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민통선안의 양극화

세칸 2007. 9. 6. 04:36

외지인은 별장, 토박이는 슬레이트집

민통선안의 양극화

 

 

[한겨레] 지난 10일 서울에서 48번 국도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김포 서쪽으로 달려 나무가 울창한 산허리 길로 들어서자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쓰인 경고판이 눈에 박힌다.

‘여기부터는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민간인 출입 및 일체의 건축행위가 엄격히 통제되는 지역입니다’

밭 한가운데 빈 초소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밭 매다 허리를 펴면 개성 송악산이 보이는 곳, 경기 김포시 월곶면 용강마을. 1㎞ 남짓 더 들어가면 검문소가 나오고, 민통선 안에서도 거주민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작전지역이 시작된다.

이 검문소를 사이에 두고 흑과 백처럼 대비되는 두 풍경이 펼쳐진다. 작전지역 밖에는 검문소 10여m 앞까지 대규모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낮은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잔디 깔린 마당에 애완견들이 뛰노는 유럽풍 고급주택들이다. 작전구역으로 들어서면 70년대에서 멈춘 듯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들은 전원주택 단지에서 3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인지 세월의 더께가 더 도드라진다.

 

70여 가구로 이뤄진 이 마을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극명한 대비 속에 서로 섞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과 수려한 풍광을 찾아온 고소득자 또는 은퇴자, 그리고 도시에서도 밀려난 빈민들이다.

토박이 권영덕(35)씨는 “전원주택은 은퇴자나 고소득 계층의 별장이고, 개량된 한옥은 논 좀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 집, 슬레이트 지붕들은 도시에서도 못 살아 들어온 사람들의 집”이라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야 서로 숟가락 갯수까지 알고 지냈지만, 외지인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원주택 단지에선 초인종을 눌러도 주인이 얼굴을 내비치는 집이 없었다. 검문소를 지나 고갯길을 넘어가자 작은 저수지 앞에 새로 지은 2층 양옥집과 한눈에도 오래 된 기와집이 나란히 서 있다.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서경한(45)씨는 “지난해 새로 외지 사람이 옆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집 앞에 난 길이 자기네 땅이라며 그 길로 다니지도 말라고 한다”며 언성을 높였다.

 

고갯길 중턱에는 새마을단지가 있다. 전두환 정권 때 대북 선전용으로 지었지만 20여년이 지나 쇠락해 버린 집들이다. 한 집에선 구은비(14)양이 문을 잠그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구양은 “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 방학 때면 늘 혼자 있는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구양의 가족은 8년 전 전북 전주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바로 옆집에는 김태순(82)씨가 정신지체 장애인 딸(45)과 둘이 산다. 경기 역곡에서 살았다는 그는 “도시에서는 월세 내기도 힘들어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딸의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창문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길 건너편에선 한 은퇴자가 지인들을 불러 ‘고기 파티’를 여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새마을 단지 들머리 마을회관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적(51) 목사는 “2000년에 글을 쓰러 이곳에 왔는데 아이들의 생활이 너무 눈물겨워 아예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밤에는 철이(9·가명) 형제와 민경(13·가명) 자매를 돌본다. 이들의 부모들은 10여년 전 도시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인 민경 자매나 어머니가 도망간 철이 형제 모두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기란 기대할 수 없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신기한듯 “업어달라”며 장난을 쳤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라는 질문에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목사는 “자연과 풍광이 좋아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과 10만원이면 월세가 해결되는 이곳까지 들어와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 용강마을”이라며 “이 마을은 전국에서 양극화가 가장 심한 곳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이장을 지낸 이영범(45)씨는 “10여년 전부터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과 이주민 비율은 반반 정도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 중 70%는 여유있는 사람들이고 30%는 도시에서 내몰린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 마을과 남쪽 마을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턱밑까지 밀고 올라온 전원주택과 비에 젖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도 아득해 보였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바람이 민통선 안에 만들어놓은 기묘한 마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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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포/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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