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낚시, 그들은 왜 빠져드나]
- ‘찌맛’‘손맛’은 물론 기다림까지 즐긴다
“후회는 없다. 다시 못 가 힘들 뿐”
겨울 추자도에서 대형 돔 한 마리를 낚기 위해 거친 파도와 싸우고 있는 꾼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가을이면 플라이낚싯대를 챙겨 들고 몽골로 간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800㎞ 떨어진 홉스골 호수가 목적지다. 바쁜 일정 때문에 때로는 헬기도 동원된다. 10년 전 구 회장은 청년시절부터 즐기던 낚시를 작파했다. 주변 꾼들에게 애지중지하던 장비를 나눠주고 몰입한 것은 새. 집무실에 한강 밤섬 철새 관찰용 망원경을 들였고, 새에 관한 책도 썼다. 하지만 끝내 낚시의 마력을 떨치지 못했고, 돌아왔다.
붕어낚시대회에 몰려든 인파. 전국 규모의 대회에는 최고 4000명까지 참가하기도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상당수가 겨울에 바다낚시를 즐긴다. ‘낚시 도시’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는 스토브리그 일정에 아예 낚시를 끼워 넣었다. 그러나 투수들은 어깨 보호 문제로 ‘바닷바람 쐬지 말라’고 주의를 받는다. 효과는 별로 없다. 투수 정민태는 “바다가 그리워지면 못 배긴다. 홈런을 맞은 날 쓴 기억을 지우는 데도 최고”라고 말한다. 특히 사격선수들은 낚시가 훈련 과정의 하나다. 전 국가대표 사격팀 변경수 감독은 “집중력 강화와 마인드컨트롤에 낚시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제주 북쪽 50㎞ 해상의 추자도. 망망대해에 38개의 섬이 모인 이 군도(群島)는 겨울 감성돔 낚시의 명소다. 일본·대만·홍콩에서도 원정 온다. 해마다 이맘때, 그러니까 11월 하순이면 갑자기 부산해진다. 낚시객을 맞느라 낚싯배 선장과 민박 주인이 바쁘고, 다방과 술집에는 육지에서 ‘아가씨’들이 충원된다. 꾼들이 머무는 기간은 3~5일, 비용은 100만원 정도다. 직장인은 큰맘 먹고 휴가내지 않는 한 오기 힘들다. 이를 위해 ‘추자계’를 드는 사람도 많다. 이 섬에 아예 집을 사놓고 겨울마다 찾는 이도 있다. 전국의 낚시인이 모여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비서진을 대동한 기업 회장도 있다. 연예인으로는 이용식·이하늘, 야구선수 정민태·송진우·박정태 등이 추자를 즐겨 찾는 바다낚시광이다.
구본무 / 이덕화 / 허재 / 이승만 / 최무룡 / 정민태 / 오기택
로빈슨 크루소처럼 바람 부는 무인도에 텐트를 치기도 한다.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의 가수 오기택씨가 그렇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맘껏 낚시를 했고, 대개 15~20일을 머무르는 장박야영형이었다. 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겨울 무인도의 가파른 갯바위를 산양처럼 오르내렸다. 결국 1996년 추자군도 염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지금까지 외롭게 투병하고 있다. 그는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만 바다로 다시 가지 못해 가슴 아플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낚시인은 “내가 죽으면 유해를 바다에 뿌려 달라”고 유언한다. 낚싯대 제조업체 신신산업의 홍완 사장, 평생 다른 직업은 가져본 적 없는 프로낚시인 박창수씨가 조우(釣友)들의 애도 속에 바다에서 영면했다. 그들은 대양을 떠도는 알락돌고래가 되어 지금도 끊임없이 고기를 찾아 헤맨다. 모든 가치가 생산성 하나로 저울질되는 현대에 살아남은 비생산적 무리다.
허만갑 낚시춘추 편집장, 사진 = 월간 낚시춘추 및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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