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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양극화

세칸 2008. 4. 24. 22:20

식탁의 양극화

더 비싸진 저칼로리·웰빙식품… 고소득층은 여전히 많이 찾아
고칼로리·정크푸드… 값 적게 올라 저소득층 유혹

 

'배불뚝이 회장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재벌 2세의 이미지는 날씬한 몸매로 그려진다. '부자 병'처럼 여겨지던 비만은 소득 수준이 낮아 햄버거·피자 같은 '정크 푸드'에 의존하는 이들로 발생 계층을 옮겨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성인 여성의 비만 비율은 절대빈곤층 39%, 차상위층 30%, 상위층 26%, 최상위층 20% 순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비만인구가 눈에 띄게 적었다.

날씬한 부자와 뚱뚱한 빈곤층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미국 연구자들은 '저칼로리 음식의 가격은 갈수록 많이 오르는 데 반해 고칼로리 음식의 가격은 적게 오르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소득이 높은 사람은 '웰빙 식품'을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칼로리 '정크 푸드(junk food)'에 의존하는 '웰빙 디바이드(Well―being Divide)'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대표적인 식품의 가격 차이를
통계청, 농수산물유통공사, 농촌자원개발연구소 등의 자료를 통해 분석, 검증해 봤다.

KBS 2TV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속 은아(장미희)네 가족은 평소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즐겨 먹고 와인과 페퍼민트 차를 마신다. 식단도 브로콜리, 파프리카 같은 '저칼로리, 고섬유질 식품' 중심이다. 한자(김혜자)네 식구는 커피믹스를 타 마시고 햄버거 세트로 끼니를 때운다. 저녁 식탁은 김치전, 족발 같은 '고칼로리 식품'으로 채워진다. 혼사를 앞두고 경제력 차이로 갈등을 겪는 두 집안은 식탁 위에서 그 격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드라마 속 은아네 집에서 자주 먹는 방울토마토의 가격은 지난 7년 새 280%나 올랐고, 단골로 등장하는 와인(보르도 와인 기준)은 매년 10% 가량 오르고 있다. 한자네 식구들이 먹는 햄버거 세트 값은 같은 기간 13% (버거킹 와퍼세트 기준), 인스턴트 커피 값은 9%(맥심 모카골드마일드 커피믹스 기준) 오르는 데 그쳤다. 소주는 지난 7년간 연평균 3.4% 상승했다. 막걸리 값은 오히려 1% 떨어졌다.

이들 음식의 칼로리당 값을 계산하면 격차가 더 심해진다. 방울토마토(100g당 16㎉)의 1000㎉당 가격은 7년 새 2만4000원 뛴 반면 햄버거 세트(1148㎉)의 가격은 4180원에서 4700원으로 520원 오르는 데 그쳤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식탁 양극화'는 학문적으로도 입증됐다. 미국 워싱턴대 공공보건학과 파블로 몬시바이스(Monsivais) 교수팀은 최근 '미국당뇨협회 저널'에 식재료 가격을 추적한 논문 '저칼로리 음식의 가격 상승'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시애틀 대형 수퍼마켓의 372개 식재료 값을 2년간(2004~2006년) 추적했다. 그 결과 양상추·방울토마토·콜리플라워 등 저칼로리 식품은 값이 19.5% 오른 반면, 버터·땅콩·초콜릿 같은 고칼로리 식품 값은 1.8% 떨어졌다. 1000㎉당 평균 가격(2006년)은 저칼로리 식품이 18.16달러, 고칼로리 식품이 1.76달러로 열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웰빙식품' 방울토마토(왼쪽)와 와인. 조선일보DB 

 
연구팀은 논문에서 "몸에 좋은 저칼로리 식품 값이 가파르게 올라 가난한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고칼로리 식품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며 "저소득층에서의 비만·당뇨 발병률이 높은 원인을 식품군(群)별 가격 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도 '식탁 양극화'가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최상위층이 즐겨 먹는 '성인 여성 다소비(多消費) 식품 20'엔 쌀, 김치 등 주식 외에 사과·오렌지·참외·요구르트·딸기 등 저칼로리 음식이 포함됐다. 절대빈곤층은 같은 목록을 콜라·된장·닭고기 등 상대적으로 칼로리가 높은 식품들로 채웠다. 절대빈곤층이 주로 먹는 음식 20개의 1000㎉당 평균 가격은 1만4130원, 최상위층은 1만6970원이었다. 소득 높은 사람의 식비가 평균 20% 가량 높은 셈이다.

 

'고칼로리' 막걸리(왼쪽)와 고등어. 조선일보DB 


고칼로리 음식 섭취가 많으면 당연히 성인병 위험이 높다. 미국 미네소타대 보건대가 성인 3031명을 1980년대 중반부터 1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한 주에 두 번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몸무게가 평균 4.5㎏ 더 늘었고, 당뇨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슐린 저항 발생률이 두 배 가량 높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창길 연구원은 "건강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이른바 '웰빙 식품'의 생산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저칼로리 식품 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식탁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입력 : 2008.04.22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