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로 읽는 세상사
‘…토요일 오후의 우리집은 온통 행복뿐이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모두 다 예쁘게 몸치장을 하면서 춤추고 있었네/ 구슬이나? 불알이나? 딸의 어릴 적 질문법에 대하여/ 아빠가 시를 하나 써야겠다니까 여중 2학년은/ 아니 아니 아빠 저를 망신시킬 작정이세요?/ 문법도 경어법도 딱 맞게 말하는 토요일 오후/ 모의고사를 열 문제나 틀리고도 행복하기만 한/ 강남구에서 제일 예쁜 내 딸아 아이구 예쁜 것!’
- 오탁번 ‘토요일 오후’
시인이 토요일 오후 집에서 누리는 소시민적 행복의 복판에 딸이 있다. 시인은 아기 천사처럼 지상에서 가장 예쁘기만 한 딸을 실없이 놀리며 스스로 천진한 동심이 된다. 딸에게서 얻는 삶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능청맞고 익살스럽게 풀어놓는다. 그런 딸을 시집 보내며 부모들은 예나 지금이나 애틋한 마음에 젖게 마련이다.
‘언제나 애처롭던 네 얼굴/ 떠나는 날 더욱 슬퍼 보이는구나/ 너는 오늘 혼행 길 나서면/ 너른 강 작은 배 타고 거슬러 간다/ 어려서 엄마 잃은 너이기에/ 안쓰러워 다독이며 키워 왔는데/ 어린 동생 잘 보살피더니/ 이별 앞에 둘이서 한없이 우는구나/ 바라보는 이 가슴 미어지지만/ 어찌 너를 붙잡을 수 있을까/ 엄마의 가르침 잘 받지 못해/ 시집살이 잘 해낼지 걱정이구나/ 다행히 훌륭한 가문으로 출가하니/ 어루시되 나무라지는 않으시리라/ 내 가난해/ 혼수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구나/ 시부모 섬기고 아내의 도리 지켜/ 언행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어라/ 오늘 아침 이별하고 나면/ 언제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지금껏 혼자 삭여왔다만/ 오늘은 격한 마음 누르기 어렵구나/ 널 보내고 돌아와 작은딸 보니/ 떨어지는 눈물 갓끈 타고 흐른다(永日方戚戚 出行復悠悠 女子今有行 大江溯輕舟 爾輩苦無恃 無念益慈柔 幼爲長所育 兩別泣不休 對此結中腸 義往難服留 自小闕內訓 事姑貽我憂 賴?托令門 任恤庶無尤 貧儉誠所尙 資從豈待周 孝恭遵婦道 容止順其猷 別離在今晨 見爾當何秋 居閑始自遺 臨感忽難收 歸來視幼女 零淚緣纓流).’
- 위응물(韋應物)
‘양씨 가문에 딸을 보내며(送楊氏女)’
당(唐) 시인 위응물은 아내 앞세운 이래 딸에 대한 사랑과 회한과 안타까움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여 왔다. 그 부정(父情)은 딸 시집 보내는 날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만다. 어렵게 키워 대견하게 자란 맏딸을 보내며 노래한 심사는 지금 부모들 가슴에도 절절히 와닿는다. 그렇듯 부모와 딸 사이 정서적 친밀도는 뻣뻣한 부자(父子) 사이와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딸만 둘 둔 시인이 밤늦게 집에 와 함께 잠이 든 세 모녀를 앞에 두고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풀어놓는다.
‘그렇게도 여자를 그리워했더니/ 어디 한번 당해봐라/ 너희 둘 보내주었거니 에미까지 합이 셋/ 그렇게도 사랑에 목말라했더니/ 사랑이 어디 가슴이 확 트이는 킨사이다 정도냐고/ 너희들 내게 보내주었거니 너희들 잠든 사이/ 등판 적셔 벽에 기댄 채 하염없이 하염없이/ 잃어버린 여자들과 잃어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잃어버린 젠장에 대해 생각한다/ …/ 남은 것은 뒤엉켜 잠든 세 여자/ 세월이 다시 이만큼 흘러/ 너희들 남자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목매달고/ 손바닥 가득 식은땀 흐를 때/ 누군가의 잃어버린 세월과 잃어버린 사랑과/ 더이상 잃기 싫어 눈물로 채운/ 긴 밤과 빈 상자에 대해 생각하라/ …/ 그것이 너희들 잠든 사이/ 남아 숨쉬는 자의 마지막 행복이었으니.’
- 박철 ‘너희들 잠든 사이 - 두 딸에게’
- 오탁번 ‘토요일 오후’
시인이 토요일 오후 집에서 누리는 소시민적 행복의 복판에 딸이 있다. 시인은 아기 천사처럼 지상에서 가장 예쁘기만 한 딸을 실없이 놀리며 스스로 천진한 동심이 된다. 딸에게서 얻는 삶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능청맞고 익살스럽게 풀어놓는다. 그런 딸을 시집 보내며 부모들은 예나 지금이나 애틋한 마음에 젖게 마련이다.
‘언제나 애처롭던 네 얼굴/ 떠나는 날 더욱 슬퍼 보이는구나/ 너는 오늘 혼행 길 나서면/ 너른 강 작은 배 타고 거슬러 간다/ 어려서 엄마 잃은 너이기에/ 안쓰러워 다독이며 키워 왔는데/ 어린 동생 잘 보살피더니/ 이별 앞에 둘이서 한없이 우는구나/ 바라보는 이 가슴 미어지지만/ 어찌 너를 붙잡을 수 있을까/ 엄마의 가르침 잘 받지 못해/ 시집살이 잘 해낼지 걱정이구나/ 다행히 훌륭한 가문으로 출가하니/ 어루시되 나무라지는 않으시리라/ 내 가난해/ 혼수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구나/ 시부모 섬기고 아내의 도리 지켜/ 언행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어라/ 오늘 아침 이별하고 나면/ 언제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지금껏 혼자 삭여왔다만/ 오늘은 격한 마음 누르기 어렵구나/ 널 보내고 돌아와 작은딸 보니/ 떨어지는 눈물 갓끈 타고 흐른다(永日方戚戚 出行復悠悠 女子今有行 大江溯輕舟 爾輩苦無恃 無念益慈柔 幼爲長所育 兩別泣不休 對此結中腸 義往難服留 自小闕內訓 事姑貽我憂 賴?托令門 任恤庶無尤 貧儉誠所尙 資從豈待周 孝恭遵婦道 容止順其猷 別離在今晨 見爾當何秋 居閑始自遺 臨感忽難收 歸來視幼女 零淚緣纓流).’
- 위응물(韋應物)
‘양씨 가문에 딸을 보내며(送楊氏女)’
당(唐) 시인 위응물은 아내 앞세운 이래 딸에 대한 사랑과 회한과 안타까움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여 왔다. 그 부정(父情)은 딸 시집 보내는 날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만다. 어렵게 키워 대견하게 자란 맏딸을 보내며 노래한 심사는 지금 부모들 가슴에도 절절히 와닿는다. 그렇듯 부모와 딸 사이 정서적 친밀도는 뻣뻣한 부자(父子) 사이와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딸만 둘 둔 시인이 밤늦게 집에 와 함께 잠이 든 세 모녀를 앞에 두고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풀어놓는다.
‘그렇게도 여자를 그리워했더니/ 어디 한번 당해봐라/ 너희 둘 보내주었거니 에미까지 합이 셋/ 그렇게도 사랑에 목말라했더니/ 사랑이 어디 가슴이 확 트이는 킨사이다 정도냐고/ 너희들 내게 보내주었거니 너희들 잠든 사이/ 등판 적셔 벽에 기댄 채 하염없이 하염없이/ 잃어버린 여자들과 잃어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잃어버린 젠장에 대해 생각한다/ …/ 남은 것은 뒤엉켜 잠든 세 여자/ 세월이 다시 이만큼 흘러/ 너희들 남자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목매달고/ 손바닥 가득 식은땀 흐를 때/ 누군가의 잃어버린 세월과 잃어버린 사랑과/ 더이상 잃기 싫어 눈물로 채운/ 긴 밤과 빈 상자에 대해 생각하라/ …/ 그것이 너희들 잠든 사이/ 남아 숨쉬는 자의 마지막 행복이었으니.’
- 박철 ‘너희들 잠든 사이 - 두 딸에게’
잠든 세 여자에게 하는 혼잣말이 유머러스하다. 그러니 그건 푸념도 넋두리도 아니다. 세 모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과 사랑과 남루한 인생을 돌이켜보고, 두 딸 앞에 펼쳐질 인생의 기복을 내다보며 설레고 안쓰러워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행복해 한다. 그 딸 사랑에 절로 미소가 솟는다.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뭐/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김영승 ‘반성 100’
민감하고 섬세할 소녀들이 거리낌없이 아버지를 도와 거친 일을 하면서도 애비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니들은 두 장씩” 하며 어린 딸들을 생각하는 애비 마음에도 부녀 사랑은 물론 인간적 진정성이 있다.
뉴욕타임스가 ‘아들이 왕 대접 받던 한국, 딸 쪽으로 옮겨가다(Where boys were kings, a shift toward baby girls)’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남아선호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기혼여성 절반이 ‘아들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아들이 꼭 필요하다’는 사람도 열에 하나 꼴이라는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도 소개했다.
요즘 중년 주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유머 시리즈만 봐도 자녀 성별에 대한 세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들은 사춘기 되면 남남, 군대 가면 손님, 장가 들면 사돈’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 진 아들은 내 아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매달’ ‘아들은 큰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예쁜 도둑’….
알콩달콩 딸 키우는 재미에다 노후에도 딸들이 훨씬 살갑게 챙겨준다는 걸 요즘 부모들은 잘 안다. 억압돼 있던 여성 능력의 약진과 폭발적 사회 진출, 급속한 핵가족화, 아내들의 집안 주도권 확보, 맞벌이 부부 증가. 그래서 처가가 더 친밀하고 처가에 더 의지하는 신(新)모계사회가 이미 도래했다고들 말한다.
‘백년 전의 조선엔/ 아들 낳은 여인이 유방을 내보이는/ 특이한 풍속이 있었다/ 무명 치마저고리 사이에/ 여인의 유방이 두 개의 노을처럼 달렸지/ 여인의 유방은 혁명의 깃발처럼 펄럭이고/ 여인의 유방에서 위풍당당한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사방팔방 강가에 조선의 모유가 흘러넘치지// 백년, 다시 백년 후의 조국엔/ 딸을 낳은 여인도 유방을 드러내놓고/ 남태평양처럼 화통방통하게 웃는/ 마땅한 일상사가 이어지것다/ 허허벌판에서 두 개의 우주를 털렁이며/ 어화어화 내 사랑/ 어화둥둥 내 딸년/ 그 딸년들을 위해 인디언 추장처럼 춤추는/ 나, 신현림과 내 딸의 딸들이 있을 것이다/ 하하하하하….’
- 신현림 ‘아들 자랑’
신현림은 남성 이데올로기에 맹종하는 100년 전 한 조선 여인의 사진을 보며 분노, 슬픔, 안타까움, 가여움, 모멸감을 토해냈다. 그는 앞으로 100년 뒤엔 딸 낳은 여인이 가슴을 드러내고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했지만 100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그런 시대가 이미 와있으니까.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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