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첨지는 뭐하고 가려나
벌써 오래 된 얘기지만,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옆 자리의 프랑스부부는 여행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덕에 내릴 때쯤엔 다시 만나 식사를 나누기로 약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山河는 그들에게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었는데, 그 중 "온 나라가 산이다."라는 점과 "웬 나무들이 바위에서 자라냐"가 그들의 커다란 의문이요 반응이었습니다.
산이 많음에 대한 놀라움은 우리가 유럽에 산이 없어서 놀라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했지만, 바위에서 자라는 나무는 잠시 무슨 소리인가도 싶었지요.
생각해 보니 바위 틈에 뿌리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들을 얼마든지 보았을 텐데 유럽에서야 그런 장면을 보겠습니까.
어쩌면 그 강인함과 끈기가 국민성과도 연관 되어 진한 인상으로 각인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작년이었나요, 서울의대 캠퍼스를 왼 편으로 끼고 성균관대학 입구 쪽으로 향하는 도로확장 공사가 끝났기에 구경 삼아 들어섰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새 길이 생긴 것쯤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길 양편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거리 전체가 어찌나 신선하고 운치가 넘치던지… 마치 현실이 아닌 양 어리벙벙해 지더군요.
동행한 지인과 이런 기획을 한 공무원은 표창을 받아야 한다느니, 우리나라에 새로운 문화시대가 열렸다느니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입니다. 분위기에 취해서 노상에 마련된 탁자를 찾아 늦도록 맥주를 마셨더랬습니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거리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카페 앞에 진 치고 있는 것이 어울리는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간 가로등과도 잘 어울리는 소나무 가로수 정취에 흠뻑 취해보고 싶었습니다.
뭘 그깟 일로 그리 호들갑이냐구요? 아직 그 거리를 못 가보셨군요. ㅎㅎㅎ
"소나무로 가로수를 조성한다."
오늘 아침 조간에서 본 기사입니다.
서울 중구가 추진하고 있다는 이 프로젝트의 유사 사례로 신세계 백화점이 주변에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사실이 소개되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너무 넓은 길이라서 대학로 소나무 길처럼 정감 있고 격조 있는 길이 되기는 어렵군요.
소나무가 유지비가 많이 든다느니 공해에 약하다느니… 문제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부디 품종개량을 해서라도 온 거리에 소나무가 가로수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여 소나무를 주제로 한 미술 작품 얘기도 나눌까 합니다.
특유의 영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소나무를 표현한 작품이 실패한 경우를 보기가 흔치 않더군요. 다시 말해 소나무 작품은 출발에서부터 이미 유리한 기본 점수를 업고 가는 것이 아닌 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모든 이가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엘톤 죤이 고가로 구입한 사실이 보도되어 더욱 유명해진 배병우씨의 소나무 사진은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도 월등한 예술적 가치가 느껴집니다.
배병우 작 '소나무', 출처: http://www.arko.or.kr/art500/baebien/
더 오래 전부터 소나무 화가로 알려져 있는 허계씨의 작품도 다른 주제로의 변신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소나무라는 존재 자체가 예술적 영감을 듬뿍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허계 작 '소나무', 출처: http://www.kcaf.or.kr/art500/heogye/
우아한 자태, 청초한 기상, 꿈틀거리는 생명감, 은근과 끈기의 투혼정신… 나무 중에 君子로 일컬어지는 소나무에 대한 예찬이야 허구 많은 이가 읊었으니 새삼 들먹이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소나무가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한국의 상징 나무임에 틀림 없다면 더욱 사랑하고 즐겨야 할뿐 아니라 그 품격을 널리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기품을 첫 인상으로 심어주기 위해 국제공항에서 들어오는 길의 가로수는 소나무여야 함을 역설하시던 어느 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원문 출처 blog.chosun.com/sms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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