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연휴를 연휴답게 귀성·귀경길 9가지 풍경

세칸 2008. 3. 20. 09:15
연휴를 연휴답게 

정겨운 고향집을 오가는 길에 꼭 한 번 들러보길 바라는 여행지 9곳을 골랐다. 하루 이틀 머물며 한 해의 설계를 다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고택(古宅)이 자리한 안동
340년 솟을대문 위로 물안개 피는 지례예술촌
예로부터 영남은 유교문화권의 중심이었고 현재도 그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 가운데 안동은 유교 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수백 년을 이어온 고택, 서원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스러움이 마치 공기 중에도 배어 있는 듯 운치 있다.

 

고택이 아름다운 안동  

 

양반고을 안동이 꽤 오래전부터 전통문화의 생활체험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생활체험공간으로 눈에 띄는 곳은 조선 중기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농암 이현보의 유적지를 비롯해 지례예술촌, 수애당, 봉정사 영산암, 고산서원 등이다.

다양한 체험공간 가운데 한 곳만 굳이 꼽으라면 지례예술촌을 추천한다. 새벽녘 340년 묵은 솟을대문 위로 물안개가 피어나는 지례예술촌은 임하호(臨河湖)를 마치 집 마당의 연못처럼 두고 있는 아름다운 고택이다. 이곳을 두고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진수라 해도 될 법하다. 안동 여러 고택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방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임동면 박곡리 임하댐변의 지례예술촌은 의성 김씨 지촌공파 종택이다. 종택과 행랑채, 별채, 서당과 제청 등 10여동 125칸 규모에 17개의 방이 들어서 있는데 종택과 서당, 제청은 모두 경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받고 있다. 구상, 이문열, 유안진, 김용옥 등이 마음을 살찌우고 간 곳으로 알려진다. 주인장 역시 문인 출신이기도 해서 지역 문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고 유교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살뜰하게 챙겨준다.

온돌방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조상들이 누렸을 옛 정취를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안동의 먹거리로 담박한 헛제사밥과 시원한 안동식혜 그리고 간간한 간고등어를 밥상에서 꼭 마주하고 오기를 바란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에서 서안동 IC로 나오면 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면 하회마을 가는 길이 나온다. 지례예술촌(054-822-2590,
www.chirye.com)은 안동 시내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안동 시내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향으로 30㎞ 달리다 LG 주유소를 지나 수곡교에서 우회전. 박곡마을을 지나 지례예술촌 이정표를 보고 고개를 넘으면 종갓집에 닿는다.


경주의 남산 삼릉골
불교 문화재 지천 … 삼릉 소나무 숲에선 새로운 기운을

학창시절 수학 여행이나 가족 여행으로 한 번은 들렀음 직한 경주. 익히 알려진 것처럼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거의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서 얼마나 많은 유적을 남겼겠는가. 그러나 참으로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은 경주를 방문하면 사무실에서 일처리하듯 서둘러 몇 개의 명소를 바라보고 발길을 돌리곤 한다. 이번 기회에 경주를 방문한다면 조금은 긴 호흡으로 찬찬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는 참으로 둘러볼 곳이 많다. 불국사와 첨성대는 그 중 으뜸의 관광 명소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산을 한번 올라보자. 동서 4㎞ 남북 8㎞로 펼쳐진 남산은 중심부에 금오산(468m)이 있고 남쪽에는 고위산(494m)이 자리하고 있다. 이 넉넉한 품에 무려 절터가 122개, 석불 57기, 석탑 64기가 흩어져 있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남산에서 절터가 가장 많은 용장골이나 유물이 가장 많은 삼릉골로 발길을 두면 좋겠다. 이 중 하나만 또 고르자면 삼릉골이 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삼릉골에서 시작하여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사터를 보고 내려오는 게 가장 일반적인 답사코스로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삼릉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 명의 옛 왕이 묻힌 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삼릉을 찾게 되면 열이면 열 능에 눈을 두기보다는 삼릉에 자리한 소나무 숲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반듯하게 하늘을 향해 오르지 않고 구불구불 곡선을 이룬 소나무들이 매혹적인 춤사위를 보이는 듯하다. 산책하듯 천천히 길을 잡고 올라서면 반가운 석불과 연방 마주하게 되는데 그 모양새가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그 중 상선암의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은 높이가 6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가는 길
경주 IC에서 경주 시내 방향으로 가다 35번 국도와 만나면 언양 방면으로 방향을 꺾는다. 그러면 나정, 포석정, 배리삼존불이 있는 삼불사 입구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삼릉골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만일 차를 주차한 후 산을 넘는다면 반대편 용장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삼릉으로 쉽게 돌아올 수 있다.


전북 고창 선운사
500년 동백나무 군락, 미당 서정주의 시심 배인 곳

 

고창 선운사  

 

고창의 선운사는 예사로운 사찰이 아니다. 그 오랜 역사도 마음을 다잡게 하지만 선운사와 얽힌 많은 이야기가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먼저 역사를 살펴보면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긴 역사 탓만은 아니겠지만 그 중요성은 사찰의 지위에서도 알 수 있다.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전라북도 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기 때문이다. 본래 선운사는 창건 당시 한때는 89개의 암자와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선운사 본사 외에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만 남아 있다니 많은 우여곡절이 있으리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 선운사에는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어 또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500년 정도된 동백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동백나무의 높이가 평균 6m에 달해 마치 대웅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이 동백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꽃이 만개하는 봄이 되면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굳이 봄이 아니라고 한들 선운사의 기품과 멋스러움은 부족함이 없다. 선운사를 둘러본 후 고창에서 더 찾아볼 만한 명소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을 기리는 미당 시문학관, 고창읍성, 판소리박물관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군을 꼽을 수 있겠다.
고창에서 볼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먹거리이다. 고창에 머물며 식사를 할 요량이라면 꼭 장어를 맛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모두 맛이 좋은데 둘 다 맛을 보려면 소금구이를 먼저 먹어야 한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선운사 IC에서 빠져 선운사 이정표만 확인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일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정읍 IC에서 정읍시내 반대편 도로로 진입한 후 22번 국도와 29번 국도 갈림길인 주천삼거리에서 22번 국도를 타야 한다. 흥덕과 오산저수지를 지난 후 만나는 반암리 갈림길에서 우측도로를 따라가면 선운산도립공원 진입로를 발견할 수 있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100여채 초가·돌담 사이로 시간여행
 

순천 낙안읍성  

단순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내는 초가지붕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모습을 순천의 낙안읍성에 가면 푸지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초가지붕 아래 소박한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온 듯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햇벼의 짚으로 새 이엉을 올린 샛노란 초가지붕. ‘지붕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이라는 한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를 온갖 풍파에서 지켜주는 방패막이일 것이다.

낙안읍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전북 고창의 모양읍성과 함께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옛 성으로 꼽힌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민 마을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주는 소중한 곳이다.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의 안쪽으로 관아와 100여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낙안읍성의 유래는 조선시대 태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이 고장 출신의 양혜공·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아 방어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 틀이 만들어졌고 300년이 지난 후인 1626년 인조 4년에 석성으로 중수되었다. 이때 견고하게 지어진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성 위에 올라 마을 전경을 굽어보면 참으로 낭만적이다.

낙안읍성의 초가집들이 이처럼 잘 보존된 것은 사실 슬픈 현실 때문이었다. 낙안이 조선시대에는 군소재지로 나름 살 만한 모양새를 갖췄었지만 일제가 폐군 조치하면서 마을은 급속도로 쇠퇴했다. 오죽하면 1970년 새마을운동 당시에도 마을을 포기할 정도였을까. 그러던 것이 서울올림픽을 맞이하여 한국의 전통 생활문화를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1983년 마을 전체를 사적지로 지정하고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에서 송광사 IC로 빠져 27번 국도를 타고 순천시 낙안면 장산리에서 58번 국도를 이용, 읍성에 도착하는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다. 송광사 IC에서 읍성까지는 약 30㎞


단양 유적지
도담삼봉의 풍류에 취하고, 온달산성 전설 속으로

충북 단양은 남한강 줄기가 휘도는 멋진 고장이다. 한반도의 허다한 강 풍경 가운데 가장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단양의 도담삼봉(島潭三峰)을 마주하는 순간 그 멋스러움을 깨닫기 때문이다. 강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세 개의 봉우리인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의 으뜸으로 치는데 각 봉우리마다 이름이 각각 재미있다. 중간에 늠름하게 서있는 봉우리는 장군봉이라 불리고 양쪽으로 첩봉과 처봉으로 불린다. 장군봉 중턱에 자리한 삼도정(三嶋亭)에 오르면 운무와 석양이 유난히 운치를 더한다. 퇴계 이황의 시 구절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더라.’ 도담삼봉의 풍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단양의 멋진 풍모를 도담삼봉이 한 방에 해결해준다면, 단양의 발길을 한껏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온달산성이 아닐까 싶다.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 상류의 영춘성산 능선에 자리한 온달산성은 고구려·백제·신라가 먼저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요충지에 세워져 있다.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개로왕의 목을 베고 남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다시 위협할 때 온달 장군은 고구려 영양왕의 명을 받고 영춘성산에 성을 쌓은 후 백제와 신라군을 맞이해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 온달은 안타깝게도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되고 전쟁은 패하고 만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슬픈 전설과 맞닿아 있다. 전사한 온달의 관을 옮기려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고 멀리 평양에서 내려온 평강 공주의 따스한 위로를 받고 나서야 단양 땅을 벗어날 수 있었단다. 남한강 물줄기에는 이처럼 다양한 전설이 담겨 흐르고 있다. 단양의 온달 관광지에는 온달동굴을 비롯하여 온달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기념관이 있어 자녀와 함께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에서 단양 IC로 빠져야 한다. 이곳에서 5번 국도를 만나면 단양읍 방면으로 길을 잡고 따라가자. 단양읍을 지나면 도담삼봉과 만나게 되고 덕천교를 건너 59번 국도와 만나 구인사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온달관광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당진 왜목마을
일몰·일출을 한자리서… 필경사·솔뫼성지 꼭 들르길

 

당진 왜목마을  

 

당진의 왜목마을은 수년 전부터 서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신년이 되면 수십만 명의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아온 곳이다. 수도권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떨어진 편리한 접근성도 크게 한몫을 했다. 당진의 석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 사이에 자리한 왜목마을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지형이 마치 왜가리의 목을 닮았다 하여 ‘왜목’이라 불렸다. 바다 쪽으로 길게 목을 빼고 있는 그 지형 덕분에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포구 앞 국화도와 장고항의 용무치 위로 해가 떠오를 때 더욱 고상하고 멋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왜목마을로의 여행을 극구 말렸다. 서해안의 이름 없던 포구가 일약 관심이 된 후 호젓한 포구는 북새통이 되었고 연간 20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아마도 곧 그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왜목의 일출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기회를 노릴 일이다.

순박한 포구의 정취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왜목 주변에 자리한 여러 포구를 방문하면 된다. 38번 국도를 따라 한진포구를 시작으로 안섬포구, 성구미포구, 장고항포구까지 만날 수 있다. 포구의 횟집마다 시원한 김치국물에 갓 딴 생굴을 말아주는 굴물회는 꼭 맛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당진에서 꼭 방문하기를 추천하고 싶은 명소는 필경사와 솔뫼성지다. 필경사는 소설가 심훈 선생의 자취가 배어 있는 목조 기와집이다. 서울에서 낙향하여 선생이 활동하며 받은 원고료로 필경사를 새로 고쳐지었고 이곳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록수’를 52일 만에 탈고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뜻이니 참으로 멋스럽지 않은가.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안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이다.

가는 길
왜목마을을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 방향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송악 IC가 나오는데 여기서 빠져야 한다. 38번 국도를 따라 이정표를 보고 40㎞ 정도 가면 왜목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걸으며 한 해 설계

 

오대산 월정사  

 

삼천리 금수강산에 눈여겨보고 마음에 담아둘 산이 한둘일까 마는 오대산의 존재는 늘 한결같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다른 산들과 비교하여 숲도 깊고 산자락이 부드러워 사시사철 방문해도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전나무, 소나무, 피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서로 다투지 않고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오대산은 크게 오대산 지구와 소금강 지구로 나뉜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청학산 쪽 소금강 지구는 바위산으로 금강산에 견줄 만하고 평창으로 내려가는 오대산 지구는 부드러운 흙산으로 산수가 명미하다.

오대산의 기품이 늘 마음에 드는 것은 문화 유적이 많다는 점이다. 곳곳에 불교 설화와 사연들이 깃들어 있어 신비함과 경건함이 진하게 배어난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오대산을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사는 산으로 믿은 이후로 우리 역사 속에서 불교 성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율곡과 이중환이 오대산을 삼재가 들지 않는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칭송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오대산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월정사(月精寺)다. 평창을 넘어 한국의 대표 사찰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이 사찰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월정사로 들어서기 전 마주하는 전나무 숲길이다. 일주문에서 절에 이르기까지 수령이 족히 400~500년은 되는 전나무가 숲을 이루는 모습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돌아온 후에도 잔상처럼 오래 기억된다.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는 규모도 예사롭지 않지만 사찰 곳곳에 놓인 건물과 많은 유물들을 살펴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월정사의 대표적 유물인 팔각구층석탑과 월정사 부속 성보박물관은 꼭 찬찬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양명한 사찰이라 너무 많은 사람이 들락거린다는 불평이 있지만 그만큼 일반인들을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곳이니 편안하게 시간을 들여 살펴볼 일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간만에 육식보다는 채식으로 식탁을 채워보자. 입맛을 돋우는 곤드레돌솥밥도 그만이고 평창의 산채정식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먹음직스럽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에서 진부 IC로 빠져나온 후 도로 이정표를 따라 오대산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된다. 표지판이 잘 정리되어 있어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다.


북한강 도로변서 만난 문화의 정취
갤러리 구경하고 북한강 보며 차 한잔

 

양평 북한강변  

 

서울에서 춘천에 이르는 길은 분명 경춘국도가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그 주변 샛길 또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볼거리가 무척 풍성하다. 그 가운데 북한강변에 자리한 363번 지방도로에는 찻집 혹은 레스토랑을 겸하는 갤러리가 여러 곳 있어 한가롭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곳에 많은 갤러리가 들어선 이유는 1990년대부터 서울과 가깝고 수려한 경관을 마음에 들어 하던 미술인들이 몰려들면서 양평에 미술인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문호리에 위치한 갤러리 서종(031-774-5530)은 건축가 최두남씨가 설계한 건물이 독특해서 지나가다 한번쯤 멈추게 만든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모던한 디자인과 포근한 분위기가 한참을 머물게 한다. 갤러리 서종은 카페라기보다는 미술관에 확실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강변에 잇닿아 있는 김정숙 화랑(031-771-6191)은 전망이 뛰어나서 눈길이 간다.

1층은 전시실이고 2층은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가일미술관(031-584-4722)은 두 개의 쪽배가 서로 맞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북한강의 푸른 물과 어울려 멋있다. 2000평 규모에 3개의 전시장과 아트홀, 문화교실, 작업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갤러리들을 찾기 위해 나서는 길이 더 걸작이다. 사실 구정 연휴에 모든 도로가 몸살을 할 터이고 상습적으로 경춘국도 주변이 정체하는 터라 최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지방도로에서만큼은 낭만적인 드라이브 기분을 내는데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팔당호와 청평호 등의 호수와 먼발치의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여행객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 틀림없다.

가는 길
올림픽도로를 타고 달리면 미사리와 팔당대교(양평방면)를 지나 양수리 시내에서 서종면 방향으로 우회전해야 한다. 강변을 따라 수임리를 지나 청평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자. 가평군 외서면 삼회리의 가일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갤러리를 연이어 만나게 된다.


제주의 이른 봄 풍경
성산 일출봉 앞에는 벌써 노란 유채꽃이 넘실


아직은 엄동설한이 분명한데 여기저기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수 오동도에는 어김없이 동백꽃이 붉은 꽃망울을 드리우기 시작했고 제주도 성산일출봉 앞에는 벌써 노란 유채꽃이 가득하다. 한겨울의 정취만을 기대하고 제주도 여행길에 나선다면 마치 장에 나가 덤을 잔뜩 얻은 아낙네처럼 기쁜 마음을 가질 만하다.

원래 유채꽃은 3월부터 5월 사이에 피우는 꽃으로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봄철 신혼 여행객들이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왔었다. 그런 봄꽃을 1월에 만나는 것이다. 관광 비수기라 할 수 있는 제주도에 겨울철 유채꽃은 지역 경제를 살려주는 효자가 되고 있단다. 한라산의 언 땅에 헤집고 피어난 복수초도, 하얗게 핀 수선화도 만날 수 있다니 이른 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제주도가 멋진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유럽이 원산지로 알려진 유채는 기름이 많은 식물이다. 우리는 기름을 연상하면 흔히 피마자, 동백, 참깨를 떠올리지만 유채에 달린 둥그런 꼬투리 속에 담긴 씨를 짜면 기름이 나온다. 이 기름은 연료로도 사용되고 요리 재료, 윤활유로 이용되며 비누·합성고무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고 하니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 중국 명나라 때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 되어지는 유채는 제주도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일까. 봄이 되면 성산일출봉 주변은 기본이요 제주도 지천에 유채가 만발해진다. 꼭 이번 구정이 아니더라도 노란 꽃의 화려한 향연에 빠져 절로 사진을 찍게 만드는 마력에 꼭 한번 빠지길 바란다.

가는 길
성산일출봉을 가는 방법은 공항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터미널에서 성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성산에서는 일출봉 순환버스를 타면 된다. 만일 차를 빌린다면 공항에서 12번 동부일주도로를 타고 함덕과 김녕을 거쳐 성산으로 간 후 표지판을 보고 일출봉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오상훈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