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더 행복해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세칸 2007. 8. 14. 22:17
   더 행복해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이메일도 전화도 안 되는 선이골에서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외딴집’ ‘일곱 식구’ 모두 도시와는 동떨어진 단어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휴대폰은커녕 전기, 전화, TV도 없다. 

요즘 도시 생활을 벗어나 전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들 일곱 식구처럼

문명 생활을 완전히 접고 완전무결의 자연인으로 생활 하는 가족은 흔치 않다.

동식물과 더불어 살아온 지 올해로 7년째.

살듯이 공부하듯이 살아가는 부부와 그들의 다섯 아이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엮어낸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의 외딴집 한 채.

전깃불도, 우체부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농사짓고 나물 캐고, 책 읽고,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온 지 7년.

이 여름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고사하고 냉장고도 없으며,

당연히 컴퓨터나 TV, 세탁기, 게임기도 없다. 그럴싸한 옷장이나 책상도 없다.

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면서 자동차나 경운기도 없다.

올해 여덟 살인 막내 원목이부터 열 살 화목, 열한 살 일목, 열두 살 주목, 열다섯 살 선목이까지

아무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용희씨(44)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필요에 넘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단 몇 권의 책과 공책, 연필 한 자루, 두 벌 옷과 한 짝의 신발,

이불 한 채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넘치는 물건들 속에서 아이들이 어찌 검소와 나눔을 배우겠는가?’
이들 가족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서울을 떠난 것은

1998년. 대학 강사였던 남편 김명식씨(60)도 직업을 버리고,

약사였던 김용희씨 자신도 약국 문을 닫고

선이골로 들어가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버릴 것 버리고 떠날 것 떠나고 나니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선이골에 온 까닭은
해마다 4월이 오면 우리 가족은 우리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선이골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마워서 믿어지지 않기도 했고,

우리가 이곳에서 사는 의미를 좀더 깊게 느끼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1997년 단군 이래 국가 최대 위기라는

IMF 금융 대란이 닥치면서 이웃들이 하나 둘 무너져갔다.

지역 주민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약국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충격으로 쓰러지고 자살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그 엄청난 병에 다섯 평도 안 되는 약국이,

더구나 줄줄이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약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맏이 선목이는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제멋대로였고,

주목이와 일목이, 화목이는 약국으로 나가는 내 발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칭얼댔다.

게다가 점점 배가 불러와 몸도 무거웠다.

바깥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가족들을 돌보던 남편도 지칠 대로 지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이 빠듯하고 바쁘고 지친 서울의 삶.

거기에 하루 24시간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 뿌연 하늘,

피해 의식, 두려움… 남편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

떠나는 것! 그러나 어디로? 우리 부부의 고향인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까도 생각했다.

고향 떠난 지 30년이 넘는 남편, 18년이 된 나, 고향에 가족과 친지가 있었지만

우리의 자리는 이미 뿌리 뽑힌 상태였다.

고향 제주는 우리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참으로 우연찮게 선이골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남편은 한 번 다여온 뒤 창고 같은 커다란 집만 한 채 있고 전기도 없고 인가도 없고

밭은 숲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당장 갑시다. 가서 살면서 어떻게 해봅시다”라고 했다.

우리가 사시사철 아름다운 선이골에 와서 살게 된 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착한 일 한 적 없는데

이런 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엔 우리집이 꼭 난민 수용소 같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너무 비싸게 팔아서 미안하다고, 이곳에서 집 짓고 길 내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자기들이 쓰던 모든 살림살이와 심지어 먹던 쌀 한 가마니까지

고스란히 남겨놓고 간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지은 집에

우리가 산다는 게 얼마나 마음 든든했는지 모른다. 

 

 

 

 

 

 

 

 

 

 

 

 

 

 

 

 

 

 

 

선이골의 밤
선이골의 밤은 골짜기에 몰려오는 바람과 떼 지어 파닥이는 솔새들과 함께 온다.

20~30분 안에 완전히 해가 넘어갈 것을 알기에

“자, 어두워지기 전에 청소들 하고 씻고 저녁밥 준비하자”며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은다.

5남매는 그제야 우루루 몰려와서 집안 청소를 한다.

어느새 방 안은 어둑어둑하고 아이들은 잽싸게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바람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며 아이들 등을 물가로 떠민다.

손발 씻는 것도 재빨리 마치고 벌써 방안에 들어와 촛불을 켜고

호랑이 새끼들마냥 서로 뒤엉켜 놀고 있다. 선이골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바람은 떠나갔다.

열 평 남짓한 안방에 일곱 식구가 다 모였다.

하루 동안 사느라 여기저기 어지럽혔던 것들은 대강 정돈이 되었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동쪽과 서쪽 문은 닫혔다.

큰아이 선목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선이골은 고요하면서도 부드러운 어둠에 싸이고, 무쇠로 된 난로에서는

참나무가 타닥타닥 타고, 온 가족이 모인 안방은 따뜻해진다.

벌써 이부자리까지 싹 깔아놓은 우리의 방.

그곳에서 한 시간 이내로 막내 원목이가 잠들 것이고

주목이, 일목이, 화목이 연년생 3형제는 형과 어머니, 아버지를 관객으로 하여

씨름과 닭싸움, 권투, 팔씨름을 하거나 삼중창 혹은 설교를 하면서 한바탕 우리를 웃길 것이다.

8시가 지나면 대부분 잠자리에 들고 선목이는 혼자서 공부를 한다.

9시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어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와 간혹 천장 위에서 쥐 한 마리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린다.

먹는 것과 사는 것
선이골의 농사는 우리가 씨 뿌리고 가꾸는 논밭 농사만이 아니라

하늘이 모두에게 베푸는 숲의 양식도 포함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느라

우리는 이맘때면 그동안 산과 숲을 쏘다니며 거둬들인 숲의 양식들을 죽 살펴본다.

두릅, 고사리, 고비, 무릇, 수리취, 동자삼, 참취, 미역취, 개미취, 참나물, 모싯대, 다래순,

키다리, 돼지감자, 달래, 머위대, 갈퀴나물, 망초, 쥐오줌풀, 마, 마타리, 방가지똥, 질경이,

클로버, 쇠뜨기, 짚신나물, 냉이, 칡, 둥굴레, 쑥, 뽕나무 잎, 별꽃, 구릿대, 화살나무 잎….
선이골로 들어온 첫해엔 농사 짓기보다

들로, 숲으로 산나물 캐러 다니고 밤 주우러 다니기에 바빴다.

멧돼지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 기계 장비 하나 없이 맨손으로 밭을 일굴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첫해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선이골 생활 두 해째는 산나물로 온갖 요리를 해보았다.

지지고 볶고 삶고 무친 채소 반찬들은 밥상이 모자랄 정도로 날마나 풍성했다.

그러다 탐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갖가지 김치와 산야초 차, 장아찌, 효소들을 담았다가

거의 손도 대보지 못한 채 땅에 묻어야 했다. 이런 행위들이 헛수고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고 온갖 화려한 양념을 한들 어찌 방금 따다 삶은 옥수수와

풋강낭콩, 오이와 토마토로 차린 여름 오후의 밥상보다 맛날 수 있을까?

다섯 아이의 어미로서 내게 가장 큰 관심은 가족들의 먹거리다.

금방 밥상을 치웠는데 한 시간도 안 돼 “아버지, 맛 좋은 거” 하며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어미의 본능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남편과 아이들이 어떤 몸이 될 것인지,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지, 그것을 좌우하는 것이

내 손에 달려 있음을 어미는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서울에서 약국을 하며 수많은 성인병을 접하면서

‘밥이 보약’이라는 격언의 진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서울에서도 우리의 밥상은 건강식 위주로 차려졌다.

몸에 좋은 것, 오염되지 않은 것…

아무리 비싸도 약값보다는 싸니까 먹는 것에 관한 한 돈을 아끼지 말자는 주의였다.

선이골 다섯 아이의 학교
“참 튼튼하게 생겼다. 너 몇 살이니? 여덟 살? 어느 학교에 다녀?”
화천 사람들과 조금씩 낯이 익어갈 즈음 아이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연한 듯 묻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했다.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아니 짐승과 풀, 나무에게까지 주신 학교를 우리는 ‘가정’이라고 믿는다.

지상의 모든 몸들은 하늘이 주신 ‘가정’이라는 배움터에서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는 ‘품성과 관계’를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

남편과 나는 그 학교를 ‘하늘맞이 배움터’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들의 배움과 학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바람직한 거라고 여겨져 우리 내외는 모르는 척 지켜보았고,

아이들은 선이골에서 배우는 것을 두고 저희들끼리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다.

존경하는 외할머니가 그러셨듯이 인류의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우며

살아왔음을 깨달으면서 자기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셔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 되게 하는 삶을 배우는 ‘하늘맞이 배움터’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알아가는 듯하다.

선이골에서 우리가 하는 교육 중 몇 가지만을 정리해본다.



 

 

 

 

 

 

 

 

 

 

 

 

 

 

 

 

첫째, 그림 그리기.

농사 짓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남편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각자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밖에서 두세 시간 일하다 들어와서도 책상 앞에 앉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그 모습을 따라 했다. 네다섯 살 된 아이들의 글은 그림이었다.

선물받은 크레파스나 그림물감, 스케치북 같은 그림 도구가 많지만,

오로지 연필 하나로 화천에서 얻어온 이면지에 온갖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나와 남편은 많은 것을 관찰하고 배운다.

특히 아이들의 손가락 힘을 가늠해 글자 공부시킬 시기를 정한다.

아이들의 관심과 관찰력도 살핀다.

연필 하나로 그려내는 사람과 짐승, 풀, 나무, 산과 구름, 해,

심지어 군사놀이의 빛깔, 모양, 표정들을 살핀다.

아이들은 이곳에 친한 사람들이 오면 무조건 그림을 그려달라고 보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고이 간직한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둘째, 수학 공부.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공부’라 불리는 것 중

맨 처음으로 하는 공부가 수학 공부다.

글자 공부보다 먼저 수를 익힘으로써

추상과 상징의 부호인 글자의 세계로 이끌려는 생각에서다.

냇가나 길에서 주워온 크고 작은 각양 각색의 돌멩이로 숫자 세는 것을 배운다.

돌멩이 하나하나를 차례로 놓으면서 먼저 우리말의 수를 익힌다.

 

충분히 익히면 한자말의 수를 익힌다.
“일, 일하고 일은 이, 이하고 일은 삼….”
이것을 익히면 돌멩이 하나를 10으로, 100으로, 1000으로 삼아 또 숫자를 센다.

이 과정이 끝나면 돌멩이 대신 숫자 카드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열’은 ‘하나’가 열 개 모인 것이며 모든 수에는 ‘하나’가 숨어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겨울철엔 일주일에 4~5일, 30~40분씩.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만 보여주고 대부분 자기 혼자서 한 달 정도하게 만든다. 

셋째, 겨레 말, 겨레 글 공부.

하늘이 사람에게 준 최고의 축복 가운데 하나가 말이 아닐까?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말, 말씀!

단 하나뿐인 모국어는 사람의 사고와 성격, 지적 능력, 관계 맺기 등의 토대가 된다.

남편과 나는 평상시 우리가 하는 말에 꽤나 신경을 쓴다.

아이들이 좋은 말 습관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나 지나친 농담, 유행어 등도 흘려듣지 않는다.

넷째, 천연계를 통한 학습을 한다.

선이골의 천연계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요, 동무이며, 삶의 터전이다.

아침저녁으로 빛과 어둠의 세계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부터 시작해

집짐승과 산짐승, 새와 벌레, 풀과 나무, 비와 눈, 우박, 천둥, 홍수, 가뭄이 모두 교과서다.

 


다섯째, 농사 짓기를 통한 공부다.

선이골 생활 3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24절기를 중심으로

한 태양력, 태음력을 정리했는데 우리는 해마다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되풀이해서 그것을 공책에 쓰고 또 외우게 한다.

여섯째, 몸 의학 공부를 한다.

몸은 거룩한 집. 그 ‘집’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는 것이다.

서로 잘 어울리면 그만큼 그 집, 그 몸은 너그럽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진다.

밥상은 그 아름다운 ‘집’을 짓는 가족들이 날마다 벌이는 잔치다.

그래서 먹거리의 성격, 만드는 법 등도 공부한다.

일곱째, 역사 공부를 한다.

부모의 지난 역사에 목말라하는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어하는 아이들.

그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가 이 겨레의 역사, 인류의 역사, 하늘의 역사로까지 이어진다.

아직은 이 모든 것이 ‘옛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지지만, 때로 책을 보면서

그것이 재미로 지어낸 옛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이야기임을 알아간다.

여덟째, 편지 쓰기를 통한 공부다.

우리 글 공부를 위해서, 외딴 산골짜기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 편지이기도 해서,

또 보고픔과 그리움 때문에라도 편지 쓰기를 한다.

아이들의 즉자적인 관계 맺기를 조금 더 깊게, 진지하게 이끌기 위해

우리 부부는 때로 편지 쓰는 일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

일기 쓰기도 그렇지만 편지 쓰기가 주는 온갖 좋은 점을 강조하면서

편지 쓰기에 자기의 능력과 정성과 재치를 쏟아넣을 것을 권한다.

편지 쓰기는 어릴 적부터

여러 어른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삶과 예절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목이는 자기 마음을 어찌하지 못할 땐 하루에 열 통도 넘게 편지를 쓴다.

아우들도 따라서 한다.



 

 

 

 

 

 

 

 

 

 

 

 

 

 

 

 

 

 

 

 

 

아홉째, 아침 맞이다.

아침 조례와도 같은, 아침 예배와도 같은 우리의 아침 맞이는

경전 읽기 - 조선의 경전들과 성경 등 - 와 기도, 노래로 이어진다.

예를 배우고 모두 하나 되는 삶을 기원한다.

잠꾸러기 어머니 때문에 때로 아이들이 배고파서 아침 맞이를 건너뛰길 바라기도 하고,

아버지 말씀이 어려워서 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남편과 나는 아침 맞이를 아이들의 부드러운 몸에 새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음악 교육을 매우 중요시 하면서도 따로 음악 시간을 두지 않는

우리에게 날마다 부르는 아침 노래는 그 자체로 음악 공부가 된다. 

열째 바느질도 우리에겐 좋은 공부가 된다.

내가 도무지 손봐주지 않는 터진 옷을 남편은 스스로 바느질하곤 했다.

일목이와 화목이도 아버지를 따라 자기들의 구멍 난 양말을 얼기설기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열한째, 생일 맞이를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는다.

말띠 선목이가 이 세상에서 두번째 맞이하는 ‘말’의 해.

그러니까 만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아이들 넷을 데리고 6박 7일간 멀리 나들이를 갔다.

선이골에 선목이와 남편만 남겨두고 아우들이 없는 고요하고 잘 정돈된

선이골에서 혼자 밥 짓고 집안일하면서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왜 병이 들고 늙고 죽는지’등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선목이의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6박 7일 동안 선목이는 끙끙 씨름을 해봤으나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 

 

 

출처 : 흙집마을  |  글쓴이 : 비즈니스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