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2030년 미래 아파트

세칸 2007. 12. 17. 21:48

여기서 즐겨라, 그대 상상속의 욕망을  

[아파트 변혁을 꿈꾸다] 2030년 미래 아파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정착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고 이와 함께 아파트에 대한 욕구도 더욱 거세진다. 하지만 정착의 욕구는 어느새 강력한 소유의 욕구가 되고 소유는 더욱 큰 소유를 요구하며 결국 정착하기보다는 끝없이 이사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실제로 끝없이 이사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아파트는 구체적 거주의 공간이기보다는 거주를 흉내 내는 공간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하나의 장소에 정착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혹은 필요한 일인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장소의 성격에 따라서 각 주거 스타일의 배합과 규모 등이 달리 이루어지며 이로 인해 그 지역의 문화적 성격을 더욱 공고히 해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은 창조직업 스타일과 그룹 리빙 스타일의 주거 공간이 주종을 이루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은 홈 오피스 스타일의 주거 공간이 주종을 이룬다. 컴퓨터그래픽 김광수 교수  

 


취향에 따라 변화하는 아파트

과거에는 가까운 관계와 먼 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같은 동네에 사는가, 같은 나이대인가 등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올수록 이러한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이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더욱 가속되었다.

이제 시장에서 소비 대상을 파악할 때에도 연령이나 신분보다는 ‘취향’이라는 개념이 더욱 지배적이다. 그리고 비슷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사람들은 이를 ‘도시 부족’이라 부른다.

핵가족마저 분열되고 싱글의 삶과 실버의 삶 등이 급증하며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산되어 새로운 삶의 공간을 원하게 된다. 향후 현재의 가족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유사가족 집단이 다수 등장할 것이다. 현재의 가족 형태는 다양한 삶 중의 한 가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다가올 인구 구성의 변화와 삶의 문화를 바라보지 않는 일률적인 아파트의 건설은 걱정스럽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여러 곳에 나의 아파트

어차피 정착하지 않는 삶이라면, 그리고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자본을 소유하는 것에 그 궁극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아파트 문화는 오히려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라는 실물은 ‘공유’하되 자본은 한 개인이 ‘소유’하는, 즉 콘도미니엄과 같은 형식의 주거 문화가 훨씬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말이다.

다양한 장소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의 거주 공간. 그럼으로써 변화무쌍한 삶을 사는 동안 여건에 맞고 취향에 맞는 이런저런 장소와 필요한 거주의 형식을 취사선택하며 살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상황에 따라 거주 장소를 용이하게 옮겨 다닐 수 있고, 내가 100이라는 지분을 소유했다면 30 대 70으로 나누어서 대학 간 자식에게 학교 근처에 같은 아파트 브랜드의 자취 공간을 마련해 줄 수도 있고 나이가 들면 실버 타입의 아파트로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개념 말이다.

 

한 아파트 건물에 다양한 삶의 공간

여기서는 2030년이라는 가상의 시기를 설정하고 제안하였다. 예시된 안은 5가지의 거주 라이프스타일(창조직업 스타일, 홈 오피스 스타일, 패밀리 리빙 스타일, 실버 스타일, 그룹 리빙 스타일, 코쿤 스타일)을 설정하고 이러한 유형이 군집을 이루는 아파트 건물이다. 이 건물은 장소의 성격에 따라 적정하게 배합돼 층이 나뉘고 동시에 다양하게 구성된다.

각 군집엔 공동의 시설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든다. 창조 직업 군집은 전시 공간과 대형 작업 등이 가능한 공동 공간, 홈 오피스 군집은 회의 세미나와 같은 비즈니스 공동 공간, 실버 군집은 의료 및 여가 시설을 수용하는 공동 공간 등이 있다. 최상층에는 군집 배합의 비중에 따라 미술관이나 디자인 뮤지엄, 컨벤션, 학교 등의 공공시설이 들어가며 이 공간은 늘 개방된다. 최하층에는 소규모 상점이나 공용시설이 들어서며 도시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융화되어 인간적인 거리 풍경이 형성되도록 할 것이다.

이렇듯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부합되는 도시 각각의 장소에 사람들이 흩어지고 모인다면 그 도시의 영역들도 저마다의 특성이 더욱 공고해지지 않을까. 도시 영역 고유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설계안에서 중요한 건축 요소는 무수히 존재하는 빈 공간들이다. 이 열린 공간들은 맞바람이 들어오는 건축물의 숨구멍이기도 하고 거주자의 옥외 활동공간이기도 하다. 마당이 각각의 집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김광수 건축가·이화여대 교수

 

- 필자 약력

- 연세대 건축과 졸업

- 미국 예일대 건축대학원 졸업

- 200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출품

- 건축 작품: 일산주택(서울), 충무로 활력연구소(서울), 진해성당(경남), 과천 동판화가 스튜디오(경기), 공화랑(서울) 등

- 현재 이화여대 건축과 교수

 

※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