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삼국시대의 나무 문

세칸 2008. 1. 6. 23:22

삼국시대의 나무 문

 

 

사전(辭典)은, 장소간의 경계나 건축물의 입구 또는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門’으로 정의한다. 문의 역사는 인류가 건축을 하기 전 구석기시대에 동굴이나 천막생활을 하면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때는 출입을 위한 개구부(開口部)로서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 들어 움집이나마 건축행위가 이루어지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문의 개념은 출입과 채광을 위한 시설로 발전했다. 고대의 문중 가장 흔한 것이 나무문이었음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나무문이 출토된 곳은 경남 김해시의 관동리라는 곳이고, 유적으로서의 시대는 삼국시대에 해당한다. 크기는 길이 130, 폭 45, 두께 5cm 였다. 고대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목제품의 상당수가 그 용도를 알 수 없지만, 이 경우는 현대인의 직관으로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손상된 목재유물의 보존처리에서 어려운 대상이 광방사조직(廣放射組織)이 있는 참나무류로 만들어진 것과 넓은 판상의 것이다. 이 유물은 목심(손상이 심하지 않은 내부조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으며, 더구나 참나무류였다. 보존처리 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내부결함과 표면의 미세할열이 수지처리 후 건조하는 과정에서 확장되었다. 분해가 심한 조직과 건전한 조직의 경계부를 기준으로 2편으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갈라진 문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목심을 끼우고 틈 사이에는 나무편과 에폭시 수지로 복원하였다.

 

문은 보통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연결시키는 접점에 위치하므로 담이나 벽 등의 다른 건축적 경계요소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이 발견된 유적의 주변에서 발견된 용도미상의 여타 목기들이 이러한 구조와 직, 간접으로 연관하지 않았을까 상상하여 본다. 문화재보존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이 시대에 목재를 재료로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목수와, 또는 과학을 통하여 목재의 쓰임새를 확장하는 목재과학자가 만나서 중지를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현재 문화재 발굴의 90% 이상은 구제발굴이다. 또한 발굴비용은 100% 아파트나 도로를 건설하려던 해당 사업자의 부담이다. 반면 문화재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장문화재의 보존에까지 엄격한 규제가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유물이라도 역사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공공의 소유물은 공공의 재산으로 관리하는 게 맞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건 어제의 그들이다. 작건 크건 그들의 흔적은 모두 소중한 삶의 유산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6월10일이다. 궁색한 문장을 벌충하기위해, 시인 고은(1983)님의 ‘문’이라는 시를 붙인다.

 

열어 주소서
닫힌 것을
一生을 다하여
겨우 인기척 하나
닫혀서
그 안에서 기다리는 하나

비록 내일 열릴지라도 그 안에서 오늘 여소서

 

 

문화재청 김익주

 

프로필
1959년생
1996 : 전남대학교 대학원 임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현 :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재직중(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