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기모토 다카시

세칸 2008. 1. 5. 05:41

“서울 뒷골목·조선 백자에서 많은 영감 얻어”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기모토 다카시

 

곰탕과 수제비, 정이 가는 음식, 짝퉁 늘수록 진짜의 가치는 올라

 

김미리 기자(글·사진) miri@chosun.com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레스토랑이나 호텔은 실내를 꾸밀 때 통과의례처럼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다. 세계적인 일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스기모토 다카시(杉本貴志·63)씨는 그중에서도 의뢰 1순위.

 

세계적인 일본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기모토 다카시 

 

일본 디자인회사 ‘슈퍼 포테이토’ 대표인 그는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 신사동 한정식집 ‘가온’,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의 일식당 ‘순’, 청담동 퓨전음식점 ‘타니’ 등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다들 독특한 느낌으로 주목받은 ‘작품’들이다.

그가 ‘나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라는 주제의 책을 쓰려고 취재차 최근 한국에 왔다. 텁수룩한 흰머리에 펑퍼짐한 몸매, 뭉뚝한 손가락…. ‘고급 호텔·레스토랑 제조기’라는 수식과는 거리가 먼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 ‘슈퍼 포테이토’도 이런 외모에서 딴 이름. 울퉁불퉁 생겨서 어릴 때 별명이 ‘감자’였단다. 수수한 외모 탓에 ‘황당한’ 일도 있었다. “제가 디자인한 식당에 갔는데 저를 몰라본 점원이 ‘유명한 스기모토 선생이 인테리어 한 곳’이라고 자랑하더군요. 하하.”

‘스기모토표 디자인’의 특징은 나무나 돌 같은 천연의 소재를 활용한 미니멀한(꾸밈을 최소화한) 연출이다. 레스토랑 한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를 놓거나, 가공하지 않은 통나무를 테이블로 쓰는 식이다. 뜻밖에도 그의 이런 창작의 원천에는 ‘조선 백자’가 숨어있었다. 스기모토씨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백자를 100여점이나 수집한 컬렉터다. “조선 백자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 가치가 살아 숨쉬는 특별한 예술품이에요. 제 가슴 바닥에 들어가 있는 존재랍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백자의 가치를 너무 모른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최고급 호텔을 디자인한 스기모토씨가 정작 좋아하는 곳은 서울의 뒷골목이다. 그는 이번 여행길엔 답십리 고(古)가구 가게들을 헤집고 다녔다. 삼청동에 가서 항아리 수제비도 맛봤다. 한 상 가득 차려진 한정식은 “별로”라고 한다. 곰탕과 수제비 같은 한 그릇 음식에 정이 간단다. “한국 식문화가 참 재미있어요. 최첨단 빌딩 숲 뒤에 있는 밥집에 가면 옛날 방식 그대로 밥을 먹고 있잖아요.” 전통과 현대가 섞인 서울을 그가 영감을 얻는 도시로 꼽은 이유다.

그는 “요즘 내 디자인을 흉내 낸 가게들이
서울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복합쇼핑몰과 특급호텔에서 자기 스타일을 베낀 레스토랑을 몇 군데 발견했다고 했다. “가짜 아르마니 제품이 늘어날수록 아르마니 스타일이 하나의 파워가 됩니다. 결국 가짜는 진짜의 가치를 올려주고 소멸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