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조각가 최옥영

세칸 2007. 9. 16. 14:45

조각가 최옥영

 

 

나무냄새 풍기는 이 남자

거친나무, 소똥… 이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강원도 왕산조형연구소를 방문한다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옹이투성이의 거친나무와 소똥은 한사람의 손에 의해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강원도 토산품 판매장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진또배기(솟대)를 비롯한 20여종의 토산품의 창조주,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이기도 한 최옥영 조각가를 만나 보았다.

 

강원도 왕산골엔 특별한 사람이 있다!
Image_View개울이 있고, 대지가 있고, 병풍 같은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예술이 숨쉰다. 자연과 호흡하는 있는 그대로의 미학사랑. 햇볕에 함초롱 빛나는 나뭇잎과 마른 볏짚과 솔 향과의 나눔터. 그리고 그곳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나무냄새. 산과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왕산에서 햇빛도, 계곡의 물소리도 조각가 최옥영의 손길과 같이 어우러져 조각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맞다.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적당히 버무려진 그는 그래서 더 열정적인 조각가로 통한다.

 

 

 

 

 

 

 

나무, 흙, 쇠 - 자연과 늘 같은 호흡을 하기에
Image_View7년째 개천제를 열고 있는 왕산 아트센터 최옥영 작가. 89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한 후 왕산이 좋아 무작정 터를 튼 사람. 1988년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연 이래, 2000년 제11회 개인전 ‘未來傳說’을 서울 ‘아트스페이스’에서 열기까지 경향각지에서 개인전을 10회가 넘도록 연 열정적인 예술인. 그는 왕산이 좋아 왕산에 머무른 사람이다. 폐교를 빌려 작업을 하고 있던 그는 지난 수해 때문에 수많은 작품을 잃었다. 운동장의 그 많던 조각상들을 이젠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같은 분야의 유명한 예술가인 부인도 그때 처음 눈물을 비쳤단다. 왕산조형연구소와 왕산 홈페이지(www.wangsan.com)도 운영하는 열성파인 그는 그래도 여전히, 아니 더 바쁜 작업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강릉대 교수로 재직하며 각종 디자인과 조형물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에는 쉼이 없다. 살아 숨쉬며 호흡하는, 그래서 누구나 즐기며 향유하는 예술. 고통과 드나듦, 트임과 이어짐의 미학이 왕산에 있고, 강릉의 여기저기에 있다.

 


진또배기(솟대)를 한국 토산품으로 조형화
Image_View그가 강릉에 남긴 여러 예술품 중에는 솟대(일명 진또배기)가 있다. 원래 솟대는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세우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마을마다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가는 솟대를 예술적 조형물로 미니멀화 해낸 그는 타고난 문화운동가이기도 하다. 강릉을 찾는 외국인들이나 외지인들은 토산품판매장에서 한번쯤 그가 조형화 해낸 솟대와 만나기 마련이다. 그는 그 외에도 지역 토산품을 20여종이나 개발해낸 정열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문화운동가라는 별칭이 자연스럽기도 한 것이다. 土, 木, 水, 金. 그리고 人. 사람의 근원은 자연이라 얘기하는 그는 그래서 대지예술(Land Art)를 이야기한다. 대지예술이라, 생경하지만 어딘가 슬몃 곁눈이 가는 화두이기도 하다.

 

 

 


 

조각가는 조각으로 이야기하면 된다
Image_View그래서 요즘 조각가 최옥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새로이 해뜨는 정동진에 문화생태공간을 조성중인 것이다. 대지 그대로가 예술임을 입증해 보고 싶은 생각임에 분명하다. 진짜 Land Art가 생겨나는 모양이니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한다. 예술가의 집이며 조각이며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오솔길까지 전부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 담겨있단다. 어디 별유천지가 생겨나는 것인지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보다 자연과 교감하는 일이 예술가에겐 더 중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작가는 작품이면 그만인 것이지 예술가들끼리 그렇게 어울려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작품구상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고 한다. 경포호수의 3 · 1기념탑과 함효영의 노래시비와 나룻배 등 그의 예술작품은 곳곳에 오롯이 서 있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소설가는 소설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조각가는 조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조각의 결이 켜켜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그의 조각작품은 순수하게 자연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나무토막 그대로가 다른 토막과 엉겨 있거나 나무의 옹이가 그대로 삐죽이 불거져 있다. 투박함이 살아 숨쉬면서도 어딘가 따뜻한 느낌의 오브제. 그는 우리 고유의 미 · 선 · 덩어리를 섬기는 것이다. 그게 토장국 같은 우리네 풋풋한 정서임에 분명하다. 요즈음의 표현대로 환경친화적, 생태주의적 조각이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 즐겨 쓰던 도리깨며 지게, 호미자루 등등의 나무결과 같은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그래서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도록 극도의 정제미를 갖춘 작품. 물질과 형태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조형미가 아닌 자연미임을 강조하는 그의 예술세계가 입증되는 순간이다. 나무 속에서 자연스레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본래의 성상이나 모양을 귀히 여김으로써 생명존중의 정신을 느끼게 하는 그런 작품들로 그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겨울날 화롯가의 오래 빠알간 숯불처럼
장작불이 거칠고 투박하게 타오르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숯이 남는다. 그 숯불을 화로에 담으면 빠알간 불씨가 되어 겨울밤 방안을 수놓는다. 그 고운 빛깔은 누가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조각가 최옥영은 우리에게 아마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순간순간 형태가 변하면서도 내내 우리 곁을 자연 그대로의 냄새로 채워주고 있는 그 무엇. 눈 내리는 오늘도 조각가 최옥영은 화로 옆에서 산 그림자가 되어 졸고 있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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