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로 만든 국보 1호 숭례문
1396년(태조 5)창건되어 현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장장 612년이란 긴긴 세월을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그리고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동란 등 어떠한 국난 속에서도,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런데 한사람의 감정으로 인하여 숭례문이 화마에 수난을 당하다니… 숭례문은 생각과 같이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층 부분이 화마로 많이 훼손되어 보기는 흉했으나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타까움을 표현하였으며, 곡을 하는 사람, 청중들에게 역설하는 사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숭례문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글로 남기고 있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더 멋진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아무리 멋진 모습이라 해도 600년을 거슬러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국보급 목조건축물 매뉴얼을 만들어서 잘 관리하여야 한다는 생각과 임업인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복원(목재 조달 및 건조작업 등)하는데 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목조건물인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만들어진 형태)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어 화재진압이 어려웠다. 또 진화 대상물이 국보1호였으므로 신중히 진화 하려고 한 것이 화를 키웠으며, 물을 뿌렸을 때 연기가 자욱하였으므로 진화된 것으로 생각하였고, 목재에 불이 붙으면 쉽게 불이 꺼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에 전문가가 없어서 꼼작 없이 당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고려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안동의 봉정사,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이 있고, 이 외에도 목재로 된 국보급의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어찌되었든 숭례문은 전소됐고, 국보1호의 잔해(타고 남은 나무)인 만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부 기왓장이 폐기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유물이 남아있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으로 기왓장을 판매한다고 하였다가 입건되는 등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례도 있지만,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잔해를 각급기관, 단체(학교)에 비치하고 필요한 국민에게 매각 하였으면 한다.
외국어대 교수님은 독일에서도 베를린장벽의 벽돌을 구분하여 판매하였다고 하며, 칼라가 있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던 벽돌 가격은 비쌌다고 한다. 숭례문의 잔해는 수백년 묵은 나무의 숯이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의 벽돌과는 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권태원/ 청옥산 자연휴양림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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