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싫던 갱죽이 그립다, 이 겨울…
고작해야 콩나물·시래기 넣은,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던 죽… 흐릿하면서 질긴 가난의 추억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그때, 부엌 연탄불 위에서 갱죽이 보글보글 끓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숙제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있었을까?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의 무지갯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지게 된다는 마이카 시대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니, 가난의 냄새가 나는 죽 냄새를 맡기 싫어 코를 싸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근검과 절약이라는 단어는 그 시대의 주요한 국가적 슬로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구호를 부엌에서 가장 잘 실천하는 음식이 갱죽이 아니었을까 싶다. 갱죽을 먹을 때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으니까. 김치도 없이 밥상 위에 달랑 간장 종지 하나만 있으면 족했으니까.
갱죽을 떠올리면 쓰라린 통증 같은 것이 목에 걸린다. 그것은 뜨끈하지만 눈자위를 시큰거리게 하는, 쓸쓸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어릴 적, 60촉 백열전구 아래 숟가락을 들고 둘러앉은 우리들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시집올 때 먹던 갱죽은 밥알보다 나물이 더 많았단다.”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는 사이, 아버지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갱죽이 최고지. 영양도 풍부하고.”
희멀건 죽이 왜 영양이 풍부한지 따져 물어볼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갱죽을 먹으면 금방 배가 꺼질 터이니 한 그릇 더 먹으라는 말에 빈 그릇을 디밀었을 뿐. 그렇게 배를 빵빵하게 채워야만 긴 겨울밤의 허기를 그나마 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갱죽이 키운 자식들이었다.
갱죽의 ‘갱’은 제사 때 올리는 국이라는 뜻의 ‘갱(羹)’ 자를 쓴다. 흔하지 않은 한자다. 시래기죽이거나 김치죽, 콩나물죽, 풀죽, 나물죽 따위로 불러도 될 텐데 왜 하필이면 갱죽이라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알기 쉬운 말보다는 어려운 말을 택해 혹시 가난의 궁핍함을 은폐해 보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건 아닐까? 내용은 별 게 아니더라도 간판은 그럴싸하게 달아보고 싶은 치장의 욕망이 작용한 건 아닐까? 음식 이름을 두고 웬 난데없는 어깃장이냐고 나무란다 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갱죽은 슬픈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입으로 먹어야 할 것들이 넘치고, 먹을 것을 파는 집도 많고, 너나 할 것 없이 먹는 데 목숨을 거는 시절이다. 나는 그 반대쪽을 바라보며 ‘갱죽’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다.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에 묻은/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간을 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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