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침, 넘어가시죠?

세칸 2008. 2. 24. 04:58

침, 넘어가시죠? 참, 매너는 챙기셨나요?

매너 없는 자, 식탁에 앉지 말지어다. 맛에도 예의가 있습니다

 

1. 냅킨을 벨트나 목에 끼우면 NG
2. 여성이 먼저 스푼 들 때까지 배고파도 참아주세요
3. 와인을 선택할 땐 '1인분 식사 값' 정도를 골라야 실례가 아니랍니다
4. 고기 잘라 먹을 때는 왼쪽부터 잘라 드세요


 

뉴욕에서 잘 나간다는 고급 레스토랑의 높은 벽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소문 자자한 곳이라고 예약을 서둘러본들 "죄송한데 자리가 없는데요"라든지 선심 쓰듯 "말석이나 바(bar) 쪽이라도 괜찮겠느냐"고 되묻기 일쑤다.

 

비지니스 세계에서 테이블 매너는 곧 경쟁력이다. 두세 시간에 걸쳐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도, 혹은 정반대의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식사 중에 나이프와 포크를 하늘을 향해 들고 얘기하거나, 쥔 채로 물건을 가리키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기억하자. 블룸버그 

 

특히 제임스니 캐서린 같은 서양 이름이 아닌, 다소 생소한 동양인 이름인 경우는 더하다. 결국 몇 차례 방문을 거듭하고, 컴퓨터에 입력된 고객 정보 검색을 걸쳐 식사 횟수가 조회된 후에야 비로소 분위기를 온몸으로 흠뻑 느낄만한 자리를 내준다.

필자 역시 '내 돈 주고 먹겠다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야'란 생각에 긁힌 자존심을 어렵게 수습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뉴욕 레스토랑의 이렇게 철저한 고객 관리에 박수를 보낸다. 까다롭게 구는 건 당연하다. 어렵게 쌓은 자신들의 명성에 걸맞은 고객들을 받으려는 목적이다. 여러 번 고객을 테스트해서, 레스토랑을 방문한 그날의 손님들과 어우러질 분위기 메이커로서 자격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셈이다.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적잖은 돈을 꺼내가는 레스토랑 측의 고객을 배려한 깊고 현명한 처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런 레스토랑은 일부 '고급 레스토랑(fine dining)'에 한정돼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곳에서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예술적 음식과 어우러지는 격조 있는 서비스 그리고 멋진 실내 장식을 감상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몇 가지 서양 테이블 매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테이블 착석 시 매니저가 의자를 빼주는 좌석이 상석이므로 생각 없이 덥석 앉지 않도록 유의한다.

허리를 세워 반듯한 자세로 앉고 나서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안정감 있게 착석했다면 테이블 위에 세팅된 냅킨을 펼쳐 (크기가 크다면 접어) 자신의 무릎에 올린다. 냅킨을 목에 두르거나 벨트에 끼우는 것은 실례다.

같은 테이블에 여성이 착석해 있을 경우, 남성은 초대한 여성이나 다른 여성들이 스푼을 들 때까지 기다리며, 먼저 식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만약 테이블에 여성이 없다면 호스트나 손님 중에 지위가 높은 분을 따르면 된다. 연회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식사할 때는 자신이 앉은 테이블 인원의 절반 정도에게 서브됐을 때부터 먹기 시작해도 좋다.

만약 그날의 호스트가 와인 리스트를 건네며 와인 선택권을 준다면 식사에 걸맞은 적정한 가격대의 와인을 선택하도록 하자. 적당한 와인 가격이란 그날 초대된 레스토랑의 1인분 음식값 정도를 말한다. 예전에 한 지인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와인 선택권을 받은 손님 중 한 사람이 4인분의 식사 값에 맞먹는 비싼 와인을 시켜 괜히 미안했던 적이 있다.

와인 잔에 묻은 자신의 입술 자국은 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잔에 남겨진 기름기가 와인의 맛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와인을 마시기 전에 입가에 묻은 음식물이나 립스틱 자국을 먼저 냅킨으로 닦아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쓸 때는 접시 위 2인치(약 6㎝) 이상 올리면 안 되며 가슴 이상 올라가면 더더욱 안 된다. 육류를 자를 때는 왼쪽부터 잘라 먹는다. 접시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세로로 자르되 몸 쪽으로 당기듯 한 번에 자르면 된다. 여러 번에 걸쳐 톱질하듯 자르는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포크로 육류를 잡고 나이프로 잘라낼 때는 한 번에 한 조각씩만 자른다. 한꺼번에 모두 잘라놓고 먹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고 육즙이 흘러나와 육류의 맛도 떨어진다. 육류가 아니라 생선처럼 부드럽고 뼈가 없는 것이라면 나이프는 테이블 위에 그냥 두고 포크만 사용해도 무방하다.

식사 중간에 쉴 때는 포크와 나이프를 ×자로 접시 위에 포개 놓는 것이 좋다. 기원은 17세기 이탈리아 귀족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적 상징인 십자가를 표현함으로써 신의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는 경건한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다.

빵을 먹을 때는 버터 나이프로 자르기보다는 손으로 한 입 크기로 떼어내, 한 번에 한 조각씩 먹는 게 좋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 음식이 치워지고 새 코스가 서브될 때는 다른 방향에 앉은 옆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물론 새로운 코스가 나왔다고 해서 굳이 왼쪽에 앉은 사람과의 흥미 있는 토론을 접고 오른쪽 사람과의 대화에 끼어들 필요까지는 없지만.

매너란 결코 불편한 몸동작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매너를 '삶을 멋지고 성공적으로 영위할 줄 아는 방법'이라고 정의할 정도다. 레스토랑에서 상대가 누구건 호감을 줄 수 있는 배려 깊은 행동은 충분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습관의 총집합인 매너를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다 보면 주눅든 내가 아닌 세련미가 한껏 돋보이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송희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장 
송희라씨는 요리 평론가이자, 문화관광부 산하 세계미식문화연구원 원장이다. 프랑스의 전통 깊은 요리학교인 꼬르동블루를 졸업했고,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과 공동으로 음식 평론 CEO 과정인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입력 : 2008.02.22 15:41 / 수정 : 2008.02.22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