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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선 다랑논 ‘봄의 교향악’

세칸 2008. 3. 20. 09:19

줄지어선 다랑논 ‘봄의 교향악’ 

절벽에 둘러앉은 108층 논마다
해풍 이겨낸 마늘 싹이 푸른 목청
쑥·냉이도 쪽빛 바람결에 춤사위


경칩이 지나 땅이 눅눅한 봄 냄새를 뱉어내는 해토머리지만 왕성하던 봄기운이 꽃샘추위 탓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이른 봄기운에 취해 다투어 개화를 뽐내던 봄꽃들의 기세가 애꿎은 날씨로 주춤거리고 있으나 시나브로 봄바람이 불어오는 남해는 봄이 무르익고 있다.

 

쪽빛 바다에 물새가 내려앉은 듯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둘러싸인 보물섬 남해는 봄맞이가 한창이다. 고즈넉한 어촌마을 포구마다 등 굽은 할머니들이 따뜻한 봄볕 아래 굴을 까고 있고, 바다를 낀 논과 밭에는 육쪽마늘이 자라고 있다.

 

 

창선교를 건너 원시어업 죽방렴으로 잘 알려진 지족마을에서 1024번 지방도를 따라 남해 봄나들이를 떠난다.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남해도의 왼쪽 섬을 바라보며 이동면과 남면의 서남쪽 해안가를 감도는 해안도로를 좁혀가면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 앵강만과 만난다. 남해도의 왼쪽 섬 아래쪽에 오목하게 들어간 앵강만은 활처럼 휜 해안마다 화계, 용소, 두곡, 홍현, 가천, 향촌, 사촌 등 반농반어의 갯마을들을 부드럽게 안았다.

 

남해도 끝자락이자 앵강만의 들머리와 마주한 남면 홍현리에는 쪽빛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칠 듯 위태로이 서 있는 설흘산의 가파른 산자락에 다닥다닥 엉겨붙어 한 동리를 이룬 가천마을이 있다. ‘다랭이 마을’로 더 알려진 이 어촌에 들어서자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가파른 산비탈에 돌옹벽을 지지대 삼아 켜켜이 층을 이룬 다랑논마다 겨우내 해풍을 이겨낸 마늘들이 파릇파릇한 싹을 내밀고 있다. 논두렁에는 쑥과 냉이, 동초를 캐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고, 남정네들은 지게로 시금치를 캐서 지고 나르기에 바쁘다. ‘다랭이’란 ‘좁고 긴 논배미’를 이르는 ‘다랑이’의 사투리로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하나하나의 구역을 뜻한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마을이 자리잡은 가파른 산자락이 추락하듯 바다와 만나는 지형이다 보니 바다 농사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얼른 보아도 이 마을에는 산기슭에 작게는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는다는 ‘삿갓배미’로부터 크게는 서마지기 정도인 논들이 제각기의 모양으로 108층 계단을 이루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삿갓배미는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 보니 한 배미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는 일화에서 비롯했다.

 

요즘 왕성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마늘은 4월20일께면 꽃이 피는데 5월20일께에 수확한 뒤 바로 논을 갈아 모내기에 들어간다. 아직도 이곳에는 농사를 지을 때 소를 몰아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해 모내기를 한다. 또 우리 농촌의 전통풍습인 ‘품앗이’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척박한 땅과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터전을 일궈온 남해인들의 억척같고 숭고한 삶의 철학을 읽는다.

 

“땅의 끝은 어디서나 절벽임을 알겠다/ 그 절벽을 일구어/ 손바닥만한 다랭이논으로 목숨을 이어 온/ 다랭이마을 사람들의 아침은/ 오르막길이거나 내리막길에서 시작되고/ 다랭이마을 사람들의 저녁은/ 저, 막막한 바다로 지는 노을이 아니겠는가/…/절벽을 끌어안고 사는/ 다랭이마을 사람들의 억센 사투리가/ 오히려 정겨운 것은/ 우리들 한 생의 귀퉁이에/ 헛디디면 안될 절벽 한 칸씩/ 껴안고 사는 때문이 아닐까”(최홍걸 〈남해, 다랭이 마을〉)

 

오른쪽 멀리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가 보이는 마을 바닷가 끝에는 가천 사람들이 미륵불로 여기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있는 암수바위가 서 있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높이 5.8미터, 둘레 1.5미터의 거대한 수바위는 수미륵, 그 옆에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꼴의 암바위는 암미륵이다. 영조 27년(1751년)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해마다 음력 10월23일을 기해 제사를 지내면서 뱃길의 안전과 풍어를 빈다. 특히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치성을 드리면 즉각 효험이 나타난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남단에 자리잡은 우리 마을은 산과 다랭이논과 바다가 정말로 조화가 잘 이뤄진 마을입니더.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마을 인심이 전국 최고이지예. 도시 일상에 지친 분들!, 다랭이마을로 오셔가지고 스트레스 팍팍 풀어뿌이소. 재충전해 가이소.”

김주성(51) 마을 이장은 “다랭이마을을 방문하면 다랭이 논두렁에서 쑥과 시금치, 동초, 냉이, 달래 등 ‘봄나물 캐기’와 ‘1일 어부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단체손님들이 원하면 저녁에는 폐교인 가천초등학교에서 시골학교 운동회를 열기도 한다”고 일러준다.

 

가천 다랭이마을 못지않게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남해 사람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지족리 죽방렴을 들 수 있다. 창선교를 사이에 두고 삼동면 지족마을과 창선면 지족리 사이에 자리잡은 지족해협은 물살이 빠르고 깊이가 얕다. 500년 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바다에 길이 10미터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브이(V)자 모양으로 박아서 양 날개를 만들고 좁아지는 꼭지 부분에 원통형의 대나무 발을 쳐놓아 물고기를 잡는 죽방렴 어업방법을 지켜왔다. 5월이면 창선교 아래 해안가 음식점에서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회와 조림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은 해질 무렵 창선교 위에서 죽방렴과 멀리 장구섬을 붉게 물들이며 남해 바다로 떨어지는 해넘이의 풍경이 아름답다.

 

남해에는 예부터 기도처인 보리암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지닌 절집이 또 있다. 호랑이가 누운 형상의 호구산에 자리잡은 남해 최고의 고찰 용문사다. 절 주위를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측백나무들이 감싸고 있어 운치와 아름다움이 함께 느껴진다. 요즘 우리나라 3대 지장도량 가운데 하나인 이 절을 방문하면 법당 앞마당에 100년이 훨씬 넘은 매화 고목의 멋들어진 개화를 만날 수 있다.

 

 

여행 수첩

남해에서는 10일부터 남해대교와 노량 투구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 용문사, 가천 다랭이마을 등 관광지 7곳을 방문해 보물 7개를 찾으면 남해 특산물을 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남해군관광협의회 (055)862-9009.

또 지족마을 해안에서는 매일 전통어업인 죽방렴 어장을 볼 수 있고, 4월부터 바닷가재의 일종인 쏙을 직접 잡아볼 수 있다. (055)863-1688. www.es21.co.kr. 특히 오는 20일 오후 3시40분 지족마을에서는 근처 농가섬과 죽방렴까지 물이 빠지는 ‘모세의 기적’이 열린다. 해삼과 굴, 바지락, 개조개, 고둥 등을 채취하는 ‘지족 갯마을 바닷길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다. (055)867-1996.

한편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은 이에게는 고현면 갈화리의 800미터 암반에서 솟아나는 ‘남해 심층수’(055-863-2029)로 하는 미백 체험을 권한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회덕 분기점→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 분기점→ 남해고속도로→ 사천 나들목→ 3번 국도→ 사천읍→ 삼천포항→ 창선·삼천포대교→ 3번 국도(1024번 해안지방도)→ 창선교→ 1024번 지방도→ 가천 다랭이마을. 또는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 19번 국도→ 남해대교→ 남해읍→ 1024번 지방도로→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읍에서 가천 다랭이마을로 군내버스 운행

 

 

잠자리
다랭이마을 민박집(15채)에서 민박과 더불어 제철에 나는 농산물과 해산물로 만든 이른바 ‘시골밥상’을 즐길 수 있다. 숙박 정보는 마을 이장(011-862-6333)이나 다랭이마을 누리집(darangyi.go2vil.org)에서 얻을 수 있다.

먹거리
남해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남해군청 옆의 한정식집 미담(055-864-2277)과 제철 생선을 막 썰어 각종 야채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만든 물회를 전문으로 하는 서면 서상리의 부산횟집(055-862-1709) 등이 소문난 맛집이다. 또 지족마을 근처에 멸치회·조림과 갈치회·조림 전문 우리식당(055-867-0074), 장어구이 전문 달반늘(055-867-2970) 등 전문식당들이 많다. 삼동면 지족리의 다향(055-867-4819)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운치있는 전통찻집이다.

문의할 곳
남해군 문화관광과(
www.namhae.go.kr) (055)860-3228

 

자료출처 : [한겨레 2007-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