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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잔을 나누기보다 마음을 나눌 일이다

세칸 2008. 1. 4. 20:10
詩로 읽는 세상사
 
술! 잔을 나누기보다 마음을 나눌 일이다
 
음주 손실 연 20조원에‘마시고 죽자’식 회식문화 호기 넘어 광기 치닫는 술문화 그만!

 illust 권오택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 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중에서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 ‘반성 16’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천상병 ‘주막에서’

 

많은 시인에게 술은 시를 지펴 올리는 연료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도 “술은 어쩌면 보들레르 이후 문학의 혁신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인일 것”이라고 했다.

 

애주가 시인 고은이 두어 해 전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시면 행복하고 깨어날 때의 황폐함, 그 황폐함에 대한 자기 회한과 환멸, 연민, 허무와 함께 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렇게 내 시는 쓰여졌다. 나는 시인에게 깨어 있기보다 취해 있기를 권하고 싶다. 취기와 광기를 버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죽음이다.”

 

소시민들에게 술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는 괴로움을 잠시 이겨 보려고 기대는 의지처다. 싸디싼 술을 마시며 떠도는 1970년대 중년 사내들이 무표정한 포장마차 주모 앞에 앉아 젖은 담배처럼 꺼무럭대며 풀려 있다. 술꾼들은 술기운을 빌려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짐해보지만 잠시일 뿐, 다시 생존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도시의 삶에 흔들린다.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그어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술은 고단한 서민들에게 힘과 위안이다. 술은 입술을 가볍게 하고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술자리에선 친밀감이 과장되고 호언장담이 거침없다. 술은 말더듬이도 웅변가로 만든다. 두보(杜甫)가 애주가 여덟을 유머러스하게 노래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말더듬이 서생 초수(焦遂) 얘기가 있다. ‘초수는 닷말 술에 의기충천(焦遂五斗方卓然) 고담웅변이 사람들을 놀래어라(高談雄辯驚四筵).’ 하긴 유학의 거두 주자(朱子)조차 ‘탁주 석 잔에 호기가 나니(濁酒三杯豪氣發) 시 한 수 읊으며 축융의 봉우리 뛰어넘겠다(朗吟飛下祝融峯)’라고 했으니.

우리네 술문화는 그러나 호기를 지나쳐 광기로 치닫고 있다. 밤거리가 술에 익사할 지경이고 술자리는 주사(酒邪)로 얼룩지기 일쑤다. 파출소들이 다루는 한 해 사건사고 15만건 중 주정꾼 처리가 3만건을 넘는다. 오죽하면 소주가 쌀밥에 이어 한국 남자 에너지원(源) 2위에 오를까. 소주로 얻는 하루 섭취 칼로리는 128.7㎉. 소주 한 잔은 70㎉이니 매일 소주를 거의 두 잔씩 마시는 셈이다. 회식문화, 접대문화도 ‘마시고 죽자’ 식이다. 정부가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는 직장 ‘술상무’ 기준을 ‘하루 평균 알코올 80g씩 3년간 마신 사람’으로 정해주는 나라가 다시 있을까. 이 기준에 닿으려면 소주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병씩 마셔야 한다.

 

 

질병, 사고, 범죄, 일, 가정…. 우리 사회와 경제가 술로 치러야 하는 손실비용이 한 해 20조원을 넘는다고 보건복지부가 밝혔다. 18~64세 성인 남자 가운데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사람이 전체 인구의 6.8%, 221만명이라는 통계도 곁들였다. 복지부는 6월 중순부터 TV 광고 등에서 ‘절주(節酒)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 복지부 기사 옆에 ‘한국 회식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직장마다 전문직 여자 직원들이 늘면서 삼겹살·맥주집·노래방·폭탄주로 이어지던 남성 중심 회식법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기사다. 대신 술을 원치 않거나 일찍 집에 갈 사람을 배려하고, 회식 때 고급 레스토랑이나 극장, 공연장에 가는 일도 잦아졌다고 했다.
 
지난 5월 서울고법은 여직원에게 일주일에 두 차례 넘게 새벽까지 회식과 음주를 강요한 직장 부서장에 대해 이 여직원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게임제작업체 여직원은 술이라곤 맥주 두 잔 겨우 마시고 소주는 아예 입에 대지도 못하는데도 억지로 회식에 끌려다니다 위염까지 앓고는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한다. 재판부는 “체질, 종교, 개인 사정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의 건강, 신념, 개인 생활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불법행위”라고 판결했다.
 
한서(漢書) 초원왕전(楚元王傳)에 ‘초연사례(楚筵辭醴)’라는 고사가 나온다. 한나라 초원왕 유교(劉交)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의 아우다. 유교는 재사 목생(穆生)을 아껴 예로써 대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목생을 위해 연회 때마다 단술(醴)을 준비시켜 대신 들게 했다. 유교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 무(戊)가 더 이상 단술을 마련하지 않자 목생은 신하를 대하는 왕의 뜻이 태만해졌다며 떠나간다. 얼마 안 가 유무는 신하를 죽이고 악행을 일삼다 전쟁에서 패해 자결한다.
 
술자리에서 술 못 마시는 아랫사람을 함부로 하는 직장 상사들이 새겨야 할 고사다. 안 그랬다간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게임제작업체 간부처럼 호되게 당할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는 우리 회식문화가 많이 고와졌다고 보도했지만 술 못하는 게 사회활동의 결함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풍조와 그런 이들을 배려하기는커녕 학대에 가깝게 몰아붙이는 술자리들이 여전하다.
 
고은이 연전에 문학지에 글을 실었다.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문인으로서 그 서운한 마음을 모를 바 아니지만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술 안 마시겠다는 사람, 술 못 마시는 사람 허리춤 붙들고 주저앉혀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백(李白)이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에서 읊었다. ‘취했으니 자려네, 자넨 가게나(我醉欲眠卿且去) 내일 아침 맘 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게나(明朝有意抱琴來).’ 술 친구를 순순히 놓아 보내는 건 사실 주선(酒仙) 이백이나 닿을 경지다. 우리 평범한 술꾼들은 어지간히 마시고도 서로를 끌어당기느라 자리 파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내일 일은 어찌 되건 뿌리를 뽑고 마는 술문화, 이젠 이별할 일이다.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