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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2억원을 버는 화가…

세칸 2007. 11. 24. 17:45

1분에 2억원을 버는 화가…

150호 화폭에 달랑 점 하나,    단순 제작시간 1~2분
...... 낙찰가는 4억2000만원!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

 

21일 런던에서 열린 필립스 경매회사의 경매에서는 배병우 사진가의 소나무 시리즈 한 점이 7만4900파운드(약 1억4000만원)에 낙찰돼 작가의 기록을 새로 세웠다. 이달 중순 뉴욕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에서 출품작 3점의 낙찰 총액이 166만7000달러(약 15억6000만원)였던 이우환 화백의 활약 역시 빛난다.

우리나라에서 시간당 인건비가 가장 비싼 화가는 누굴까? 아마도 이우환(71) 화백일 것이다. 그의 작품 ‘조응’이 지난 9월 서울옥션의 경매에서 4억2000만원에 낙찰되었다. 150호의 화폭(227×182㎝)에 달랑 점 하나가 있는 것이 전부다. 그 점 하나를 찍기 위해 이 화백이 들인 물리적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물감을 섞는 시간까지는 약 1~2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백은 1분에 최소 2억원에서 최대 4억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한 게 된다.

한편으로는 큰 그림이기 때문에 그만큼 비싸지 않았겠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럼 이건 어떤가? 같은 날 경매에서 10호 크기(53×45.5㎝)의 작품이 1억6000만원에 낙찰되었다. 물론 화면엔 점 하나뿐이다. 역시 시간 대비 수익률을 따져보면 분당 2억원에 가깝다. 작품 제작 시간과 가격만으로 계산해본다면 이 화백의 수익창출에 따른 경제적 생산력은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저 캔버스에 물감 덩어리를 한 번 찍었을 뿐인데 도대체 왜 그리 비싼 겁니까? 물감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섞은것도 아닌데, 도대체 비싼 이유가 뭔가요?”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개인이 단 1~2분 만에 아파트 한 채 값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브랜드 값’이라고 얼버무리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78) 화백의 인기가 한창 치솟았을 때는 물방울 개수에 따라 작품 값이 달라진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가령 같은 크기의 화면에 물방울이 두세 개 그려진 것보다 수십 개 그려진 것이 훨씬 비싸다는 비유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김 화백의 물방울 한 개 값이 10만원이니 20만원이니 했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9월 경매에서는 물방울 값이 600만원으로 껑충 뛴 셈이다. 3000만원에 낙찰된 3호 크기(27×22㎝)의 작품에는 물방울이 5개 들어있었다. 물론 이러한 비유는 와전된 억지낭설이다.

 

김창열 화백의‘물방울’ 


미술 작품의 가치는 평생 작업에 매진한 작가의 정신세계와 관객의 교감이 일치할 때 발생한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보자. 이 화백의 작품은 선, 점, 바람, 조응 등의 시리즈로 나뉜다. 화면에 반복적인 몇 개의 직선이나 곡선, 점이 등장할 뿐이다. 만약 이 그림들을 선 긋기나 점 찍기라는 단순한 행위의 결과로만 이해한다면 너무나 허무할 것이다.

이 화백 그림의 진정한 매력은 ‘정지된 호흡에서 나온 기운의 결정체’라는 점이다. 그의 점은 화면 안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점을 상하좌우로 조금만 움직여도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민의 결실이다. 결국 이 화백은 점 하나를 찍는 단 10초를 위해 100시간을 심사숙고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는 김창열 화백도 마찬가지다. 김 화백에게 물방울은 작은 우주와 같다. 물방울은 생명의 시작이자 물질의 근본이고 진리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런 작품을 단순한 물방울 그림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모두 비싸고 좋은 것은 아니다. 같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과도 빛깔이 고운 것과 평범한 것이 있듯이 한 작가의 작품에도 차이가 있다. 작품의 가격은 질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주변 환경의 영향에 좌우되기도 한다. 예컨대, 인기 작가인 사석원(48)의 경우, 그가 즐겨 그리는 같은 당나귀 그림이라도 최종 낙찰 가격에서 큰 폭을 보인다. 꽃다발을 등짐 한가득 실은 당나귀 그림은 20호라도 5500만원이지만 그렇지 않은 당나귀 그림은 훨씬 큰 50호인데도 가격은 비슷한 5700만원이다.

천경자(83) 화백 역시 트레이드마크인 소녀(여인) 그림이 호당 1억원에 가깝다면, 일반 풍경은 5000만원 내외이기도 하다. 설악 풍경의 대가 김종학(71) 화백의 화려한 원색 ‘풍경’ 20호가 1억3200만원의 낙찰가를 기록한 데 비해, 어두운 톤의 일상 풍경은 유찰되는 사례도 잦다. 이 외에 권옥연(84)은 소녀, 이수동(49)은 자작나무, 이정웅(44)은 붓, 윤병락(40)은 사과 등이 같은 작품 중에서도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소비자(애호가)의 안목에 의한 선호도가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미술품 수집은 그림을 보는 안목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만 길고 오래, 흔들림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입력 : 2007.11.23 23:14 / 수정 : 2007.11.24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