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로 읽는 세상사
- 술! 잔을 나누기보다 마음을 나눌 일이다
- 음주 손실 연 20조원에‘마시고 죽자’식 회식문화 호기 넘어 광기 치닫는 술문화 그만!
illust 권오택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 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중에서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 ‘반성 16’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천상병 ‘주막에서’
많은 시인에게 술은 시를 지펴 올리는 연료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도 “술은 어쩌면 보들레르 이후 문학의 혁신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인일 것”이라고 했다.
애주가 시인 고은이 두어 해 전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시면 행복하고 깨어날 때의 황폐함, 그 황폐함에 대한 자기 회한과 환멸, 연민, 허무와 함께 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렇게 내 시는 쓰여졌다. 나는 시인에게 깨어 있기보다 취해 있기를 권하고 싶다. 취기와 광기를 버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죽음이다.”
소시민들에게 술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는 괴로움을 잠시 이겨 보려고 기대는 의지처다. 싸디싼 술을 마시며 떠도는 1970년대 중년 사내들이 무표정한 포장마차 주모 앞에 앉아 젖은 담배처럼 꺼무럭대며 풀려 있다. 술꾼들은 술기운을 빌려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짐해보지만 잠시일 뿐, 다시 생존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도시의 삶에 흔들린다.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그어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술은 고단한 서민들에게 힘과 위안이다. 술은 입술을 가볍게 하고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술자리에선 친밀감이 과장되고 호언장담이 거침없다. 술은 말더듬이도 웅변가로 만든다. 두보(杜甫)가 애주가 여덟을 유머러스하게 노래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말더듬이 서생 초수(焦遂) 얘기가 있다. ‘초수는 닷말 술에 의기충천(焦遂五斗方卓然) 고담웅변이 사람들을 놀래어라(高談雄辯驚四筵).’ 하긴 유학의 거두 주자(朱子)조차 ‘탁주 석 잔에 호기가 나니(濁酒三杯豪氣發) 시 한 수 읊으며 축융의 봉우리 뛰어넘겠다(朗吟飛下祝融峯)’라고 했으니.
우리네 술문화는 그러나 호기를 지나쳐 광기로 치닫고 있다. 밤거리가 술에 익사할 지경이고 술자리는 주사(酒邪)로 얼룩지기 일쑤다. 파출소들이 다루는 한 해 사건사고 15만건 중 주정꾼 처리가 3만건을 넘는다. 오죽하면 소주가 쌀밥에 이어 한국 남자 에너지원(源) 2위에 오를까. 소주로 얻는 하루 섭취 칼로리는 128.7㎉. 소주 한 잔은 70㎉이니 매일 소주를 거의 두 잔씩 마시는 셈이다. 회식문화, 접대문화도 ‘마시고 죽자’ 식이다. 정부가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는 직장 ‘술상무’ 기준을 ‘하루 평균 알코올 80g씩 3년간 마신 사람’으로 정해주는 나라가 다시 있을까. 이 기준에 닿으려면 소주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병씩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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