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풍경 뻬로스트라이까

세칸 2007. 8. 25. 00:05

 

풍경 뻬로스트라이까

       

 

 

 

- 북악산 개방에 부쳐 -

 

뉴욕에도 도쿄에도 베이징에도 베를린,
모스끄바에도 없는 山
단 하루도 산을 못 보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오늘
싱싱한 산 한 채가
방금 채색한 覺皇殿처럼
사월 초순 첫 초록 재치고
솟아올랐네.

저 권부의 푸른 기와집 그늘에 가려
지난 반세기가 마음의 위도에서 사라졌던 자리에서
오늘 이제는 육성으로 이름 불러도 될
그대 백악이여,
금지된 빗금을 넘어 그대가
사람 만나러 내려올 때
솟아난 것은 한낱 돌덩어리가 아닌
우리네 마음의 넉넉한 포물선이었구나.

이렇게 풀어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홍련사에서 숙정문 지나
창의문에 이른 길 따라,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아무나 그 문들 활짝 열어
그대 슬하에 감추인 말바위며 촛대바위를
순우리말로 되찾아오네.
하여 차출된 팔도 머슴애들의 사투리를
잘 짜 맞춘 성곽이
산허리를 재봉틀질한 것 같은
역사의 긴 문장이 되고
그 쉼표마다 돌아서 내쉰 한숨이
이렇듯 위업이 되었음에랴, 하지만,
이렇듯 풀과 꽃과 나비가 되돌아온 자리에
제 빛깔과 향기와 이름을 되물려 주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한 위업이 있을까!

아, 이제 가물면 北門을 열어주고
물 넘치면 그 문 닫아둘 수 있는 산,
동네 처자들 숙정문 세 번 가면
안 되는 사랑도 이루어진다는 그 소문난 산,
파리에도 런던에도 하노이, 시드니에도 없는 산,
봄비 그치고 송진처럼 물방을 맺힌 나뭇가지 사이로
마침내 사람 눈을 만난 북악산
그 언저리 허공 어디쯤
붉은 落款 한 점 꾸욱 눌러두고 싶네

 

                     2007년 4월 5일
                     황  지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