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가림막 이젠 예술이네
광화문 앞·금호 아시아나 제2사옥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 무대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광화문 한 편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주 동안 수십명의 인부가 20m가 넘는 커다란 철골 위에 올라가 하얀 천으로 꽁꽁 가린 채 비밀리에 작업했던 광화문 가림막 설치물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베일 속 주인공은 뉴욕에서 활동중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의 모자이크 작품 ‘광화에 뜬 달(부제 ‘산, 바람’)’. 민족의 염원을 담은 달항아리를 그린 나무합판 2616개를 모자이크처럼 엮은 형태로 2년여 간 광화문을 대신할 예정이다.
광화문 복원 공사장의 새로운 가림막‘광화에 뜬 달’/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공사장 가림막이 귀하신 몸이 됐다. 먼지와 소음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세우는 장치 신세를 벗어난 지 오래. 좀처럼 ‘모시기 힘든’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 무대가 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현수막, 벽보 등 불법 유동성 광고물의 난립을 막기 위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이 논란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공사장 가림막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광화문의 ‘금호 아시아나 제2사옥’ 건설현장 공사장 가림막은 이름까지 갖고 있는 ‘작은 갤러리’다. ‘시지엄(Cseum)’.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작은 ‘시티 뮤지엄’이라는 의미다. 73m 길이의 공사장 담벼락엔 이정교 홍익대 교수가 우제길, 이영희, 이성자, 하인두 등 국내 작가 4명의 작품 7점을 콜라주 형식으로 만든 그림이 프린트돼 있다.
서울 한남동 ‘일신빌딩’ 공사장에는 알록달록한 바코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바코드 작가’로 유명한 설치작가 양주혜 홍익대 교수의 작품. 최근까지 광화문 공사장 가림막으로 설치돼 있던 바코드 설치물도 그녀의 작품이었다. 논현동 제일생명 4거리에 짓고 있는 ‘테이크 어반’ 건물에는 일러스트 작가 최성희씨가 그린 감각적인 그림이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아예 가림막 작품을 공모하는 곳도 나타났다. 대성산업은 최근 신도림 ‘대성디큐브씨티’ 공사현장의 가설 펜스를 장식할 작품을 대학생 대상으로 공모했다. 주제는 ‘자연과 문화의 만남’이었다.
작가들에게도 가림막은 실험적인 무대. 최성희씨는 “가림막만한 스케일의 캔버스가 어디 있냐”며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생활 속 예술이니 욕심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가림막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면서 ‘건물을 두 번 짓는 것 같은 효과를 보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가림막의 가격은 제작방법과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 한 작가는 “일반 공사장의 경우 1000만~3000만원, 주요 문화재인 경우 몇 억원대까지 간다”고 했다. 예술가가 참여하면 무조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선입견이다. ‘광화에 뜬 달’은 작가 강씨가 전액 봉사를 선언해 재료비도 받지 않았다.
‘시지엄(Cseum)’이라는 이름의 광화문‘금호 아시아나 제2사옥’공사장 가림막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지자체의 공공 디자인 붐에 편승해 공사장 가림막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양주혜 교수는 “훌륭한 작품도 있지만 오히려 공해가 되는 저질 가림막도 있다”며 “공공 디자인 차원에서 공사장 가림막도 심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의 경우 아파트 시공 가림막에도 반드시 지자체 상징꽃이나 ‘살기좋은 ○○구’식의 슬로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어 하는 수 없이 우스꽝스러운 가림막을 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에 있는 건설현장에 젊은 감각의 음악밴드가 그려진 가림막이 등장했다.
행인들은“먼지투성이 건축공사장이 깔끔한 이미지로 바뀌었다”며 반겨했다. 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광화문 가림막 위해 6개월간 매일 18시간씩 중노동
‘광화에 뜬 달’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우리 민족이 잘됐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기도문’입니다. 행인들이 무심코 달 항아리를 보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광화문의 가림막 작품 ‘광화에 뜬 달’을 만든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는 지난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8시간 ‘중노동’을 해왔다. “나라 위해 일한다는 기쁨에 피곤한 줄 몰랐다”는 그는 “파주에 사는 어머니가 이태원 교회에 가는 길, 항상 광화문을 거쳐 간다. 어머니가 작품을 보면서 미국서 살고 있는 아들의 분신이라 생각하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림막’에 대해 “공간을 나누기 위한 분리대(divider)가 아니라 안과 밖을 잇는 연결고리(connector)”라며 “행인과 공사판의 만남,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이뤄지는 ‘열림막’”이라고 답했다. 강씨는 “복원 공사가 끝난 후 작품을 일본 재일 동포 주거지인 우토로 마을로 보내 상처 입은 동포들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해 주목받은 강씨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벽화와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 로비 벽화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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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경복궁에서 설치 미술가 강익중씨가 자신의 작품 '광화에 뜬 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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