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노트-4
<이집은 잘못지어 졌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부모님들을 통해 다른 교육환경에서 자라서 성인이 되고 나름대로 공통성이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 삶을 영위 하게 된다.
그 각각의 다른 개성으로 인하여 사람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종내는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 경우도 많기에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2세를 만들기 위한 젊은 시절에 감성적 사랑이라는 특유의 눈가리개를 씌워서 애정적 조건만으로도 배우자를 선택 할 수 있도록하여 아주 개성이 강하고 까탈스런 사람이라도 결혼에 골인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세월이 가면서 그 눈가리개의 주술적 효력이 각자의 개성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부부간의 다툼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에 대해 더욱 많은 의식적 배려를 통해 서로를 붙들어 놓고 의지하기 시작한다.
가끔은 이정도의 의식적 배려를 하는 부부에게 서로를 위해 선물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고 남편의 경우 가장 큰 선물로 아내를 위해 집을 짓게 된다.
그에 대한 아내의 가장 큰 선물은 역시 사랑이다. 눈가리개에 씌워진 감성적 사랑은 아니겠지만 다분히 의식적으로 그런 감성적 사랑을 선물 받을 때 한 남자는 더욱 행복해 질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남자는 여자의 보호 내지는 뒷바라지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위해 남자는 일생을 통해 열심히 일하고 아내를 위해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하고 좋은 집을 마련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경상남도 어느 곳에 집을 짓고 나서 준공검사를 신청했다.
현행 규정에 따라서 건축물의 준공은 그 지역의 건축사(설계자가 아닌)가 시장을 대신하여 준공검사를 나왔는데 이곳저곳 현장을 둘러보고 실측을 하고 도면과 대조를 하면서 꼼꼼히 본연의 임무를 수행 하게 되었고 건축주분께서 이것 저것 질문에 대해 답을 하시게 되었는데...
준공담당 건축사 왈 “법적으로 하자는 없으므로 몇 일내에 준공처리 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이집이 잘못 지어 졌어요. 첫째 방향이 약간 남서향인데. 이를 동남향으로 도로 쪽으로 돌려야 하며 풍수적으로 볼 때 어머니의 모태적 느낌이 강하도록 ”ㄷ“자의 집으로 마당을 감싸도록 하셨어야
하며, 건물의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출입구의 위치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아예 이집을 헐고 다시 지으시던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시면 제가 제대로 설계를 하여 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우리 건축주께서는 상당히 개성이 강하시긴해도 합리적이고 인내력 있으신 분이지만 준공검사가 끝나고 나에게 전화를 하시어 말씀하시길 “최건축사님 ! 이럴 수가 있나요? 어제는 내 인생에서 삶의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 받는 줄 알았답니다. 아니 자기 집도 아닌데 자기 업무만 하고 가면 될
일이지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만든 이 집에 대하여 저따위 교양 없는 평을 하고 갈 수 있나요? 하시면서 위의 이야기들을 ” 들려주시었다.
필자도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같은 업을 하고 있는 건축사로서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준공검사 잘 넘어 갔으니 이해하세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만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집을 지을 각각의 땅들도 다른 위치에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땅주인과 설계자를 만나 나름대로의 성격이 부여되고 탄생되는 것을 어찌도 그리 자신의 주관대로 남을 평할 수 있는지 참으로 그 대범한 개성(?)에 찬사를 드리고 싶지만 그 대범함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의 기다림과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행복한 꿈에 젖어 있는 분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말들이 아닐지. 마치 결혼식장에서 당신들은 서로 궁합이 맞지 않으니 내가 다시 중매를 하면 어떨까 하는 주례사에 비하면 너무 심한가?
어찌 되었건 이 행복한 집은 적어도 그 무지하고 자기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잘못 지어진 집”이 되고 말았다. 필자의 생각으론 이렇게 자기만의 개성(?)만 있는 사람은 늙어서도 그 성격으로 인하여 부인한테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주택의 시작은 건축주인 남편분께서 시작을 먼저 하시었다.
부인께서는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 사시면서 쇼핑, 레저 등 불편함이 없는 그 편의성에 익숙하시어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고 한다.
설계는 물론이고 조명기구 하나를 선정하기 위하여도 서울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면서 힘든 과정을 모두 마치고 건축물이 완성되고 입주를 하고 난후 건축주분을 뵈었다.
남편분께서는 그간 힘든 과정과 아파트를 떠나오는 마음고생을 하신 부인께 주변의 운동시설이용권과 몇 년을 타고 다니시던 부인의 자동차도 교체해 주시었고, 특히 사업의 규모도 약간 축소하시고 일찍 퇴근하여 부인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 지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시지 않으셨다고 말씀 하셨다.
남의 집만 설계하고 지어가며 사는 필자지만, 나는 언제 내 아내에게 저렇게 배려를 해 주면서 살 수 있을까? 건축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그 개성 강한 삶속에서 눈가리개의 효력도 떨어지고 어찌 잘못하여 서로에게 서운해 질 수도 있을 무렵 부부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더 없이 좋은 약 인것 같았다. 다만 “이 집은 잘못 지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지어 드릴께요”하는 무리들에게는 아닐지 몰라도...
이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땅을 보고 건축주와 면담을 하고 곧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고 첫 번째 설계안을 만들어 건축주께 보여 드리고 설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설계안을 보시면서 건축주분들께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책을 보고 발품 팔고 나름대로의 설계를 하느라 밤을 밝히고 했는데 이렇게 시원스레 답을 찾아 주시니 괜히 사서 고생을 많이 했었군요..아주 맘에 들어요..그리고 대체로 저희 생각과 너무 맞아 떨어집니다..”라는 말씀으로 설계안을 받아 들이셨다.
내가 한일이라곤 그저 땅을 보고 건축주분들께서 말씀하시는 생각들을 정리하여 도면으로 구체화 시키면서 가능하면 건축사인 나의 개성을 너무 많이 반영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하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건축주분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땅과 건축주 분의 개성이 많이 반영되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대지조건분석>
이 대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집의 뒤쪽(北)에서 대지의 좌측(東)으로 나 있는 마을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즉, 내 집 뒤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조건과 건폐율이 20% 밖에 되지 않아서 1층에 앉힐 수 있는 면적이 제한되어 평면구성이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대지의 우측(西)에는 폭 6m 정도의 조그만 계곡과 예쁜 소나무가 있는 언덕이 맞닿아 있고 대지의 전면(南)으로 약 3~4m 정도 낮게 너른 논들이 펼쳐지고 그 논들을 넘어 약 500m 끝에는 얕은 산들이 시선의 부드러움을 한층더 배가 시키는 아주 풍광이 뛰어난 곳이어서 그저 그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 집안으로 끌어 들이거나 연결을 해주면 될 것 같았다.
다만, 대지의 좌측 도로와 대지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뒷집과의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블록킹존(blocking-zone)이나 건축물의 매스가 필요하다는 그리고 그러한 매스나 블록킹존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중정은 아마도 건축주께 아주 편안한느낌을 줄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목표의 설정>
대지조건 분석에 의하여 건물을 크게 2개의 매스로 만들고 이중 작은 매스를 도로를 타고 길게 흐르게 하고 큰 매스는 뒷집과의 경계선에 동서로 배치하여 주기능(거실, 식당, 주방 등)을 배치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작은 매스의 1층에는 주인침실과 그에 따른 서비스공간을 두고 작은 매스와 큰 매스의 연결부위에 현관과 복도를 두어 자칫 동네와 이 집이 단절을 일으킬 수 있는 점을 보완하고자 시각적으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큰 창을 두기로 했는데 이 부분은 건축주와 설계를 진행 중 창문의 크기가 줄어들게 되었고(보안) 당연히 시각적 연결성은 조금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래의 설계목표 다이아그램과 같이 주기능공간(분홍색)은
이 집의 마당과 데크 그리고 남측의 좋은 조망과 빛을 향하여 있고 이런 주기능공간을 외부쪽으로 둘러쌓고 주기능에 따른 서비스공간(녹색)을 두어 완충기능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렇게 마을 도로와 약간은 등진형태의 건축물을 출입구와 도로쪽으로 모던한 형태의 화단이나 조경, 담장, 대문 및 주차장의 철골보 등을 이용하여 완충적 기능을 부여하여 마을의 일원임을 강조하면 될 듯 하였다.
<평면 및 입면의 작성>
외부는 전체적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하고 지붕은 천연슬레이트 기와를 사용하기로 건축주와 협의가 되어 있다 보니 소위 흔한 흰색사이딩의 전원주택 풍이 아니라 조금은 친근감이 있고 편안한 느낌의 약간의 모던한 외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평면은 이미 완성이 된 설계목표에 의하여 각실의 크기만 정하면 되는 일이 었고, 1층 현관에서 거실을 통하여 주방/식당으로 가야하고 또 거실의 우측벽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실의 동선이 조금 복잡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전체적 기능을 위하여 이정도는 건축주께서 양보를 해 주셨고, 주방에서 식당을 통하여 바로 외부의 데크로 나가면 그 끝에 예쁜 소나무 한그루를 심기로 하였고 그 소나무 아래에 작은 벤치를 두고 이곳과 거실은 일반적 데크의 형식이 아닌 징검다리 형태의 브리지형 데크를 설치 하기로 하였다.
주방에서 머리를 들면 식당의 천창을 통하여 남녘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설계가 완성되고 집이 지어 지기 시작을 했으며 마지막 마감공사시 건축주 내외분과 조명기구를 선정하러 꽤 여러 곳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했는데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준공후 건축주의 부인께서 필자에게 해 주신말씀 “사실 저는 아파트 생활을 버리고 전원 주택으로 오는게 싫었지만 남편이 오래도록 숙원해 온 터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집을 다 짓고 입주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제가 남편께” 이렇게 예쁜 집을 지어서 살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지요..
필자는 그 말씀을 이렇게 들었다“건축사가 설계를 잘해 주어서 덕분에 이 행복을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아~ 생각의 자유로움이란... 집을 설계할때는 건축주분들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는 오로지 나의 개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기~쁨
출처 :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 글쓴이 : 김경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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