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갱죽은 슬픈 음식!

세칸 2007. 12. 31. 11:29

그렇게 싫던 갱죽이 그립다, 이 겨울…

고작해야 콩나물·시래기 넣은,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던 죽… 흐릿하면서 질긴 가난의 추억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창과 교수

 

가로등에 불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스산한 겨울 저녁이면 불현듯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갱죽이 그것이다. 콩나물과 김치, 혹은 삶은 무청 시래기 따위를 숭숭 썰어 희멀겋게 끓인 죽 말이다.

나는 여태 단 한 번도 갱죽을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겨울이 되면 왠지 반드시 먹어봐야 할 것 같은 희한한 음식이다. 갱죽 그릇에 코를 박고 퍼먹다가 보면 이 겨울이 훈훈해질 것 같고, 진절머리 나는 세상의 일들도 썩 물러갈 것 같다. 그립지도 않은데 그립고, 먹기 싫은데도 먹고 싶고, 먹어도 괜찮고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 바로 그런 음식이 갱죽이다.

혀끝에 남아있는 감미롭고 화려한 미각만 기억을 지배하는 게 아니다. 진수성찬의 기억은 강렬하고 매혹적이지만 대체로 살뜰한 여운이 없게 마련이다. 이에 비해 갱죽을 먹던 기억은 흐릿하면서도 끈질기다. 그 불그죽죽한 빛깔과 시큼한 냄새와 형언하기 어려운 맛과 숟가락으로 후룩후룩 떠먹을 때의 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갱죽’이라는 말 속에는 모든 감각을 빨아들이고 퍼뜨리는 기억이 다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자주 갱죽을 먹었다. 끼니때가 되어 배가 고파서도 먹었지만,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먹고살기 힘겨운 시기였으므로 밥상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일은 가장 못된 짓이라고 배웠다. 어른들은 밥알 한 톨도 국물 한 숟가락도 남기지 말 것을 엄하게 주문했다. 이를 어기면 잔소리나 매가 날아왔다. 적어도 음식에 관한 한 어린아이들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식은 밥이 어중간하게 남아있는 저녁이면 그 찬밥으로 갱죽을 끓였다. 쌀을 다시 안치기도 그렇고, 겨울 저녁에 찬거리를 새로 만들기도 어설프고, 손이 귀찮기도 할 때, 그냥 한 끼 때우고 새끼들을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쌀을 한 줌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으로 어머니는 갱죽을 끓였을 것이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그때, 부엌 연탄불 위에서 갱죽이 보글보글 끓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숙제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있었을까?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의 무지갯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지게 된다는 마이카 시대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니, 가난의 냄새가 나는 죽 냄새를 맡기 싫어 코를 싸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근검과 절약이라는 단어는 그 시대의 주요한 국가적 슬로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구호를 부엌에서 가장 잘 실천하는 음식이 갱죽이 아니었을까 싶다. 갱죽을 먹을 때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으니까. 김치도 없이 밥상 위에 달랑 간장 종지 하나만 있으면 족했으니까.

갱죽을 떠올리면 쓰라린 통증 같은 것이 목에 걸린다. 그것은 뜨끈하지만 눈자위를 시큰거리게 하는, 쓸쓸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어릴 적, 60촉 백열전구 아래 숟가락을 들고 둘러앉은 우리들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시집올 때 먹던 갱죽은 밥알보다 나물이 더 많았단다.”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는 사이, 아버지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갱죽이 최고지. 영양도 풍부하고.”

희멀건 죽이 왜 영양이 풍부한지 따져 물어볼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갱죽을 먹으면 금방 배가 꺼질 터이니 한 그릇 더 먹으라는 말에 빈 그릇을 디밀었을 뿐. 그렇게 배를 빵빵하게 채워야만 긴 겨울밤의 허기를 그나마 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갱죽이 키운 자식들이었다.

갱죽의 ‘갱’은 제사 때 올리는 국이라는 뜻의 ‘갱(羹)’ 자를 쓴다. 흔하지 않은 한자다. 시래기죽이거나 김치죽, 콩나물죽, 풀죽, 나물죽 따위로 불러도 될 텐데 왜 하필이면 갱죽이라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알기 쉬운 말보다는 어려운 말을 택해 혹시 가난의 궁핍함을 은폐해 보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건 아닐까? 내용은 별 게 아니더라도 간판은 그럴싸하게 달아보고 싶은 치장의 욕망이 작용한 건 아닐까? 음식 이름을 두고 웬 난데없는 어깃장이냐고 나무란다 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갱죽은 슬픈 음식이기 때문이다.

꽁보리밥도 웰빙 음식으로 대접을 받는 시대이니 누군가 또 갱죽을 판다고 식당 영업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집이 생긴다 해도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제대로 된 갱죽은 어머니가 찬장 속에 들어있는 꼬들꼬들한 찬밥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기에 매캐한 연탄불 냄새가 곁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갱죽을 말없이 먹어주는 식구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입으로 먹어야 할 것들이 넘치고, 먹을 것을 파는 집도 많고, 너나 할 것 없이 먹는 데 목숨을 거는 시절이다. 나는 그 반대쪽을 바라보며 ‘갱죽’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다.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간을 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