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스며있는 지혜와 개성
목수의 집구경 산책 - 한옥으로의 초대
http://www.hanok.org/housestory4.htm [한옥문화원]
첫째. 한옥의 높은 기단
고온 다습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지표 가깝게 자리를 마련하면 습기가 올라온다. 여름철이면 그 정도가 대단해서 눅눅하기가 짝이 없다. 한옥은 움집을 지표에 노출시킨 이후로 차츰 바닥을 높이면서 지표에서 떨어지는 방도를 취하였다.
기단이라 부르는 댓돌(또는 죽담)을 여러 겹 축조하여 높게 만들고 그 위에 주초 놓아 집을 짓는 방법을 보편화시켰다. 지습(地濕)을 현저히 줄이는 결과가 되었고 쾌적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 중원 한족들의 집이 북경 사합원(四合院)에서 처럼 댓돌을 외벌로 낮게 만든 것과 비교된다.
* 일본식 목조건축은 댓돌을 낮게 하거나 생략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현대식 한국 양옥에서도 댓돌을 낮게 만들어 시멘트집 담벼락과 바닥에 곰팡이가 피는 수가 있다.
둘째. 한옥의 깊은 처마
목조건축인 우리 한옥은 깊은 처마를 갖고 있다. 그런 처마는 직사광선을 막아주며, 처마밑의 공간은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추위와 더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어 생활에 도움이 된다.
가. 태양열의 이용
(1).태양의 남중고도
* 낮 열두 시에 뜬 태양의 높이를 남중고도(南中高度)라 부른다.
* 우리 나라의 태양은 여름철에 높이 뜬다. 서울의 경우는 하지(夏至)날 정오 태양 높이는 약 70도.
* 지평선에 기둥이 90도일 때 70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중천에 높이 떴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 겨울철 동짓날 정오의 남중고도는 약 35도로 낮게 뜬다.
---남중고도는 북위(북위)의 위도에 따라 그 높이가 다르다.---
(2).처마 기능과 태양
여름철 태양이 높이 떴을 때 깊은 처마는 차양이 되어 뙤약볕을 가린다. 가리면 그늘이 진다. 그늘지면 시원하다. 큰 나무 그늘밑이 시원한 이치나 마찬가지다.
그늘진 곳은 뙤약볕 받는 마당 보다 시원하다. 차고 더우면 대류가 생기고 바람기가 일어난다.
겨울철엔 낮게 뜬 태양 볕이 방안 깊숙이 투사된다. 집안이 따뜻해진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 찬바람에 밀려 배출되다가도 깊은 처마에 걸리면 머문다. 더구나 경사진 서까래가 앞을 가로막아 더운 공기는 장시간 체류한다. 그만큼 따뜻할 수 있다.
(3).현대 건축의 처마(양옥의 반란)
양옥은 처마를 얕게 하거나 무시하였다. 이글거리는 뙤약볕이 집안에 가득 찼다. 무척 무덥다. 냉방해야 견딜 만 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하루종일 가동하는 냉방에 막대한 경비를 지불한다.
이럴 때 처마가 있어 태양열을 조절하는 기능을 발휘하면 아주 무더운 날 약간만 냉방하면 한여름을 그냥 저냥 지낼 수 있고, 그만큼의 절약 효과를 얻는다.
(4).제도 속의 처마(세금의 제약)
처마가 깊다고 건평으로 계산해 세금 받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결과는 처마의 채택이나 발달을 극도로 저해하였다.
어이없는 제도가 낭비를 부축이고 있다. 당연히 시정 되야 한다.
나. 처마와 조명
(1).처마의 차양 기능
태양이 볕을 가린다는 것은 직사광선이 투사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직사광선이 실내를 조명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이 밝고 명랑하다는 것은 마당에서 반사된 빛이 건물 내부를 간접 조명하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2).간접 조명의 효능
간접 조명에 적응한 우리 얼굴은 직사광선 받는 서양인 얼굴과 다르다.
건물 외부에 설치한 서양 조각 얼굴이 직사광선 조명에 적응된 것이라면 우리 법당 불상은 반사광선을 의식한 조각 기법으로 조성되었다. 한국 여인들은 볕이 들면 바로 양산 쓰는데 서양인들은 일광욕을 즐긴다. 반사광선을 선호하는 민족과 직사광선을 희구하는 민족간의 차이이다.
집은 민족의 그런 성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3).우리의 반성
우리 각급 학교 교실은 처마 없는 서양식 건물에 있다. 유리창가의 아이는 뙤약볕 비치는 자리에서 시차에 따라 펴놓은 책의 한쪽은 직사광선에, 나머지 한쪽은 그늘에 드는 기막힌 경험을 한다.
통로 쪽 아이는 얼비치는 칠판 글씨 보느라 애 쓴다. 결과는 난시가 발생하고 안경 낀 아이들이 늘었다. 결국 현대건축이 초래한 무책임한 횡포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점을 시정할 마련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터무니없는 현실이다.
우리 미술교실에서는 직사광선용 기법으로 조성한 서양사람 얼굴의 석고상을 열심히 그린다. 아름다움의 함양이 초기 교육에서 비롯된다면 우리와 성정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익히도록 하였을 때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예측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화바람이 몰고 온 서양 위주의 성향이 우리를 이렇게 혼돈 시켰다.
(4).이런 일은 ?
지금 서양에서는 직접조명 보다 간접조명이 고급스럽다고 천장 등을 끄고 스텐드를 사용하는 경향이다. 혼돈 된 개화의식은 이런 때 과연 어떻게 하려고 하려는지 ?
셋째. 한옥의 인격
한옥의 모든 규격은 인체에 직결되었다. 인체와의 부합을 암시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눈에 뜨여 이리 저리로 비교하면서 분석할 수 있다.
한옥은 쓸모 있게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살림살이가 심중하게 배려되었으며 삶의 질을 향상하는 교육 도량으로서의 기능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개화 바람에 들뜬 보편적인 집엔 그런 의도가 고려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집은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고 주부들을 밖으로 나돌게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 수평 기준선, 눈의 높이
(1). 평균 신장
한국인들은 4척이면 작은 키, 6척이면 큰 키라 하면서 5척을 평균 신장으로 보았다. 평균 신장 5척(영조척 32.21cm x 5=161.05 약 161cm)이 집 구성의 기본단위이다.
(2). 눈의 높이
안마당에 서서 바라다보았을 때의 평균 신장이 지닌 눈의 높이(150cm)가 수평기준선이 되는데 안방 머름대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눈의 높이를 수평을 기준으로 해서 하부구조와 상부 구조를 구분한다. "높다"는 수평 기준선 위에 있는 것이고 "낮다"는 기준선 아래에 있음을 지칭한다.
툇마루에 올라선 키의 눈 높이 기준은 방 앞쪽 머름 드린 창틀의 인방 하단 높이와 맞고 어깨 넓이 1.8척의 3배수와 일치한다.
(3). 어깨 넓이
어깨 넓이는 1.8척(32.21x1.8=57.978 약58cm)이며 영조척(營造尺) 8척 주간(柱間)일 때의 머름대 위 두 짝 덧창을 설치했을 경우 그 덧창 한 짝의 넓이와 일치한다. (두 짝 창이 열려 기둥 옆에 살며시 들어가면, 기둥을 제외한 간격이 1.8 X 4=7.2척에 기둥 좌우 기둥의 중심선으로 부터의 간격 0.8척이 더해져 8척을 이룬 수)
1.8척은 방바닥에서 머름대 상단까지의 높이와 동일하다. 머름대 높이가 정해지면 문갑 높이와 다른 가구들의 높이도 정해지게 된다.
(4). 방의 넓이
신라 시대와 조선시대의 건축 법령이 현재 알려져 있다.('자료'편에 법령 전문과 그 해석법이 수록되어 있음) 신라 시대 법령 중에는 방 넓이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생활공간의 설정은 오늘에 첫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삼국시대로 부터 있어왔고 {삼국사기}에는 통일한 이후의 법령이라고 생각되는 [옥사(屋舍)]에 관한 명료한 조항이 명기되어 있다. 신라시대는 골품제도가 기본이었다. 신분별로 차이를 두었다.
백성의 집 15척 사방의 넓이. 사, 오두품 18척 사방. 육두품 21척. 진골 24척.
(5). 법려의 수리(數理)
이들 수치는 3 x 5=15, 3 x 6=18, 3 x 7=21, 3 x 8=24의 규칙을 지녔다.
이들의 수는 3과 5가 상관된 15로부터 시작된다고 木壽는 해석하고 있는데 3은 <天 一, 地 一, 人 一>의 합수인 三의 의미이기도 하고 또는 집의 기반 1.과 집의 벽체 1.과 집의 지붕 1.이 함축되어 있는 우주형상의 수이다. 때로는 대지 1. 사람의 존재 1. 우주가 1.이 되는 삼원(三元)의 수라 부르기도 한다.
5는 신라인의 평균신장이기도 하며, 반천(半天)의 수에 해당하는 매우 철리(哲理)적인 의미를 지녔다. 1에서 9까지와 15가 이루는 수리에 대하여는 「사랑방이야기」에서 해석을 시도하였으므로 참고하면 유익할 것이다.
5척의 평균신장은 4척이면 단신이고 6척이면 장신이라 한데서 알 수 있는데 그런 수치는 『삼국유사』 등에서도 볼 수 있고 오늘의 경우도 비슷한 평균신장을 보인다.
가장 기본이 되는 15척은 그런 의미의 3과 5가 상관되어 있다. 중우주(中宇宙)라는 집의 가치를 대단히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 안방의 넓이와 높이
얼마로 잡아야 방 넓이가 가장 쾌적할까?"
아무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새로 지어야할 집의 방 넓이를 얼마로 하느냐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다. 생전 쓰지 않던 줄자로 20세기 현대인의 방을 측정해 보지만 어떤 원칙에 따라 설정했는지 알 수 없고 아리송해서 멋지게 지어야할 내 집의 방 넓이를 얼마로 해야 마땅한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멀리 했던 책을 뒤진다. 사온 책 빌려온 책 온통 펴들고, 엎어놓고 이리저리 넘겨 봐도 왜 그런 수치로 그런 넓이를 하였는지, 그래서 인체에 어떤 유리한 점이 있는지의 설명이 부족하다.
서양책에 인체와 연관된 치수를 적은 자료가 눈에 뜨이나 그들과 생활방식이 서로 달라 새 한옥을 지을 판인데 다시 그런 치수를 받아드린다면 역시 문제가 있다.
살고 있는 집의 길이와 넓이를 다시 실측해 보지만 그 수치에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 까지 그런 크기 속에서 살아왔구나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살았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고향에 갔던 길에 안방을 측정해 보았다. 고향의 안채 안방은 아래, 위칸의 두 칸 방이다. 늘 좁아만 보이는 방이니까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넓이라도 한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랫목 벽에서 윗방과의 샛장지 까지 길이가 대략 2.48m이다. 아래 윗방 합하면 약 4.96m 이니까 5m 에 가깝다.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 방 측정해 보고 깜짝 놀랬다. 5m 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길이를 갖었다. 다시 수첩을 꺼내어 봤다.
뒷벽에서 방 앞까지 간격을 잰 치수를 보니 방의 너비가 3.3m 가량이다. 방 앞쪽으로 툇마루가 있다. 그 너비를 합산해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으나 대청 너비가 방과 퇴를 합친 것과 같으므로 측정해 보니 4.5m 가 조금 넘는다. '열두자 짜리 장농'이 들어가고도 남는 폭이다.
그렇다면 절대로 적은 방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좁아 보이지? 퇴를 내었기 때문일 터인데 퇴는 필요한 용도에 따라 생긴 것이므로 이런 너비 설정에 어떤 까닭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정방형과 장방형의 비례가 지니고 있는 사용면적의 효율성이나, 거기서 얻어지는 인격함양의 어떤 원리를 감안한 것이나 아닌지 하는 기미가 자꾸 느껴진다. 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던 부분이다.
다. 기 氣가 도는 우리집
백성의 집 15척 사방이면 대략 4.5m 가량이다. 자기 스스로 내 신분이 백성은 면하였고 적어도 육두품쯤은 되겠다 싶으면 21척 사방의 면적을 차지해 볼 수 있다. 1변이 6m 가 넘는 폭과 길이므로 넉넉하게 살 수 있다.
이왕지사에 진골의 호기를 부려보자 싶으면 24척 사방의 넓은 면적을 활용할 수 있다. 1변이 7.2m 가 넘을 듯 하니까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방 넓이와 맞먹는다.
15척 사방 넓이에서 천장을 얼마 높이로 할 것이냐를 아직 설정하지 못하였다. 이 설정에서 눈의 높이는 아주 중요하다.
눈의 높이를 기준으로 삼은 예를 하나 든다면 신라의 예는 아니지만 백성들이 안방에서 대청으로 나가는 맹장지 분합문에 설치된 불발기 창의 아래 부분의 높이가 앉은 이의 눈 높이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15척 너비를 조선시대 온돌방에 적응시켜본다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된다. 시설물이 앉은 이 눈 높이를 고려한 것이다.
15척 사방의 온돌방(신라에는 이런 온돌방이 없었음) 중앙에 점을 찍는다면 사방으로 7.5척식 나누어진다. 7.5척 중의 5척은 평균신장이므로 일단 제하면 2.5척이 남는데 이 2.5척이 앉아 있는 사람의 상징적인 앉은키에 해당한다. 약 75cm인데 이것을 기준선으로 잡고 그 위에 사람 키의 한길, 5자를 더하여주면 다시 7.5척 높이의 천장이 생기게 된다. 약 2.25m짜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18척 사방의 방에 사는 신분의 사람은 좌탑(坐榻)을 놓고 그 위에 앉는다. 눈의 높이가 상승하게 된다. 눈 높이가 상승하면 천장도 높아져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2.3m 정도는 맨바닥에 앉았을 때의 천장 높이므로 깔고 앉아 눈의 높이를 높였다면 상대적으로 천장과의 사이가 가까워졌고 "기"의 순환에 장애를 받는다.
그 장애는 기가 쇄해진 상태로 나타난다. 만일 천장을 바싹 내리면 기색하고 만다. 사다리 타고 천장 가까이 올라가면 호흡이 가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반대로 천장을 높이면 "기"가 승해지면서 우쭐대게 되다가 버썩 끌어올려 주면 기고만장이 된다.
쇠해도 나쁘고 과해도 온존하지 못하다면 알맞게 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 크는 아이들의 교육이나 산모의 태교에 도움이 된다.
대청은 앉아서 하는 일이 진행되기도 하나 서서 이동하는 공간의 기능도 지녔다. 여기 천장높이는 서있는 이의 평균신장에 다시 한길의 높이를 더한 수치로 설정된다. 종도리 까지 높이가 평균 10척인 점은 그것을 잘 말하여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양옥은 천장 높이가 일정해서 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낮은 천장에다 의자, 침대를 들여놓으면 자연히 기가 쇠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현대 건축의 방 넓이에도 이런 철학적 의미가 고려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다.
집은 인격 함양의 도량이기도 하다. 옛집엔 여러 가지 배려가 있었다. 20세기의 현대 건축에도 그런 의미가 내포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려는지?
라. 양옥의 천장
아파트라는 20세기가 남긴 전무후무한 고층의 집단 주거가 심지어 면소재지까지 파급되어 있을 정도로 보편성을 지녔는데 그 집 천장 높이는 방도, 거실도, 주방도 똑같게 일률적으로 구조되었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한국 살림집은 앉기도 하고 서서 움직이기도 하면서 살게 마련되어 있다. 주로 앉는 기능의 공간과 서서 활동해야 하는 공간은 인체를 고려하면서 천장 높이를 달리해 주어야 합리적인데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한옥은 앉아서 생활하는 방의 천장 높이와 서서 움직이는 일이 많은 대청의 천장 높이를 달리하였다. 생리적인 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고려된 구조이다.
이웃나라 살림집에서도 높낮이가 다른 천장 구조를 볼 수 있다.
넷째. 한옥의 난방
한옥의 구들은 매우 개성적이어서 특색을 잘 갖추고 있다. 부뚜막과 아궁이 고래와 개자리, 굴뚝을 완벽하게 구조하였다.
(1). 부뚜막
부엌에 부뚜막 설치하는 방식은 고구려에서는 흔하지 않던 시설이었다. 구들의 아궁이를 방안에 설치하는 것이 고구려 쪽구들의 구조였기 때문이다. 부뚜막은 후대에 채택되고 발전한다.
이웃나라에선 부뚜막 보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의 현대식 살림집에서도 부뚜막 보기는 드문 편이다. 한옥에서나 볼 수 있다.
(2). 굴뚝
한옥의 대표적 특성으로 눈에 잘 뜨이는 것이 굴뚝이다. 고장에 따라 여러 종류의 굴뚝이 만들어져 있어서 그들만 분류한대도 상당히 다양하다.
이웃나라에서는 굴뚝 보기가 어렵다. 있다고 해도 아주 소략한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굴뚝은 국가의 보물로 지정된 조선조의 작품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도 새로 짓는 현대 건축에서는 굴뚝 보기가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3). 아랫목
고래 켜고 구들장 놓은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고 그에 따라 장유유서의 예의와 질서가 있었다.
몸이 부실한 사람이 뜨끈한 아랫목에서 작시근하게 지지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하며, 아이 낳은 산모가 아랫목에서 산후 조리를 하면 거뜬하다고 해서 중히 여겼다.
우리 현대 살림집에도 온돌방이 있지만 아랫목이 없어졌고 그로 인해 장유유서의 위계 질서가 무너졌고 가구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소리가 높다.
회복하는 방도가 있다. 비록 온수파이프로 하는 시설이긴 하지만 파이프를 아랫목엔 촘촘히, 윗목엔 드물게 깔면 온도 차이로 아랫목과 윗목의 개념이 되살아난다.
인체는 필요에 따라 덥기도 하고 찬 맛을 보아야 혈액순환에 이롭다고 한다. 무조건 같은 온도는 인체에 유리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가구는 더운 것보다는 차고 시원해야 그 수명을 연장한다. 뜨거운 구들의 가구가 그 수명이 매우 짧다는데 대한 까닭이 된다.
다섯째. 마당 가꾸기
마당의 개념 - 원야(園冶)의 정서
집 지은 다음에 집 주변 정리가 요긴하다. 주변 정리에서 제일로 손꼽는 일이 마당 가꾸기이다.
조경과 마당 가꾸기는 근본부터 개념이 다르다. 가꾸기는 존재의 환경을 정리하는 일인데 조경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도를 지녔다. 이를 '원야'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 중에는 조경(造景)이라는 서구식 개념으로 불러야 지식인답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전래(傳來)하는 마당 가꾸기의 심성을 국립박물관장을 지내시다 작고하신 은사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선생께서 멋진 표현으로 정리한 글을 발표하였다. 지금 현대 문화인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실린 글 중에 다음에 인용한 「건축미에 나타난 자연관」이 그런 글이다.
「원래 한국사람들은 자연 풍광 속에 집 한 채 멋지게 들여세우는 뛰어난 천분을 지녔다.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몰론 큰 누대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뒷벌의 넓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는 지붕 높이와 크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형안은 상쾌하다고 할만큼 자동적으로 이것을 잘 가늠하는 재질을 지니고 있었다.
멀리 안산이 어떻게 보여야 되느니, 좌청룡 우백호가 어떠해야 되느니 하여 집안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반대로 먼 곳에서 그 집채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매우 대견하게 알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건축은 먼 곳에서 바라다 볼 때 한층 눈 맛이 나는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점지의 묘'를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요사이도 가끔 종로3가에서 돈화문 쪽을 바라보며 차를 달리노라면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 연봉들이 바로 돈화문 마루 위 일직선상에서 차츰 다가서는 희한한 눈 맛을 즐기게 된다.
대동강변에 자리 잡은 부벽루나 을밀대, 밀양 영남루나 진주 남강의 촉석루 등은 인공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자연의 풍광을 도운 좋은 예이다. 만약 불국사가 좀더 높은 곳에 자리잡았거나 더 얕은 곳에 세워졌더라도 지금 그렇게 아늑하고도 쾌적한 시계가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며 그리고 석가탑이나 다보탑이 그보다 더 웅장했거나 더 왜소했더라면 그 주위 구릉과 주산에 어떻게 비례되었을 것인지….
말하자면 한국사람들이 타고난 안복(眼福)의 하나가 바로 한국 건조물에 나타난 이러한 점지의 묘에도 있었다고 할만 하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자연에 관한 외경의 표징이다. 한국인은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지맥을 매우 존숭하는 민족이다. 마치 인간에 있어서 혈맥이 그 생명을 가늠하듯이 작게는 향토, 크게는 방가의 운명이 지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뒷동산의 잘생긴 바위 한 덩어리, 등 넘어가는 오솔길 한 갈래, 축동의 노목 한 그루에도 정령과 생명이 스며 있다는 생각, 즉 자연도 인간 못지 않은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사고였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의 뛰어난 경륜을 지닌 지성보다도 한 걸음 앞선, 자연보존의 존귀한 가치관과 신념을 지녔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외경은 한극의 건축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처럼 자연에 순종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문명인들은 매우 드물 것이다.」
조경이라는 서구식 사고방식을 터득한 현대인들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성향이 다르다.
고층 아파트라는 20세기 건축물이 차지하는 독선에서도 그런 점이 분명히 드러나 난다. 고층 아파트는 경관을 완전히 무시하려 한다. 뒷산의 아름다움 쫌은 안중에 없다. 그까짓 것 가린들 어떠랴 하는 오만이 넘친다.
인간의 신비한 산을 바라다보면서 아름다움을 함양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 아파트는 그런 욕구를 저해하는 비인간적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심성을 뒤흔들어 놓는 야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21세기 우리가 지향하는 한옥은 다시 자연과의 친화력을 복원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바로 마당 가꾸기도 그런 자세에서 이행되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주절주절 만들어 가득 차게 늘어놓으려 하고, 그리고는 그것을 조경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한 예를 들 수 있다. 일전에 어느 박물관 앞, 남쪽으로 열렸던 대문을 폐쇄하고 그 안마당에 이른바 조경을 하였다. 작가는 누군지 모르겠으나 내게 자문해 달라고 찾아온 사람은 한 여인이었다.
연당을 중심에 두고 정자를 조선조의 양식으로 짓고, 주변에 조선시대 왕궁에서나 볼 수 있는 꽃담을 만들어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안을 내게 설명하는 여인은 '전통 한국식 조경이라'고 주장하였다.
조선시대의 구조물을 필요에 따라 짜집기해서 이럭저럭 마당을 채우면 그것이 이른바 '전통 한국적인 조원'이 된다는 그 여인의 발상이 놀라웠다.
그 여인은 그런 짜집기가 어떻게 전통이 되느냐는 내 놀라움을 오히려 의아해 하였다. 멀쩡한 마당을 파 해치고 다시 채우는 기본 개념조차 불확실한 그런 작태가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면, 우리 최순우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평가하셨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일언지하에 혼을 내셨을 것이다. 당치도 않은 짓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여인은 그것이 터무니없다는 점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의 그 분야가 한심스러운 지경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게 생겼다.
최순우 선생이 지적하신 자연 속에 들어선 인공의 돋보임은 그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무시되고 있으며 전래되어 오던 전통은 완벽하게 부정되고 있는 지경에 있다.
21세기 한옥에서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식도 불식되어야 한다. 한옥에서의 마당 가꾸기는 바로 「현대의 뛰어난 경륜보다도 한 걸음 앞선, 자연 보존의 존귀한 가치관과 신념」을 되살리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마당 가꾸기의 기본 개념이다.
이웃나라 마당 가꾸기는 지극히 인위적이다. 일본에 자갈 깐 마당에 동심원을 긋던가 하면서 말쑥하게 정리한 그 인공을 우리는 익히 보고 있다.
중국 소주(蘇州) 지방이 대표하는 원림(園林)의 시설도 석회암 덩어리로 쌓은 석가산을 중심으로 지극히 인위적으로 조성하였음을 보고 있다.
그들은 차경借景을 원야의 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는 석가산 쌓은 둘레로 축조한 높은 담장으로 해서 바깥의 자연경관이 집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긴 허허벌판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일 조차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주장인 차경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이상의 추구이지 그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옥의 여건은 전혀 다르다. 눈만 들면 산이고 내려다보면 개울이 흐르고 있는 지경地境이 우리 금수강산이다. 천연스러운 것만큼 아름다움이 없다는 신념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의 마당 가꾸기는 오히려 인공을 덜 가미시킨 만큼, 그만큼 아름다움이 배가한다.
담양의 소쇄원에서도 배울 수 있다. 자연이 공여 해 준 바탕에 정서적인 감각을 투입하여 알맞게 즐길 수 있게 하는 절제된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다.
군더더기는 전혀 끼어 들지 않았다. 더구나 격에도 맞지 않는 온갖 것 다 늘어놓는 오늘의 이른바 '전통조경'과는 그 인식이 전혀 다르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에서 이른바 조경전문가가 재현한 세연정(洗然亭)은 규모나 구조가 당초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오늘의 조경의식이 염치없이 끼어 들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윤선도 선생의 원림도 천연의 무대에 사람의 겸손이 그윽하게 작용하는 정도에서 완성되었던 마음이었다.
한옥에서 마당 가꾸기의 으뜸은 집 주변 마당의 빗물이 잘 빠지도록 취평取平하는 일이다. 마당에 물매를 잘 주어 빗물이 고이지 않고 순식간에 빠져나가게 하는 방도가 강구되었던 것이다.
지하수맥이 있으면 집에서 떨어진 자리에 연못이나 연당을 파고 물줄기를 유도한다. 물이 그리 모이라는 의도이다.
연당을 말쑥하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호안석축을 해서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정리하거나, 연못에서는 자연스럽게 호안을 정리하고 나무를 심고, 연못 속에 섬을 만들거나 하여 기능과 아름다움이 겸존하게 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그 자리에 잘생긴 바위와 잘 자란 나무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여백과 여운이 있었다. 잔뜩 집어넣어 충만 시키려는 경향은 우리의 심성과는 거리가 있다.
조선조 왕궁의 꽃담이 미술관 앞마당에 들어서야 할 까닭이 분명하지 못하면, 눈에 뜨인 명품을 과시하기 위한 속성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오히려 충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이웃나라 심성과 같은 궤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다고 다 써먹는 일을 옛 어른들은 하지 않았다. 가장 적절한 표현이 만족되었으면 그것으로 흡족하였고 더 이상 손질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미의식이다. 그런 미의식이 우리전통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박물관 앞마당의 이른바 '전통 정원'은 가치 혼돈의 한 본보기랄 수 있을 것이다.
전에 일인들이 불국사 소나무를 보고 누가 저렇게 전지(剪枝) 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러다 일본에서는 정원의 소나무도 전지하는 일이 예사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그 질문을 납득하였다.
불국사 소나무는 아무도 전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이른바 '조경'에서는 대부분 나무를 일본식에 가깝게 전지하는 일을 서슴없이 한다.
자연석 돌을 쌓아 연못 만드는 방법이 지금 유행이다. 그런 축조법이 언제부터 우리 주변에 등장하였지는 알기 어렵다. 우리가 아는 삼국시대 이래의 사례를 남긴 연당이나 연못에서는 그런 조성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연못이나 연당의 길이와 폭의 비례에도 의도가 있어야 한다. 아름답게 보이는 일도 중요하고, 물의 회전에 걸맞는지의 여부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섬, 당주(當洲)의 위치와 크기도 정확하게 계산되어야 한다.
이미 완성된 남의 작품이 우습게 보여도, 막상 자기가 해봐야 그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데 이른바 전문가라는 신식 - 대부분은 일본식이지만, 인식이 짙은 조경가에게 일임하였다가는 위의 조건들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몰골로 형성되기 십상이다.
서울 성북동 새 집 짓는 곳에 구경갔다가 조경하는 서양인을 만났다. 그는 완전한 서구식 조경을 하고 있었다. 건축주의 취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긴 그가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집도 미국에서 연수한 건축가의 작품이다.
오늘의 현실이 지닌 한 단면이다. 그 건축가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강토에 어울리지 않는 집이 되고 말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경하는 외국인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세계 최고의 조경을 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에 가득하였다.
그는 한국 전래 마당 가꾸기에 일종의 혐오감을 지닌 것 같다. 조원(造園)은 이렇게 하는 것이란 선진국의 모범을 보인다는 자신감을 발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형이나 형국에는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른다면 한 아류에 불과할 뿐이고, 알고서도 그런다면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 풍토의 것이 어울리는 지의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보일 뿐이다.
더러 조원한다고 자연석을 일으켜 세우면서 모양을 내어 석가산을 쌓기도 한다. 우리 기법이 아니다. 우리는 가식(假飾)하기를 꺼려하였다. 생긴 대로 돌을 알맞게 골라 맞추어 축조하되 '그렝이'하여 접촉을 견고하게 하면서 돌과의 틈새에 이물질을 삽입하지 않는다.
첨성대가 1천년 넘도록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은 돌 틈에 이물질 없이 돌끼리 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하려니까, 다듬어 쓰는데 품이 많이 드니까, 돈 많이 남기려는 심보의 조원공(造園工)은 시멘트 등으로 처발라 얼버무리고 마는 수가 흔하다. 그러면서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강변한다. 그것은 스스로 기만하는 행동이지 좋은 작품을 착실하게 완성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가식을 버리고 진실한 정품이 마당에 들어서야 사는 사람의 심성이 도야되는 법이다. 집이 아이들 키우는 교육 도량이 되어야 한다면 집에 가식은 용납되기 어렵다.
21세기 한옥의 마당 가꾸기는 다시 천연이 바탕이 되는 경지로 회복되어야 한다. 환경을 고려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일이 최상이 된다.
여섯째. 공해 없는 한옥
(1).공해 없는 한옥
현대 건축에서 양산되는 의도적인 공해가 한옥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산업 사회에서는 상품의 포장만 해도 대단한 부피가 된다. 양옥에는 아궁이가 없어 그것들을 다 쓰레기로 내다 버려야 해서 그것만으로도 막대한 양에 이른다. 쓰레기 대란은 공해 유발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한옥의 아궁이는 태울 수 있는 식물성 폐기물은 대부분 소각시킬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쓰레기로 반출되는 대단한 양을 자체 처리할 수 있다.
낙엽도 태우지 말라고 한다. 역시 공해 물질이 발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이다. 그래서 거두어다 소각로에서 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옥의 아궁이는 그런 염려가 없다. 아궁이에서 지핀 불길이 방고래를 핥으며 가다가 고래 끝에 파 놓은 개자리에 이르러서는 당분간 맴돈다. 고래 높이가 30cm가량이라면 개자리는 고래 바닥으로부터 60cm 이상 파내려 간다. 고래에 비하여 개자리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다.
온도가 낮으니 연기가 잠시 머물면서 냉각된다. 그때 연기가 지닌 끄름이 다 개자리로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야 맴돌던 연기가 연도를 통해 굴뚝으로 다시 향한다.
굴뚝 밑에도 개자리를 판다. 미진 한 것들이 여기에서 다시 떨어지면 가벼워진 연기가 굴뚝을 통하여 배출한다. 맑은 연기가 운무가 되어 마을에 떠돌 때면 소나무 땐 아궁이의 향긋한 내음이 집 주변에 가득해 진다.
소각로로는 한옥의 구들이 최상급이다. 아궁이에서 굴뚝에 이르는 시설에 과연 그런 기능이 있는지를 한 번도 과학적인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서구의 것에 대하여는 탐구가 그렇게 열성인 과학도들이 우리 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런 실험의 결과들이 우리 기층 문화 속에 스며있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여 활용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한옥식 소각로의 계발은 공해 감소와 쓰레기 처리 경비절약 뿐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자기의 것을 지혜롭게 활용하느냐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도심에서 어찌 아궁이를 만들어 나무를 지피느냐는 핀잔이다. 몇 해전만 해도 연탄 때는 아궁이가 집집마다에 있었다. 그런 아궁이를 활용하면 된다. 땔 만한 것만 아궁이에 지펴도 효과는 크다. 더구나 노인정이나 후생 복지시설에 수용된 노인들에게 뜨끈한 아랫목의 온기를 다시 제공한다는 일은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세종 때 간행된<구황촬요(救荒撮要)>라는 의료 요법을 적은 책에서도 '뜨끈한 구들은 병을 치료하는데 아주 요긴한 시설이라고 그 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연세 든 부인들은 한증이나 '찜질방'에 가서 지져야 몸이 풀린다고 한다. 그런 원리를 아궁이를 이용하여 우리 주변에 다시 부활시키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2).공해 없는 건축자재
한옥 짓는 천연 건축 자재는 공해를 발산하지 않는다. 토담집이나 귀틀집이나 초가나 기와집을 막론하고 오래 되어 수명이 다한 집을 헐어 내어 자재들을 폐기 한데도 그것들은 다시 흙이 되거나 거름이 되고 혹은 재사용 되거나 화목으로 불을 지필 수 있어 거의 다 재활용된다.
현대 건축에서 당연히 사용하는 건축자재가 철근 콘크리트이다. 시멘트에는 독성이 있다. 인체에 해롭다고 말한다.
문화재관리국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해인사에 팔만대장경판을 보전할 '신경판고(新經板庫)'를 신축하였다. 몇 해 동안 빈 건물로 내버려두었다. '시멘트 독성'이 제거된 뒤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끝내 사용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용도 변경되어 스님들 승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1910년대 일인들은 서구에서 수입한 시멘트를 대단히 신용하였다. 기적 같은 그 자재로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건축을 수없이 이루어 내었고 철로 건설에도 적극 활용하였다. 터널 만드는 일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철로 토목기사가 조선총독부 명령을 받고 토함산의 석굴암을 수리한다. 신라인들이 쌓은 석실 석벽 뒤편 적심석을 잘게 깨트려 자갈 만들어서 터널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 통에 석실(石室)은 숨이 막혔고 시멘트가 독성을 발산하였다.
시멘트의 알칼리성이 물에 녹아 스며들며 화강암 장석질을 파괴하는 통에 석불사 석실 안의 조각 석상들은 치명적 타격을 입어 신라 창건이래 1000년 세월 보다 일인들 중수 이후 반세기의 피해가 더 막중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황토를 이용하여 만든 침대가 몸에 좋다고 크게 선전하고 있다. 시멘트의 독성 속에서 황토의 효능을 힘입어 건강해 지자는 의도가 그 선전에 함축되어 있다.
한옥은 방바닥도 담벼락도 다 황토 발라 만든 집이다. 토담집은 목재를 빼고는 전체가 황토이다. 귀틀집만 해도 통나무 사이에 황토가 발라지고 방바닥은 진흙이다.
황토를 얇게 바른 침대가 건강에 좋다면 황토로 지은 집이야 오죽 하겠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3).한옥의 재해
한옥은 불 날 위험이 많아 건축 허가 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면 실제로 그런지를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통나무에 불붙이기는 매우 어렵다. 가스 배출의 화학섬유가 불에 타면서 내뿜는 독성에 질식사했다는 신문 보도를 본다. 한옥에서 질식사했다는 기록은 별로 본적이 없다.
화재 염려는 어디에나 있다. 불이 나면 어떤 집이고 불에 탄다. 목조건축만이 유독 화재로 불타는 것은 아니다. 불이 붙으면 목재는 가연성이어서 불에 잘 탄다. 그러나 그 불은 끌 수 있지만 화학 물질이 집안에서 타면 소방차 도착할 겨를이 없을 지경으로 확산된다.
불에 탄 목조건축은 재난을 당한 부분만 수리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불에 탄 시멘트 건물은 헐어 내고 다시 지어야 한다. 목조건물은 삼풍백화점 같은 사고는 일으키지 않는다.
아파트는 50년도 안되어 재건축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러 가지 핑계가 방창한다. 대규모 고층 아파트를 헐어 내면 그 폐기된 양은 산더미 같다. 그것의 재사용이 아직은 어렵다 한다. 공해 유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진에는 한옥처럼 목재를 짜 맞추어 짓는 집이 가장 내진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웃 나라의 엄청난 지진 피해를 통하여 실감 있게 경험하였다.
도심의 집들이 지진에 어느 정도의 대비가 있는지 몰라도 한옥만큼 준비를 갖춘 건물은 흔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4).한옥과 자연
한옥은 짓는 터전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집짓기 위해 산을 뭉개고 바다를 메운다. 그래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야산을 이용하여 산을 뒤집어씌우는 방법도 계발될 법 하나 아직은 어디 가나 그저 그 모양이 그 모양이다.
한옥은 터 생긴 대로 약간만 손질하면 집 지을 수 있다. 정년 부득이 하지 않으면 터를 깍지 않고 오히려 돋아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천정기를 받기 위함이다.
5천년 역사가 평탄하지만 않았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수없이 많은 전쟁과 불운이 있었으나 번번이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 원동력이 백성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증한다. 그런 능력이 백성들에게서 울어 나오는 것은 바로 공동으로 향유하는 산천정기의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알 수 없지만 고층 아파트에도 산청정기가 당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약한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족의 근기를 해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멀리 넓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보면서 민족의 앞날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설정해서 차질이 없도록 해야 마땅하며 그 일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정리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할만 하다.
일곱째. 새 시대 한옥에의 바램
우리가 새로운 한옥에 관심을 두게 되는 까닭의 하나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우리의 것을 다 알 기전에 어느새 이 땅의 문화 자료를 축적하고 있던 집들이 다 사라져 갔다.
19세기 이전 각종 건축물들이 사라질 때 알뜰히 정리했어야 할 일을 건성 넘겼고 준비 없이 새로운 흐름을 맞다 보니 내 것의 정리가 소홀 해 질 수밖에 없었다.
광복과 전쟁 이후 외국에서 수련한 유능한 인재들이 귀국하여 선진 교육제도로 후진을 양성하려는 급한 마음에 거두절미하고 터득한 서양 건축물 위주로 지도하다 보니 내 집을 가리켜야 할 마땅한 과정을 생략하였고, 서양건축에 편중하였다.
그 관성으로 각급 건축학과는 한옥을 도외시하고 학습할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더러 [한국 건축사]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으나 교양과목인 정도가 고작이다. 그 정도인데도 대학원에서 고전 건축으로 석사 학위 청구 논문을 작성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러니 정식으로 학과를 만들어 교육하였다면 놀라운 업적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옥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은 도외시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한옥으로 석사 학위 취득한 사람조차 제도교육에 재투자할 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건축 연찬의 진로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전문대학, 실업고등학교에선 관심조차 두지 않아 그나마 [한국 건축] 조차 접할 기회가 별로 탐탁하지 않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옥의 기술을 지도하는 학교나, 그런 건축과가 있다는 말이 아직 들려 오지 않는데도 한옥은 지속적으로 건축되어 오고 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면서는 새로운 한옥의 시류가 대두되는 기미가 농후해 졌다.
장차 수요량이 급증할 터인데 그 때 우리 교육계나 건축계가 과연 어떻게 대처하려는지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듯 하다.
지적 소유권 문제로 분쟁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 한다. 건축되어진 작품이 표절되었는지에 시비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우리가 주목할 까닭이 없지만, 예를 들어 "아파트 각층마다의 충고를 그 높이로 설정한 것이 혹시 모방한 것이 아니냐, 그 지적 소유권에 대하여 보상하라" 한다면 사는 사람들은 살고 있다는 죄 하나로 집 값 말고 지적 소유권 보상금을 더 내야 하는 불행한 사태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다 하여도 대비가 유비무환이다. 물을 때 대답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존재하던 많은 세월의 집이 지닌 천장 높이에서 그런 층고가 생겨났고 그에 따라 우리 현대 건축은 가장 개성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 상대를 납득시킬 만큼 분명히 말하려면 식견이 있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해 놔야 한다.
방법이 교육밖에 없다면 빨리 우리 학교 건축과에 그런 인재를 양성할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수순으로는 한옥을 전공하는 유능한 교수와 학도들이 모일 수 있게 독립된 학과를 마련해 주는 일이 첩경이다.
만큼의 발전이 있었다는 칭송을 듣는다. 이제 그분들이 한발 자국만 더 분발하면 한옥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틀림없이 역사 기록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 분들이 한시대의 [현대건축]을 주도해 왔다. 그분들 노력으로 이 창작의 능력이 발휘되는 새로운 건축 세계가 전개되면서 세계 건축계에 이바지할 넓은 신천지가 열릴 계기를 그분들은 충분히 마련해 낼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간 미뤄 두고 하지 못하였던 일의 성취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지금 새로운 흐름이 재빨리 대두되고 있다. 신나는 우리들의 새로운 건축 시대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기운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시기는 망설임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럴 때 한옥을 재빨리 무대 위에 올려놔야 세계인들에게서 갈채를 받을 수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개성 있는 민족 문화가 제각기 자기 특성을 뽐내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산업 사회의 무거운 틀을 벗으며 문화 경쟁 시대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변환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한국 건축계가 진흥하려면 이젠 개성미 넘치는 한옥을 앞장세워야 정상을 향해 항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목조건축 기법이 이제 다른 나라에선 거의 전승이 두절될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풍부한 젊은 인재들이 한옥을 경영하고 있다. 이 점도 세계에 선양해야 할 과제가 된다. 한옥이 21세기에 주류로 등장해야 할 까닭은 이런 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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