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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 온돌’의 발명자는 누구일까?

세칸 2007. 8. 14. 13:13

[개량 온돌]의 발명자는 누구일까?

-개량온돌은 온수 파이프에 의한 온돌

 

지금 우리가 ‘전통 온돌’ 대용으로 쓰고 있는 ‘개량 온돌’의 발명자는 누구일까?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방바닥을 데우는 한옥의 전통적인 난방 방법인 온돌이 ‘전통 온돌’이라면,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주택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온수 파이프에 의한 온돌을 ‘개량 온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건축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업시간에 뜻하지 않게 한국의 온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묘한 흥분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라는 미국 건축가가 있다. 미국에서는 그의 영웅적 이미지로 인해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었고 만약 철거한다는 소문이 있으면 ‘벌떼’ 같은 기세로 라이트의 건축물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곤 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미국 오레곤 주에 1956년 라이트가 설계한 ‘고돈 하우스(Gordon House)’라는 주택이 있다. 이 집 주인은 2000년 이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고, 새로운 집주인은 이 집을 철거하고 주변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를 지키자는 보존운동이 일어났다. 마침내 여기에 굴복한 소유주는 100일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조건으로 이 집을 공익 단체에 기증하게 되었다.


2001년 결국 이 집은 세 개의 토막으로 분리되어 거대한 트럭에 실려 원 위치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오레곤 가든(Oregon Garden)’이라는 공원으로 옮겨져 다시 세워졌다.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가 트럭에 실려 옮겨지는 역사적인 광경은 CN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또한, 이 집을 옮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The Gordon House: A Moving Experience’라는 책으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고돈 하우스(Gordon House) 

 

그런데 이 집에는 방과 거실 바닥을 데우기 위한 온수 파이프가 깔려 있었다. 1914년, 라이트는 제국호텔(Imperial Hotel)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호텔 설계를 의뢰한 일본 왕족의 초대를 받고 신기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때 라이트는 그 방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경험하고 “이 방이 왜 이렇게 안락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식 방(Korean Room)’이라는 답과 함께 그 원리를 설명 듣고 크게 감명 받아, 당시 그가 설계하던 제국호텔의 욕실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여러 채의 주택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돈 하우스’라는 것이다. 라이트는 ‘고돈 하우스’의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라이트가 경험한 한옥은 도대체 어떻게 일본에 지어진 것일까? 그 강의를 들은 후 늘 궁금하던 차에 어느날 뜻하지 않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목원대학교 김정동 교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라이트가 경험하고 탄복한 바로 그 집이 경복궁의 동궁인 ‘자선당(資善堂)’이라는 것이 아닌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라는 일본인이 1914년 경복궁의 자선당을 일본으로 가져다가 자신의 집에 옮겨 놓고 미술관으로 사용했다. 이 건물은 1923년 발생한 지진으로 불 타고 화강암으로 월대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이 월대는 그 동안 오쿠라 호텔의 경내에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고 1996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그러나 이 돌들은 화재로 인해 약화되어 경복궁 동궁복원 시 자선당의 월대로 사용할 수 없어 새로운 부재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이 부재들은 명성황후 시해 장소 부근으로 옮겨져 있다.

 

 새로 보원된 경복궁(사적 제117호)의 자선당

 

라이트의 자서전을 뒤져보면 나머지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라이트는 그의 자서전 ‘An Autobiography’에서 세 페이지에 걸쳐 한국의 온돌에 대한 그의 경험과 이에 대한 적용 사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1914년 겨울, 라이트는 제국호텔 설계를 시작하기 위해 호텔 설계를 의뢰한 도쿄에 있는 ‘바론 오쿠라(Baron Okura)’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았다.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난방은 ‘히바치(hibachi)’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흰 재 밑에 몇 개의 숯 막대를 채워서 둥근 그릇에 담아 방바닥에 두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이따금씩 그 위에 잠깐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추위를 쫓았다. 그러나 이러한 난방 방식은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제국호텔

 

라이트 일행은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쿠라의 저녁초대에 응했다. 오쿠라는 일본 황궁 주변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저녁식사 장소는 너무 추워 식사를 할 수 없어서 라이트는 겨우 먹는 시늉만 했고, 저녁식사 후, 라이트는 “한국식 방 (Korean room)”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이 방은 약 12피이트에 24피이트(약 3.6미터에 7.3미터) 넓이와 7내지 8피이트(약 2.1내지 2.4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아주 평평했으며 연노랑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날씨가 바뀐 것이다. 갑자기 봄이 된 듯 했다. 라이트 일행의 몸은 따뜻해져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디에도 난방을 위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난방이 아니라 기후가 변한 것 같았다. 이 것이 바로 자연 친화적인 난방이 아닌가!

 

오쿠라는 바닥 밑에서 불을 넣는 온돌의 원리를 설명했다. 밑으로부터의 난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적했다. 이를 경험한 라이트는 즉시 제국호텔의 욕실 바닥에 전기를 이용한 온돌을 적용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타일로 된 바닥은 항상 따뜻하게 되었다. 따뜻한 욕실 바닥을 맨발로 들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보기 흉한 모든 전기 난방기들은 모두 제거될 수 있었다. 또한 바닥을 따뜻하게 함으로서 보다 낮은 온도로 보다 쾌적한 난방이 가능해졌다. 인공적인 공간에 보다 건강한 자연적인 기후가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 후 그가 설계한 30채 이상의 건축물에 ‘개량 온돌’을 적용했다. 라이트는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가장 이상적인 난방방식으로 보고 태양열보다 좋은 난방이라고 극찬했다.

 

김정동 교수가 말하는 ‘오쿠라 기하치로’란 인물과 라이트가 말하는 ‘바론 오쿠라’라는 인물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오쿠라는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남작’의 작위를 가진 일본 귀족 신분이었다. 남작이라는 작위는 일본 귀족의 작위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작위였다. 그런데 오쿠라 앞에 붙여진 바론(Baron)이라는 수식어는 영국의 작위 이름으로 가장 낮은 등급의 작위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오쿠라 기하치로’가 바로 ‘바론 오쿠라’이고, 라이트가 경험한 건물이 자선당일 가능성이 크다.

 

라이트의 자서전을 덮는 순간 코 끝이 시큰해 진다. 다른 나라의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우리 문화를 듣던 흥분과는 정반대로 숙연한 기분으로 나는 이불 속 따뜻한 방바닥에 뺨을 갖다 대본다.

 

글쓴이: 창덕궁 관리소장 최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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