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용추계곡에 있는 물안골 생태건축현장에서 자연과 더불어 순응하는 삶을 살고자하는 털보 아저씨를 찾았다. 11월도 벌써 중순에 다다랐지만 아침 햇살만은 따스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두 번째 여행학교를 열기위해 가평으로 떠나는 날이다. 가평군청에서 먼저 도착한 회원들과 합류하여 가평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용추계곡을 향했다. 전국의 모든 유원지들이 그렇듯이 울퉁불퉁한 계곡 길을 따라 깊숙이 이어진 물안골까지 간판들과 식당, 난개발로 조성된 각종 숙박업소(Pension)들이 난립해 오지의 산속을 현란하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물안골은 도시와 그리 멀지 않은 가평의 명산 명지산 남동쪽 옥녀봉아래의 옛 화전민 터로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며 사방이 숲으로 둘러쳐진 양지바른 곳이다. 비탈진 언덕에 올라서니 허름한 농가주택 앞에 비닐하우스가 놓여져 있고, 그 뒤쪽 2천6백여 평의 땅엔 일곱채의 짓다만 흙집들이 미로같이 숨겨져 주인장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장은 턱수염이 보기 좋게 난 김기헌님(51세)으로 오늘 우리일행 중 살풀이 춤꾼의 방문에 모처럼 아내를 살짝 불렀다고 했다. 우선 황토를 이용해 흙집을 짓는 재료 중 마무리에 쓰이는 황토미장에 대한 견본재료들을 벽돌위에 칠해 실험하고 있는 견본들을 일일이 보여주면서 방수와 발수 기능의 실험과정들을 설명해 주었다. 이는 황토건축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매우 부족한 우리의 실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연히 흙집 짓는 기간이 오래 걸림을 암시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건축자체가 목적인 듯 집을 짓지만 김기헌님은 생태적 삶의 과정으로서 건축을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자본의 증식수단으로 여겨 온 나라가 택지개발의 열풍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토지이용방식과는 달리 집을 위해 땅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주인장의 의지가 들어간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짓는 흙집’은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시공하는 건축물들로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들어갔다. 주인장은 국내에 소개된 스트로우 베일 건축은 잘 건조되지 않은 건초가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가평에 대하여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평은 잣나무가 대표적인 나무로 일컬어지며 그의 부산물인 잣으로 그동안의 경제를 일구어 왔음을 주변의 산들이 온통 잣나무들로 뒤덮인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잣은 대륙을 거쳐 조선시대에 가평에서 본격적인 적응실험을 거쳐 길러지게 됐는데 일제 때 그들이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더욱 장려했던 모양이다.
애초 점심식사는 가평시내에서 먹고 들어오려 했으나 그의 아내 손길로 물안골이 지어낸 자연밥상을 가평의 잣 막걸리와 더불어 맛있게 나누며 물안골이 생각하는 집짓기 현장에서 19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자행했던 시멘트 일색의 건축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공업화, 규격화된 건축자재들이 지금은 오로지 자본축적에만 혈안이 되어 발암성 물질이나 환경호르몬까지 방출하는 지극히 위험한 사회를 만들었다. 광복이후 생활에 기본이 되는 의, 식, 주는 근본을 잃고 급속한 죽임의 문화로 옮아가 몸과 마음, 정신까지도 깊은 병에 빠져들게 하였다. 이에 환경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전통의 맥을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물안골을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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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형을 이루고 있는 한옥에는 서까래와 서까래가 서로 맞물려 자연상태에서 안정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
ⓒ www.naturei.net 2006-11-22 [ 류기석 ] |
| | 무조건 형태만을 흙과 나무, 돌로 건축의 외형을 꾸몄다고 생태적인 삶은 아니다. 마음과 정신까지도 도시문화를 접고 전원생활을 넘어 원초적인 농촌, 농업을 귀하게 여기는 귀농(貴農)을 실천할 때만이 진정한 생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들이 바로서는 개인이 소중한 미래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은 각자에게 알맞은 달란트를 찾아 독립된 영역을 이루고 공동체는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다양한 문화로 엮어져 네트워크화 되는 순간 모든 속임수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현장 ‘골짜기문화’이다.
김기헌님은 집만을 짓기 위해 가평의 자연으로 들어온 귀곡(歸曲)이 아니라 뭔가 남다른 생각이 작용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75년 봄 한때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는 80년대 줄곧 세상을 등지고 산에 올라가 기(氣)를 수련하다가 사람이 그리워 산에서 내려와 인테리어와 목수일 등을 전전하면서 틈틈이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단체 활동을 통해 생태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안골은 7년 전 우여곡절을 겪은 후 인연이 되어 경제성과 효율성을 떠난 흙집을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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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님 부부의 거주공간이 될 육각형 집을 세세히 들러 보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 www.naturei.net 2006-11-22 [ 류기석 ] |
| |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한 단순한 집이 아니라 몸과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흙집으로 2002년부터 흙을 주제로 다양한 건축기법을 동원해 일곱 채의 흙집을 동시에 짓기 시작하여 아직도 마무리공사단계로 2007년께나 완공되겠다. 흙과 나무, 돌을 주된 건축 재료로 사용하고 외벽과 장판을 흙 페인트로 마감하는 소재연구와 구들을 물안골에서 나오는 자연석인 흙 운모로 놓고 개자리를 불에 구운 빨간 벽돌을 사용했다. 특이한 것은 개별 굴뚝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덥혀진 뜨거운 공기가 완전히 S자로 리턴 순환하고 난 후 미세한 미열이 빠져나가도록 고안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의 생태건축현장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책을 통하여 연구하면서 미진한 부분이 있어 직접 영국으로 건너가 흙과 짚으로 도자기를 굽듯이 흙으로만 만든 콥 하우스(Cob House)를 유심히 살피고 돌아와 각각의 벽체에 적용했다. 앞쪽에는 육각형 모양의 목조가옥으로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벌집형태로 중앙상단에 받침이 없어도 힘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서까래와 서까래를 한곳에 짜 맞추어 돋보였다. 상부 못을 지지대로 한 흙메우기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멋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흙집으로서 육체적인 건강뿐 아리라 공간에 흐르는 기운도 좋았다.
명상공간으로 쓸 둥근 흙집 두 채는 영국식의 콥(Cob) 건축기법을 동원해 긴 짚을 그대로 흙과 섞어 자유로운 벽을 만들고 벌집의 밀랍을 녹여 얇게 흙벽을 마감했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 목 구조물과 온돌을 가미하여 흙집의 운치를 더했다. 어느 곳을 가든 흙과 나무, 돌이 벽채를 이루는 기본이 되면서 천정은 저마다 다르게 만들었다. 어떤 천정은 뻥 뚫려 있어 쪽빛의 하늘이 나뭇가지와 함께 머물러 있다. 저마다의 지붕은 흙을 덮어 화초를 키울 요량으로 방수에 신경을 써서인지 합성재로 초록색 코팅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기와와 소나무로 만든 너와를 얹었다. 맨 위쪽에 있는 흙집에는 벌써 잡초들이 지붕을 덮고 있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흙 건축기법 중 콥 하우스(Cob House)란? 흙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반죽하여 숙성시키고, 기다란 짚을 원형대로 사용하며 흙과 반죽하여 하루정도 숙성한다. 짚은 부패 가능성이 있기에 되도록이면 빨리 이용하고 흙의 찰기를 위해 발로 오랜 시간 밟아 준다. 이것을 다시 손으로 다져 벽체에 적당한 크기로 만드는 동안에 찰기가 생겨 강한 흙이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공법은 춥고 다습한 영국식 건축기법으로 5백년 이상을 견딘다고 한다. 흙벽돌은 하나같이 견고하고 오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흙과 짚을 많이 필요로 하고 벽체를 형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끈기가 따르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 흠이다.
중앙부에 있는 흙집 한 채는 장작나무 사이에 흙을 쌓아 올린 토막집(Cut-Wood House)을 짓고 있었다. 그는 흙 사이에 분쇄된 톱밥을 넣어 단열을 보강했다고 하면서 이러한 건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의미가 깊을 것이라 하면서 아울러 해충을 예방하고 썩음을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을 시공했다는 분이 함께했는데 이곳 방안의 기운이 제일 좋다고 귀 뜸했다.
그는 자신의 흙집 하나하나를 돌며 자세한 과정들을 담아 이야기를 해주고는 마지막으로 30평 샌드위치 판넬 속에 숨어있는 꿈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무용연습공간이란다. 그리고 자신의 집터 왼쪽계곡에 폐수정화용 연못을 멋지게 꾸미고 있음도 덧붙였다. 온통 바위투성이인 이곳엔 길이 없고 전기와 화장실, 샤워실도 각방마다 만들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을 통해서만 기운을 받고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다는 주인장의 배려(?)인 것이다.
현장체험을 마치고 둥그렇게 통나무 탁자에 둘러않아 그에 삶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어보았다. 그는 순응하는 것을 배우려고 왔으며 더불어 흘러가는 삶에서 희망을 짓기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늘 기(氣)에 대한 관심이 많아 청년시절 춤을 많이 접하고 동물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있어 창경궁(당시 일제강점기 때 쓰인 창경원을 지칭함)에 자주 들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몸에 관심이 많다. 몸 중에서도 요즘 관심이 많은 것은 주천(周天)으로 기를 돌리는 방법이다.”라며 집짓기와 마음수행이 관계가 있음을 암시했다. 주천이란 인간의 머리 속에 위치하고 있는 상단전(上丹田)을 말하는 것이며, 정(精)이 상단전(上丹田)을 관통해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주천(周天)으로 말미암아 인간(人間)의 정신(精神)과 육체(六體)가 새롭게 계발(啓發)되는 것이다. 주천(周天)을 행하는 것은 에너지를 고갈하는 순행(順行)의 길을 걷기 보다는, 오히려 에너지를 더 만들어 내어 활력(活力)적인 생활(生活)을 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다. “어린시절 한 스님을 알게 되어 회(氣循環)를 열어주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요즘 침도 배운다.”면서 나름의 관심을 풀어주었다.
어떤 목적으로 흙집을 짓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생태교육공간은 많이 있으므로 이곳은 어른들을 위한 생태교육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라고 밝혔다. 코앞에 완공을 앞둔 물안골 다양한 생태건축의 모델이 앞으로 가평 용추계곡의 자연생태공원화와 맞물리면 좋을 것이다. 그의 꿈은 “2년 전부터 30호 정도의 문화적 자립이 가능한 마을을 가평에서 준비하고 있다”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는 집이 목표가 아니고 집속에 사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함을 덧붙였다. “몸에 대한 관심과 잔재주가 있다.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하는 휴양소와 그림에서나 나오는 집을 흙으로 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흙집을 원한다.”
또한 “한국 흙 건축은 분석적, 체계화 되지 못했다. 앞으로 흙집 짓는 노하우를 기계적으로 조화롭게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빠르고, 쉽게, 경제적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말이다. 현재는 비 규격화 재료로 인건비가 높다. 기계화하면 특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것이 향후 생태건축의 흐름이다.”
이는 “현재 주택의 나쁜 기운과 우리들이 공유하기 때문에 몸이 계속 나빠진다. 왜곡된 기운이 문제이다. 향후 생태건축은 대세다. 생태건축은 생존 때문에 나타났다. 흙과 나무, 돌로만 집을 짓겠다. 생각했는데 흙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함께했던 분들과 공유했던 이야기는 건축의 주요한 부분은 굴뚝에 있으며 구들문화는 한반도의 문화로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앞으로의 시멘트건축은 문제가 될 것임을 공감하면서 생태건축은 공간만 제한하여 이야기해서는 안 되며 서양의 발코니가 대화의 공간인 것처럼 동양의 건축에도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나고 자리매김 되어 종합적 예술로서 승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정한 용추계곡을 돌아 나오면서 물안골 생태건축물들이 생태적으로 인간의 몸에 좋은 친환경소재들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단순 소박한 삶이나 순환원리로 지역성과 경제성면에서는 대단히 취약한 구조임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안골 생태건축현장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고 있어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흙집 건축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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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 건축에 쓰일 목재들에는 못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내어 서로 맞물린다. |
ⓒ www.naturei.net 2006-11-22 [ 류기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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