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동
김익주 박사
중세 아랍인들에게 ‘신라’는 한마디로 ‘동방의 이상향’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세상에는 행운의 섬이나 불멸의 섬으로 알려진 이상향이 두 곳 있는데, 그 하나는 서방의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대서양 위의 신비의 섬 아틀란티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동방의 신라다. 아틀란티스는 전설 속의 한낱 이상향에 불과하지만, 신라는 속세의 살아 숨 쉬는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경과 선망은 신라에 대한 그들 나름의 지식과 견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정수일, 2005, 한국 속의 세계, 창비).
옛 울산만이 위치하였던 울산시 태화강 하구의 반구동 일대가 고대 항구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2007년 5월 울산 중구 반구동의 주택 재개발지구에서 고고학적인 조사결과, 신라의 대외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중국 당(唐)대의 햇무리 굽 자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항구 배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되는 목책시설(나무울타리) 등은 이곳이 고대의 울산항이었음을 시사하는 실물자료로 판단되었다. 항만 접안시설물로 추정되는 목책은 2열로 둥근 통나무가 1m 간격에 4, 5개씩 가지런히 박혀있어 운송물자의 보호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책시설이 위치한 강변에서는 기둥 지름 70cm 내외의 원목으로 축조된 굴립주 건물지(망루)도 발굴됐다.
문명교류사 전문가인 정수일 박사는, “10세기 전후 모든 해로를 검토하면 한반도 남단. 중국 광저우. 베트남 동해안. 말라카해협. 인도. 페르시아만. 콘스탄티노플. 로마로 연결되며, 이 가운데 한반도 남단의 울산은 중요 기항지”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 물이 반구동의 유적과 유물들이어서, 울산이 로마. 중국 광주. 경주로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의 동쪽 끝 또는 신라 최대의 무역항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고학 조사를 담당하였던 관계자에 의하면, 기 조사된 토성과 함께 목책은 신라시대 당시 울산항의 물류시설 등 배후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일 것으로 보이며, 고대 울산항은 이곳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태화강 쪽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전시기의 유물이 출토된 것은, 그동안 울산이 경주의 관문역할에만 머문 것으로 조명돼 왔던 것을 이 시기 울산 학성 바닷가 쪽에 독자적 역사적 행위가 존재했음을 물질적으로 보여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신라시대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는 고급건축에 쓰는 것으로 경주에서조차 드물게 발견된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여러 점이 나왔다. 또한, 창고로 추정되는 많은 대형 건물이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선진국이던 당나라의 자기가 발견되어 대외 교류가 유물로 확인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들 시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그 당시에 축조한 토성과 목책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 유적의 중요성과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유물과 유적으로 확인되듯 이곳에는 신라시대 경주의 최고급 건축물에 버금가는 시설이 있었다. 또한, 과거나 지금이나 대규모 물류의 주요한 통로인 항구가 존재했을 지리적,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실증 물이 확인 되었다.
토성은 이미 주택지가 되었고, 그 주택지는 다시 시류에 편승하여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매장문화재조사에 관한 비용의 부담은 그 주체가 공이든 사든 간에 모두 개발자의 몫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당연히 공공의 것, 국가의 소유이다. 문화재 조사가 마무리되어 가던 2008년 봄에는, 목구조를 이용한 더 큰 규모의 방어벽과 그 안쪽에서 목조 우물이 드러났다. 몇 줄의 글과 사진으로만 기록하고 만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고, 민간주택을 지으려 하였던 사업자에게 또다시 문화재 보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기에는 참으로 면목이 없다. 진퇴양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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