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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건설협회 박덕흠 중앙회장

세칸 2008. 2. 1. 00:18
전문건설협회 박덕흠 중앙회장
줄도산 위기 4만 중소건설업체 “살 길은 서비스와 장인정신”

서울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 앞에 선 박 회장.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공공 부문의 공사 발주는 바싹 말랐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지방의 중소 건설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가 현실화되며 건설 경기의 침체가 한층 가중되고 있다. 건설 시장의 새로운 재편을 앞두고 위기와 기회가 숨가쁘게 교차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11월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에서 박덕흠(54)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을 만났다.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전국 4만여 전문건설업체의 수장을 맡고 있는 박 회장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는 업계의 체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건설 산업 위기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업체 수는 대폭 늘었지만 신규 물량은 상당수 줄었습니다. 최저가 낙찰제의 확대, 업체 간 출혈경쟁에 따라 채산성이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입니다. 최근 우량 주택건설업체의 잇따른 도산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건설업=3D업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젊은 인력의 유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중소업체의 경우 어려움이 더하다고 했다. SOC(사회간접자본), BTL(Build-Transfer-Lease·민간투자사업)처럼 덩어리가 큰 사업 단위로 발주돼 자금력에서 딸리는 중소기업은 수주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투자 자금의 회수 시간도 길어져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고 했다.
 
박 회장은 근본 원인부터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생존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대승적 관점에서 긴 안목으로 건설산업을 조망하고 이끌어갈 리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건설 산업은 전통적으로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협업(協業)산업인데 업종 간, 원도급·하도급 간에 건전한 협력 관계가 구축되지 못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죠. 일단 수주에 성공한 뒤 긴장이 풀려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시공, 철저한 사후관리에 집중하지 못한 점도 고백합니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 전문건설인들에게 장인정신이 부족했다.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면서 건설업의 현주소를 스스로 비판했다.
 
박 회장은 2006년 11월 제8대 대한전문건설협회장에 선출됐다. 취임 후 벌써 1년. “선출 당시 내놓은 공약을 어느 정도 실현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50% 이상 ‘공정’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를 전면 확대하자는 것이다.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란 주계약자인 일반 건설업체가 전체 공사를 계획·관리·조정하고 여기에 전문건설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각 부문별 전문 공사를 직접 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원도급과 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계를 상호수평적 관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부조리를 막고 적정 공사비를 확보해 부실공사가 원천적으로 줄고, 공사 대금을 부당하게 깎거나 뒤늦게 지급하는 불공정 관행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제도 도입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답변만 되풀이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현재 행정자치부에서 철강재와 삭도(케이블카), 준설 등 7개의 일반·전문 겸업 허용 업종에 대해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업종 자체가 복합공사로 발주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고 발주처의 시행 의지도 부족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하도급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하도급 계획서 제출 제도’가 적용 대상으로 최저가 낙찰 대상이 300억원 이상인 공사로 한정돼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도급 비리는 중소형 공사에서 다수 발생합니다.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죠. 이른 시일 안에 10억원 이상의 소규모 공사까지 제도를 확대 적용해야 합니다.”
 
사실 일반 국민은 ‘전문건설업’이라는 이름을 각종 파업 관련 보도에서 접해온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던 포항지역 건설플랜트 노조의 파업이 있었고, 최근 울산 지역에서는 플랜트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박 회장은 “정부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자세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원칙론을 밝히면서 “발주자와 원도급·하도급자, 노조에서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성과 배분과 손실 보상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의 주장은 지역 건설노조에 소속된 근로자를 50% 이상 의무 고용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라는 것입니다. 과도한 임금 인상도 주장하고 있지요.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현장을 점거하고 시설물을 파괴하는 불법 행위를 벌이는 점입니다.”
 
박 회장은 취임 이후 협회에 노무 관련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본부장급 임원을 두고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회원사의 노무 관리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협회는 건설산업 현장의 실태를 가감없이 반영한 제도와 특별법을 마련, 건설업체와 근로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건설산업의 해외 수주 물량 비율을 보면 중동 59%, 기타 지역이 41%로 나타났다. 중동이 건설산업의 위기를 헤쳐갈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른 것이다. 전문건설업의 해외 진출 실적은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5년에 25건 4112만달러에서 작년 39건 1억1574만달러로 올랐고, 올해에는 10월 현재 85건 4억4403만달러로 치솟았다. 이 대목에서 박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100년, 200년 살아남을 기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산에 기반을 둔 동아지질은 싱가포르와 중동에서 터널과 지반 개량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수주 실적만 514억원에 이릅니다. 토공과 보링·그라우팅(지반 또는 구조물에 구멍을 뚫고 압력을 가해 보강재를 설치하거나 시멘트 등을 주입하는 공사)을 전문으로 하는 삼보지질은 작년 528억원어치를 수주했고 올해에는 2041억원어치를 수주했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1200억원 규모의 단일 공사를 따냈습니다.”
 
그는 전문건설업의 해외 진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고 했다. 우선 가장 큰 부분은 언어 문제로 발주처와 현장 인력과의 의사 소통이나 계약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 영어나 현지어 구사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화’는 필수라고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현지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충북 옥천 출신의 박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급격히 기운 가세 때문에 어려운 학창생활을 보냈다. 20대 중반의 늦깎이로 신구전문대 토목과에 입학했고,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 3학년에 편입,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오래지 않아 건설업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상·하수도 관련 공사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포장, 교량 등 시설물 보수와 토공으로 업종을 다변화했다.
 
건설업자로서 그는 복개된 청계천 아래 상수도관을 설치하는 공사를 기억했다. 당시 청계천 속은 사람들이 들여다보지 않는 땅속이라 “이무기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분진이 심해 매일 인부들과 돼지고기를 먹어가며 작업을 벌이던 일이 지금도 새롭다고 했다. 한창 지하에서 작업을 벌이던 중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물이 불어 쓸려내려갈 뻔한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쭈뼛해진다고 박 회장은 회상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묻자 “1994년 여름”이라는 박 회장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강서구 염창동에 매설한 1650㎜ 짜리 대형 상수도관 사건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흘러요. 새벽에 급히 전화가 왔어요. 수도관이 터져서 염창동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고 했죠. 그때는 정부에서 부실공사한 업체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하던 때였거든요. 언론에서 취재하고 난리가 났는데 조금 있다 김일성 사망 발표가 나더군요. 관심이 일순 김일성 사망에 쏠렸죠. 나중에 나온 조사 결과를 보니, 우리가 작업한 수도관이 아니라 이전에 묻은 다른 400㎜ 짜리 상수도관이 너무 낡아 옆구리가 터진 것이었어요.”
박 회장은 “전문건설업의 살 길은 신기술 개발에 있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산다. 건설업체를 경영하면서 그 역시 적지 않은 기술 개발을 이뤄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신기술은 STS(Steel Tube Slab) 공법. 이미 건설돼 사용하고 있는 상부 도로에서 차량이 평상시처럼 통과하도록 그대로 둔 채, 도로 하부를 뚫어 터널을 만드는 공법이다.
 
아무런 보강 조치 없이 그냥 땅을 굴착하면 위쪽에서 가하는 압력에 의해 도로 일부가 무너지게 되지만 STS 공법에 의하면 가능하다. ‘불가능은 없다’ ‘미래는 꿈꾸는 자에게 생긴다’는 좌우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회사의 CEO로서, 그리고 협회장으로서 그가 벌이는 운동이 하나 있다. 바로 ‘5S 운동’이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Smile) 회원을 바라보며(See) 항상 부드럽고(Soft) 신속하게(Speed) 회원사가 만족(Satisfaction)할 때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회장으로서 군림하지 않고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최선을 다해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최근 박 회장은 자서전을 냈다. 직접 달았다는 책의 제목은 ‘벼랑에 선 소나무’. 그는 “벼랑 위에 선 소나무는 아무리 태풍이 온다고 하더라도 뿌리가 튼튼해서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며 “100년, 200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박 회장은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건설업의 문제를 해결하자면서 나온 대안들은 대부분 시장 논리와 중소기업 보호 육성 같은 법과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설 관련 생산주체 사이의 화합과 단결을 이루는 문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투명한 산업 환경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건설산업의 모습은 베일에 가려진 블랙박스(black box)와 같았습니다. 새로운 건설 문화는 바로 투명성에서 시작한다고 확신합니다.”


전문건설업

시설물의 일부나 전문 분야에 관한 공사를 시공하는 건설업. 일반건설업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기획자라면 전문건설업은 개별 악기 연주자에 해당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전국 4만여 전문건설업체로 구성돼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전문건설업은 25개 업종으로 분류되며, 설비·난방·가스 업종을 제외한 22개 업종의 전문건설업자가 정회원으로 전문건설협회에 가입하고 있다. 실내건축, 토공, 미장·방수·조적, 석공, 도장, 비계·구조물 해체, 금속구조물·창호공사, 지붕판금·건축물 조립, 철근·콘크리트, 상·하수도 설비, 보링·그라우팅, 철도·궤도, 포장, 수중, 조경식재, 조경시설물 설치, 강구조물, 승강기설치 등 18개 업종이 협회 산하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