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변혁을 꿈꾸다] 한옥 아파트
《한옥 아파트라고 해서 한옥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을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 한옥 그 자체보다 한옥의 미덕을 잘 살린 아파트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한옥의 미덕이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기후나 풍토에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깊은 처마 도시를 품고… 탁 트인 대청마루 하늘이 들어오고
여름에 덥고 습한 우리나라에서 비 오는 날 창을 열 수 없다는 것은 고역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깊은 처마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가 오면 창을 닫아야 하고 결국 에어컨을 돌릴 수밖에 없다. 간단한 자연 환기로 해결될 일에 에너지가 동원되는 것이다.
한옥의 또 다른 특성은 마당이다. 외부 공간이 빈약한 집은 한옥의 맛과 멋을 갖기 어렵다. 처마 밑까지 방을 키우고 마당을 유리로 막아 버린 한옥은 그래서 한옥이되 한옥의 미덕은 사라진 집이다.
여기 소개하는 한옥 아파트는 서울 북촌 가회동에 실재하는 한 도시형 한옥의 구조를 적절히 변경하여 구성한 것이다. 문간채에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두고 벽면의 창호 등을 조정한 것을 빼고 기본적인 구조는 그대로 유지했다. 1930년대 높아지는 도시의 밀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형 한옥을 도시 밀도에 대한 또 다른 대응 방식인 한옥 아파트의 기본형으로 삼는 것이다.
한 층에 한 채, 사방이 트인 집
한옥 아파트는 좁고 날씬한 건물로 한 층에 한 집만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남향, 북향 등의 방위가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방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건물 한 동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기존 도시의 작은 필지에도 지을 수 있다.
한옥 아파트를 대규모 단지로 지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의 일상적인 가로변에 바짝 접해 짓는다. 마치 북촌의 도시형 한옥들에서 방과 마당이 길에 접하고 있는 것과 같다. 길이란 측면에서 보면 철옹성 같은 아파트 담장이 아닌, 건물 하부의 로비와 상점들에 접하는 셈이다. 그만큼 좋은 길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옥 아파트는 도시를 좋아한다.
이 평면의 바탕이 된 한옥은 서울 북촌 가회동에 실제로 존재한다. 1930년대 도시형 한옥의 평면을 변경해 한옥 아파트의 기본형으로 삼았다. 문간채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마당을 거쳐 집 안으로 들어간다. |
엘리베이터에서 마당으로
물론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게 설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당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격이다. 적층식(積層式) 구조이므로 마당의 상부는 윗집에 의해 막혀 있다. 그러나 옆으로는 트여 있기 때문에 충분한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고 경관도 제공된다. 건물 중간에 복층 구조의 아파트를 만들면 마당이 2층 높이가 되어 훨씬 개방적인 구성이 가능하다.
고층 건물을 목조로 짓는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실용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 골격은 콘크리트로 하고 건물 내외부의 마감에 나무를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연재료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길 수는 있다.
발코니 없는 아파트
아파트의 발코니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의 하나다. 조금이라도 더 실내 면적을 증가시키고 소음이나 먼지, 추위 등을 막기 위해 발코니는 다양한 재료로 막혀지며 외기에 대한 최소한의 접촉마저 이렇게 사라지고 만다. 한옥 아파트에는 층마다 깊은 처마가 있으며 발코니는 없다. 깊은 마당이 있으므로 발코니가 별로 필요 없기도 하다. 외관 변경이 불가능하므로 발코니 불법 증축 등의 시비도 사라지고 건물의 외형도 깨끗하게 유지된다.
한옥 아파트는 수직적으로 구성된다. 아파트의 수직화는 고층과 다르다. 건물의 기능이 수직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옥 아파트의 저층부는 로비와 상점, 사무실 등 상업 공간이다. 중층부는 아파트이며 최상부, 즉 건물이 하늘과 만나는 부분에는 몇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제대로 된 한옥 지붕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므로, 아주 고급의 한옥 펜트하우스를 설치할 수 있다. 건물 전체를 지상으로부터 들어 올려진 대지로 보면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한옥이 되는 셈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한옥 카페나 레스토랑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만 이런 시설이 들어가라는 법은 없다. 최상층은 경관도 좋고 하늘이 열려 있으므로 상업 용도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아파트 주민들이나 외부인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조합 형태로 운영해 그 수익금을 관리비 등 자치적 용도에 사용할 수도 있다.
-필자 약력-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 건축과 졸업
예일대 건축대학원 졸업 △한국 미국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건축사
건축가협회 아천상 및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특선 등 수상
저서: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한옥이 돌아왔다’ 등
건축 작품: 열린책들 사옥(현재 시네마서비스 사옥·서울), 해냄출판사 사옥(서울), KS병원(서울), 가회헌(서울), 춘원당 한의원 및 박물관(공사 중·서울) 등과 서울 북촌의 한옥 작업 다수. 샛강 교량 및 한강 엘리베이터 등 서울시의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 중
현재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화여대 겸임교수
※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1070064
'사는 이야기 > [훔쳐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다른 나를 위한, 나의 두 번째 아파트 (0) | 2007.11.21 |
---|---|
맞춤형 아파트 (0) | 2007.11.21 |
1층의 혁명 (0) | 2007.11.21 |
S라인,댄싱 아파트 (0) | 2007.11.21 |
마당, 아파트로 들어오다 (0) | 2007.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