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기르는 비결
정치와 교육에 대하여...
한양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정민교수
나는 무언가 한 가지 일에 미쳐, 그 일로 세상 보는 안목이 툭 트인 사람이 제일 무섭다. 세상 이치 다를 게 하나 없다. 이것저것 찝적거리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깨달음의 진경(眞境)을 맛볼 수가 없다.
당나라 때 유종원이 지은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이란 글이 있다. 곽탁타는 등이 굽은 곱사등이다. 그의 직업은 정원사다. 탁타(?駝)는 혹 난 낙타다. 그의 등에 낙타의 혹 같은 것이 돋았으므로 사람들이 골려 부른 이름이다. 그는 나무를 참 잘 가꾸었다. 나무를 옮겨 심어도 결코 죽는 법이 없고, 잎은 늘 무성했다. 열매도 다른 나무보다 일찍 맺었다. 게다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와 같은 솜씨를 지닌 정원사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곽탁타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그는 대답한다. “저는 아무 것도 안 해요. 그저 나무가 하고 싶은대로 놓아둘 뿐입니다. 가지는 제 뻗고 싶은 대로 뻗게 도와주고, 흙으로 북돋울 때는 다만 고르게 해줍니다. 옮겨 심을 때도 흙은 원래 제 흙을 그대로 쓰지요. 또 뿌리 사이를 촘촘히 다져줍니다. 그렇게 해주고 나서는 아예 내다버린 물건처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저대로 크게 놓아둡니다. 그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반대로 해요. 뿌리를 억지로 한데 모아 심고, 흙도 기름진 새 흙으로 바꿉니다. 흙을 너무 돋우거나 아니면 덜 돋우지요. 그들은 나무를 너무 아낀 나머지 매일 그 앞에 와서 삽니다. 멀쩡한 나무를 자꾸 만지고, 심지어는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 살았나죽었나 시험해 보기도 합니다. 공연히 나무 뿌리를 흔들어보아 뿌리가 잘 내렸는지 살피기까지 합니다. 나무를 아끼고 사랑해서 한 일이 나무에게는 치명적인 해독이 되지요.”
비결을 물은 이가 손뼉을 치며 말한다. “그 말이 참 근사합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곽탁타가 대답한다. “저 같이 나무나 키우는 놈이 백성 다스리는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예전에 제 고향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을 원님이 백성들에게 이런 저런 명을 내리기를 참 좋아했지요. 그는 백성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툭하면 새로운 명령을 내렸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이 때문에 더 죽을 맛이 되었습니다. 놓아두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밭 갈아라, 서둘러 심어라, 어서 거둬라, 옷감을 빨리 짜라, 걸핏하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나중에는 백성들이 다 지쳐 떨어져서 병자와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었던 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 참으로 훌륭합니다. 나는 나무 가꾸는 방법을 물었을 뿐인데, 당신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는 군요. 글로 써서 후세의 관리들에게 경계로 남기렵니다.” 그래서 지은 글이 바로 〈종수곽탁타전〉이다.
곽탁타의 나무 기르는 비결을 조금 더 음미해 보자.
첫째, 뿌리를 억지로 모으지 않고 원래대로 둔다. 뿌리는 줄기로 양분을 올리기 위해 최적의 상태로 얼키설키 촉수를 뻗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기 좋게 뿌리를 하나로 모아 심는다. 보기 싫다고 잔 뿌리를 잘라내, 뿌리의 방향이 한 곳으로만 흘러 영양 섭취에 문제가 생긴다.
둘째, 옮겨 심더라도 원 뿌리의 흙을 바꾸지 않는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나무의 생존을 위협한다. 뿌리를 감싸고 있던 원래 흙은 나무의 생존에 적정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옥한 흙으로 바꿔주면 더 잘 자랄 줄 알고, 원래 흙을 털어내고 거름을 듬뿍 넣은 새 흙으로 바꿔준다. 공급되는 영양이 너무 과다해서 나무는 저항력을 잃고 허약해진다.
셋째, 옮겨 심은 나무는 흙을 알맞게 북돋워 근기를 보태주고, 뿌리 사이에 성근 부분이 없도록 촘촘히 다져준다. 즉 바탕을 든든히 다져줄 뿐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흙을 너무 두텁게 돋우면 나무가 숨이 막히고, 너무 얕으면 외풍에 쉬 상한다. 뿌리 사이에 성근 부분이 있으면 바람이 들고 벌레가 먹어 썩는다.
넷째, 자리 잡은 나무는 저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둔다.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력을 기르게 지켜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고 와서 살펴보고, 잎이 안 나오면 죽었나 싶어 생가지를 분질러보기도 한다. 공연히 뿌리를 들썩거리고, 심하면 아예 파보기까지 한다. 그래서 힘겹게 새 환경에 적응해 가던 나무에 다시 치명상을 입힌다.
그리고 보니 어설픈 정원사들이 하는 짓이 꼭 요즘 부모가 자식들을 위한다며 하는 행동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은 아무 것도 못하게 하고, 오직 공부만 하라고 학원과 과외로 내몬다. 좋은 학군을 찾아 위장전입도 마다 않고 급격히 환경을 바꾸지만, 아이들이 어리둥절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생각지 않는다. 더 비싼 과외를 시키고, 더 좋은 학원에 보내면 성적도 저절로 오를 줄로 믿는다. 기본기를 다져줄 생각은 않고, 우선에 성적 올릴 궁리만 한다. 예상 문제를 적중시켜 내신 성적이 오르는 것만 따질 뿐, 아이들의 독서 능력이나 사고 능력을 길러줄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런 것은 원래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틈만 나면 간섭하고, 싫다는 일 강요하고, 성적이 안 오른다고 멀쩡히 잘 다니던 학원을 마음대로 바꿔 버린다.
이런 간섭을 많이 할수록 나는 자식에게 정성을 쏟는 훌륭한 부모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아이들 좀 그만 볶으라고 하면, 그저 내버려 두면 얘들이 공부를 하느냐고, 무책임한 말 좀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지극 정성을 쏟았건만 어쩐 일인지 자식의 성적은 좋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자꾸 시들시들해진다. 자식이 반항하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것도 몰라준다며 눈물을 비추며 서운해 한다. 꼭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결과적으로 백성을 들들 볶은 원님 꼴이다. 그 백성들은 끝없는 요구에 지쳐 결국 병자와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렸다. 내 자식들도 혹 그렇게 될까 걱정스럽다. 옛날 당나라 때 어떤 정원사의 나무 기르는 비결에서 나는 오늘날 교육을 바라보는 진단과 처방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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