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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의 멋과 운치

세칸 2007. 8. 23. 11:40

바람따라 흐르던 조선 선비들의 멋과 운치

 

 

풍류風流, 얼핏 생각하면 그저 먹고 노니는 일이 연상되는 말이다. 물자는 풍성하고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쉬이 갈 수 있는 세상이니 풍류가 풍요할 만도 한데,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막상 무언가 할라치면 또 딱히 할 게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 기껏 영화를 보거나 지인을 만나 술을 마시는 일이 전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풍류風流’라는 말은 여간해선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보길도 세연정의 동척선실(사적 제368호)

 

  

풍류는 선비의 가장 좋은 짝이어라

풍류의 사전적 의미란 ‘속되지 않고 운치가 있는 일, 풍치를 찾아 멋스럽게 노니는 일’을 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노는 것이 멋스럽고 풍치가 있다는 것일까. 지난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풍류라는 단어의 주인격은 단연 선비이다. 어느 사극에서 봤음직한, 푸른 도포 자락에 챙 넓은 갓을 쓴 선비가 큰 부채를 펼쳐 들고, 해를 가리며 자연을 찬탄하는 시조 한 자락 읊조리는 광경을 떠올린다면 얼추 비슷하겠다. 바쁜 현대에서는 활동성을 이유로 간소화해버린 긴 옷자락과 소맷자락은 고아하고 기품 있는 정취를 내뿜으니, 곱게 다려낸 옷깃을 펄럭이며 느릿한 걸음으로 자연을 음미하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풍류라는 것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자연에 심취한 선비들의 풍류 - 담양 가사문학지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보길도 세연정의 동척선실(사적 제368호)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교과서에서 보았을 이 시조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순(1493~1582)이 만년에 면앙정을 두고 읊은 것이다. 면앙이란, 송순이 고향인 담양에 내려가 지은 정자이면서 그 자신의 호이기도 하다.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너르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 마음이 반영된 이름이라 한다. 만년에 고향 땅에 은거하며 세 칸의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한 칸에는 자신이, 다른 두 칸에는 각각 달과 청풍을 들이고 보니 강과 산은 더 이상 들일 자리가 없어 집 주변으로 둘러 두었다는 송순의 정취는, ‘멋스럽고 풍치 있는'의 뜻을 가진 풍류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와 같이 옛 선비들에게는 수양과 학문에 매진하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가꿔내는 일 또한 중요하였으니 그를 위한 장소로 정자나 별서를 꾸미는 일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위의 면앙정을 비롯해 조선 중종 때 선비였던 양산보(1503~1557)가 삼십대부터 말년까지 꾸준히 꾸며, 조선시대 양반이 가꾼 최고의 정원 건축으로 평가받는 소쇄원과 주변의 명옥헌, 송강정, 식영정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나같이 수려하고 한산한 자연 속에 자리 잡아 일명 정자 문화권을 이룬 이들 정자와 별서들은 유유자적한 선비들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어, 송순을 비롯해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박순 등의 이름난 문인들로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 중 소쇄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양산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별서정원으로 자연 안에서 글과 그림으로 그 자신을 음미하려는 선비의 여유로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쇄원은 멀리 무등산을 마주 보고 장원봉과 까치봉을 잇는 산줄기를 업고 있는데, 그곳으로 가기 위해 찻길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시원한 대나무숲이 펼쳐진다. 대숲 사이에서 이는 청명한 바람과 어디선가 들리는 계곡물 소리에 귀를 씻으며 걷다보면, 왼편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정자인 대봉대를 만나게 된다. 대봉대 뒤로는 바위 사이사이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나무대롱을 따라 들어온 물이 연못을 이루고, 굽이쳐 떨어지는 아담한 폭포 건너편엔 선비들이 자연에 겨운 시정을 쏟아냈을 법한 광풍각과 제월당이 비탈을 따라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숲과 산비탈로 폭 감싸 안겼으면서도, 안으로는 공간이 확 트여 광풍각이나 제월당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이름대로 소쇄하면서도, 산뜻하고 깨끗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유독 해가 잘 드는 담장이라는 애양단을 따라 오르면 그 담이 ㄱ자로 꺾여 오곡문을 이루는데, 오곡문은 담장이 개울을 가로지르도록 담 아래로 판석을 쌓아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냇물이 막히지 않도록 만든 것으로, 정원에 대한 양산보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런 정원에 글 잘 하는 문인들끼리 마주 앉아 물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있다 보면, 아름다운 시상이 곧잘 떠올랐을 법 하니 호남 제일의 가단을 이루었다는 이곳의 명성이 무색치 않다.

 

                                                                      보길도 - 세연정(사적 제 368호)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구나

 두어라 이 다섯이면 그만이지 또 더하여 무엇하리

 

 

안빈락도의 삶을 찾아 - 보길도 부용동 
조선시대의 문예와 풍류로 치자면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유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선도는 병자호란이 터지자 왕을 돕기 위해 집안 사람들과 노복 수백 명을 배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다. 도중에 강화도가 함락되고 왕이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치욕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다시는 세상 꼴 안보겠다고 뱃길을 돌려 제주도를 향해 떠났다. 제주로 가던 윤선도는 중간에 보길도에 들르게 된다. 보길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한 윤선도는 제주도가 아닌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을 한다. 이에 부용동 정원을 지어 섬 전체에 그 자신만의 낙원을 건립했다. 윤선도는 섬 구석구석을 살펴 딱 알맞은 곳에 집과 정자를 놓고 연못을 파고 정원수를 심어,  낙서재와 세연정, 동천석실 등 살림과 공부, 놀이의 공간을 꾸미고, 때론 제자를 가르치며 때론 시가를 지으며 생활했다. 윤선도의 후손 중 누군가가 지은 『가장유사家藏遺事』에 보면,  그의 보길도 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산은 낙서재에서 아침이면 닭 울음 소리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후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후 네 바퀴 달린 수레를 타고 악공들을 거느리고 석실이나 세연정에 나가 자연과 벗하며 놀았다. 술과 안주를 충분히 싣고 고산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세연정에 이르면 연못에 조그만 배를 띄워 아름운 미희들을 줄지어 앉혀 놓고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게 하면서 찬란한 빛깔의 옷과 어여쁜 얼굴이 물위에 비치는 것을 감상했다. 때로는 정자 위로 악공들을 불러 올려 풍악을 울리게 했다.”


위 글을 보면,  자연 속에서 음악을 즐기며 미희들의 어여쁜 모습이 물속에 비치는 것을 감상하였다 하니 풍류를 탐하는 윤선도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곳에서의 그의 삶은 말그대로 안빈락도의 표본이었다. 세상 추한 꼴을 피해 그만의 낙원 속에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생을 보낸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를 비롯해 많은 시와 저서를 남겼다. 오우가에 등장하는 그의 다섯 벗들은 물, 돌, 대나무, 소나무, 달이다. 그와 자연의 교감이 한껏 느껴지는 연유를 보길도에 들르면 쉬이 알 수 있음이라.

 

                                                                                           신윤복 (선유도)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구나

두어라 이 다섯이면 그만이지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서리 맑다하나 그칠때가 하도 많다

좋고도 그칠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빨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다가 누르는가

아마도 변치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피우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竹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곱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문화재청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