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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맛’‘손맛’은 물론 기다림까지 즐긴다

세칸 2008. 1. 8. 00:06
[낚시, 그들은 왜 빠져드나]
 
‘찌맛’‘손맛’은 물론 기다림까지 즐긴다

 

“후회는 없다. 다시 못 가 힘들 뿐”

 
낚시꾼이 아닌 사람들은 궁금하다. 무엇이 ‘꾼’들을 그토록 미치고 빠져들게 만드는지. 종일 혹은 온 밤 내내 웅크리고 앉아 말뚝처럼 꼼짝 않는 찌들을 지켜보는 이유와 정열의 원천은 뭔지. 집채만한 파도에 쓸려갈 듯 위험해 보이기 짝이 없는 갯바위에서 왜 이리저리 뛰는지. 혹한 속 얼음에 구멍 뚫어놓고 손 불어가며 버티는 ‘미친 짓’은 왜 하는 건지. 그러다가 한 마리 올리면 세상이라도 얻은 듯 기뻐하는 그 희열의 정체는 뭔지. 대체 낚시엔 어떤 마력이 있기에 그들의 영혼을 그렇게 흠뻑 빨아들이는 것인지.
 

겨울 추자도에서 대형 돔 한 마리를 낚기 위해 거친 파도와 싸우고 있는 꾼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가을이면 플라이낚싯대를 챙겨 들고 몽골로 간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800㎞ 떨어진 홉스골 호수가 목적지다. 바쁜 일정 때문에 때로는 헬기도 동원된다. 10년 전 구 회장은 청년시절부터 즐기던 낚시를 작파했다. 주변 꾼들에게 애지중지하던 장비를 나눠주고 몰입한 것은 새. 집무실에 한강 밤섬 철새 관찰용 망원경을 들였고, 새에 관한 책도 썼다. 하지만 끝내 낚시의 마력을 떨치지 못했고, 돌아왔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 새벽, 방한복으로 무장한 낚시꾼이 붕어 채비를 드리우고 있다.  

 
아버지 이예춘씨 옆에서 잉어밥 만드는 심부름을 하다가 낚시 유전자를 내림 받은 영화배우 이덕화, 한 번 낚싯대를 잡으면 2~3일씩 집중하는 농구감독 허재, 좀 거슬러 올라가면 찌를 쳐다보다가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다는 이승만 대통령, 외국으로 가면 암살 위협 속에서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을 옆에 세운 채 낚시를 즐긴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 솜씨는 별로지만 외국 정상과 만날 때에도 낚시터로 안내하는 아들 부시, 또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역시 ‘낚시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영화배우 최민수씨 아버지인 고 최무룡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85년에 국내 유일의 낚시영화 ‘덫’을 만들었다.(‘섬’은 낚시터만 무대로 했을 뿐 낚시 영화가 아니다.) 각본·감독·주연을 도맡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거대한 저립(한국 연안에 출몰하는 대형 참치의 일종)을 추적해온 주인공이 마침내 녀석을 생포하는 장면이다. 그냥 한 마리 사서 연출해도 될 것을 ‘직접 낚는 생생한 장면이 필요하다’고 우겼고, 추격 1주일 만에 결국 잡아냈다. 흥행은 참패였지만, 그는 낚시 열정을 필름으로 남기고 싶었다.
 

붕어낚시대회에 몰려든 인파. 전국 규모의 대회에는 최고 4000명까지 참가하기도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상당수가 겨울에 바다낚시를 즐긴다. ‘낚시 도시’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는 스토브리그 일정에 아예 낚시를 끼워 넣었다. 그러나 투수들은 어깨 보호 문제로 ‘바닷바람 쐬지 말라’고 주의를 받는다. 효과는 별로 없다. 투수 정민태는 “바다가 그리워지면 못 배긴다. 홈런을 맞은 날 쓴 기억을 지우는 데도 최고”라고 말한다. 특히 사격선수들은 낚시가 훈련 과정의 하나다. 전 국가대표 사격팀 변경수 감독은 “집중력 강화와 마인드컨트롤에 낚시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제주 북쪽 50㎞ 해상의 추자도. 망망대해에 38개의 섬이 모인 이 군도(群島)는 겨울 감성돔 낚시의 명소다. 일본·대만·홍콩에서도 원정 온다. 해마다 이맘때, 그러니까 11월 하순이면 갑자기 부산해진다. 낚시객을 맞느라 낚싯배 선장과 민박 주인이 바쁘고, 다방과 술집에는 육지에서 ‘아가씨’들이 충원된다. 꾼들이 머무는 기간은 3~5일, 비용은 100만원 정도다. 직장인은 큰맘 먹고 휴가내지 않는 한 오기 힘들다. 이를 위해 ‘추자계’를 드는 사람도 많다. 이 섬에 아예 집을 사놓고 겨울마다 찾는 이도 있다. 전국의 낚시인이 모여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비서진을 대동한 기업 회장도 있다. 연예인으로는 이용식·이하늘, 야구선수 정민태·송진우·박정태 등이 추자를 즐겨 찾는 바다낚시광이다.

 

 구본무 / 이덕화 / 허재 / 이승만 / 최무룡 / 정민태 / 오기택


로빈슨 크루소처럼 바람 부는 무인도에 텐트를 치기도 한다.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의 가수 오기택씨가 그렇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맘껏 낚시를 했고, 대개 15~20일을 머무르는 장박야영형이었다. 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겨울 무인도의 가파른 갯바위를 산양처럼 오르내렸다. 결국 1996년 추자군도 염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지금까지 외롭게 투병하고 있다. 그는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만 바다로 다시 가지 못해 가슴 아플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낚시인은 “내가 죽으면 유해를 바다에 뿌려 달라”고 유언한다. 낚싯대 제조업체 신신산업의 홍완 사장, 평생 다른 직업은 가져본 적 없는 프로낚시인 박창수씨가 조우(釣友)들의 애도 속에 바다에서 영면했다. 그들은 대양을 떠도는 알락돌고래가 되어 지금도 끊임없이 고기를 찾아 헤맨다. 모든 가치가 생산성 하나로 저울질되는 현대에 살아남은 비생산적 무리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면 꾼들은 우스갯소리를 해준다. ‘여성 편력은 도박을 가르치면 해결되고, 도박은 마약을 배우게 하면 해결되고, 마약 환자는 낚시를 가르쳐 주면 끊는다. 그런데 한 번 낚시꾼이 되면 방법이 없다’고. 누가 꾼이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대물림이 잦은 것을 보면 유전자 정보에는 포함된 모양이다.
 
우리나라 낚시인구는 20년 전인 1988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325만명으로 추산된 바 있다. 이후 등산·골프 같은 취미의 다양화로 다소 줄어 현재는 민물과 바다 포함 250만명 정도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장창락 낚시칼럼니스트 doubledice@hanmail.net
허만갑 낚시춘추 편집장, 사진 =  월간 낚시춘추 및 조선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