 대표는 외국의 흙건축사이트와 외국전문서적을 종횡무진하며 거푸집부터 흙다짐 도구, 흙의 배합률까지 찾아 기록하고 현장에 적응하는 실험을 거듭했다. 지금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거푸집을 사용해 고르고 깨끗한 벽면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적당한 합판 크기와 볼트의 굵기, 구멍의 위치 등을 찾기까지는 많은 수업비를 지불해야 했다. 구조적 문제로 인해 흙담에 크랙이 가는 하자도 극복했고, 점토질로 이뤄진 표면이 비바람으로 인해 부스러지는 것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시공기술의 발전을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틀집은 여러 가지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도하게 요구되는 노동력을 줄이는 것이다. 덤프트럭으로 날라 온 흙을 삽으로 퍼서 양동이에 일일이 담아 거푸집에 쏟아 붓고 다지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엔 기중기 끝에 달려서 모래나 흙을 퍼 올리는 버킷을 이용해 거푸집에 흙을 담았더니 공사기간 단축효과가 기대이상으로 컸다. 이처럼 몇 가지 작업과정만 개선되어도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 흙으로 짓는 공법들이 다른 공법과 비교해 특별히 싸진 않지만 비싸지도 않다. 홍성 김종진씨의 34평 담틀집에 소요된 비용은 평당 300만원 정도. 재료비가 차지하는 범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건비에 달렸다. 담틀집의 하자는 개구부에서 많이 발생한다. 흙담은 위아래로부터 스며드는 물만 잘 막아주면 구조적 결함으로부터 안전한데 비해, 개구부의 크랙은 메쉬나 철근으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지만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호주에서는 흙건축과 관련해 흙의 배합비나 두께를 정한 기준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흙다짐공법에 대한 시방서를 만들고 구조강도들을 정리하는 것이 시급하죠. 물론 경험적으로는 충분히 시공이 가능하지만 좀 더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농가주택의 일반적인 공사비 내에서 담틀공법을 적용할 수 있는 정도의 시방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흙건축의 기술을 자신만의 노하우라 생각하고 감추려 하기보다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내어놓고 서로가 부족한 것을 나누어 가져서, 보다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건축형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틀집은 자급자족해서 누구나 지을 수 있고 그 자체가 마감이 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법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담틀집에 대한 궁금증 풀이
별도의 구조재가 필요하지 않나요?
흙벽돌로 집을 지을 경우에는 목구조로 구조를 안전하게 잡아줘야 하지만 담틀은 구조재가 필요 없다. 흙을 다져서 굳힌 벽은 그 자체로 구조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정도로 강하고 안정적이다. 외국에서는 흙다짐공법으로 2~3층까지 올라간 건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은 모든 건축의 전제사항이다. 우리나라의 법적기준에 따르면 흙담의 두께는 45㎝. 그러나 40㎝ 정도면 충분히 구조재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으며 담틀집 시공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호주에서는 30㎝ 두께로 시공한다.
단열성능은 어떤가요?
다른 건축재료에 비해 열단열 개수는 떨어지지만 열을 가둬두었다가 천천히 내보내는 축열기능이 뛰어나 단열성능의 부족함을 상쇄한다고 보고 있다. 축열성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심야보일러 등을 이용해 공기를 데우는 난방을 해야 하며, 필름으로 하는 바닥난방은 권하지 않는다. 필름난방은 공기를 데우지 못하기 때문에 춥다고 느낄 수 있다.
흙담이 비에 젖거나 풍화되지 않을까요?
흙의 가장 큰 적은 빗물이다. 그러나 흙을 다져서 만든 흙담은 비에 강하다. 풍화가 어느 기간에 얼마만큼 일어나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담틀공법으로 만든 열주를 세워둔 지 2년이 되었는데, 표면에 손을 대면 점토질의 흙이 살짝 묻어나는 정도다. 전문가들은 표면의 점토질이 벗겨지고 단단한 사토질이 나오면 더 이상 풍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기초가 부실해서 담틀 아래로부터 수분이 유입된다거나 흙담 위쪽의 단면에서 물이 스며들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의 풍화작용으로 구조적하자를 일으킬 일은 없다는 것. 아마인유와 같은 천연발수제나 수성계열의 발수제를 1년에 한차례 정도 발라주면 도움이 된다.
담틀집의 재료준비
흙 담틀집을 지을 때 필요한 흙은 모래성분이 많아야 하고 접착 역할을 하는 점토가 약간은 있어야 흙의 다짐을 원활히 할 수 있다. 점토가 너무 많으면 건조후 크랙이 발생할 수 있으며 수축의 문제들을 야기시킬 수 있다. 여러 크기의 입자들의 적당한 분포가 이상적이다. 이상적인 흙배합을 위해 침전법과 거름체법을 활용하는데, 흙 표본을 가지고 어떤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지 현장실험을 하는 것이다. 담틀공법을 위한 흙은 70% 가량의 자갈과 모래, 30% 정도의 점토로 구성되어야 한다.
흙속의 수분 흙속의 물의 양은 다졌을 때 얻어지는 밀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흙에 약간 물을 묻혀서 흙덩어리를 만든 다음 단단한 합판에 떨어뜨리는 시험으로 수분양을 체크한다. 흙덩어리가 몇 개의 덩어리로 깨어지는 정도가 적당. 시공과정에서 흙을 사용할 때마다 낙하시험을 반복한다.
흙과 다른 재료의 배합 흙에 석회나 시멘트를 배합하면 구조체의 강도를 증가시키고 건축시공을 빠르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멘트의 사용을 병적으로 싫어하지만 3~4% 정도의 일정 비율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다. 흙을 배합할 때는 주변 대지의 표토라든지 다른 재료들이 섞이지 않게 주의한다.
담틀 어떤 담틀을 사용하는가는 흙담의 퀄리티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담틀은 측면을 형성하는 합판이나 판재, 담틀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마구리판, 측면의 판재와 마구리판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볼트 등으로 구성된다.
램머와 공이 흙담을 다지는 데 사용하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흙은 형틀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서 작업이 되는데 한번에 최대 100㎜두께로 흙을 깔고 다져서 50~70㎜ 가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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