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
강화도 앞바다가 보이는 집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 필자의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였다. 큰아이와 딸아이 그리고 큰아이 학교친구 세명을 데리고 케이블TV 뮤직방송국을 찾아 갔었다.
당시 이 회사 사장님 방에서 아이들과 차를 마시며 대기를 하다가 직원과 함께 녹화장으로 갔는데 그때 당시 최고로 인기 있는 젊은 가수들이 많이 나오는 녹화장이라 오빠부대들로 꽉찬 녹화장은 복도까지 발디딜 틈이 없었고 그나마 입장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밖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는데 그 복잡한 틈으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맨 앞줄의 가운데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나는 다시 사장실로 갔다.
당시 필자가 설계를 끝내고 집을 지어 입주를 하신 상태 였고 이런 저런 이야기 도중 고객께서 나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책상위에 올려 놓으신 것은 플래티넘 가곡전집 CD 였다. 타고난 음치인지라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을리가 없지만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 오신분이 주시는 것이라 기꺼이 받아왔고 지금도 사무실에서 차에서 자주 듣다보니 나름대로 한국가곡이나 베토벤, 모차르트, 바하와 같은 거장들의 음을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방송 녹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방송 재미 있었니? 하고 물어 봤는데, 딸아이는 “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요. 아빠! 내옆에 앉은 언니도 똑같은 1학년이라고 언니가 이야기 해줬어요” 아들이 되받아 치기를 “야! 그 누나는 대학교 1학년이야! 너는 초등학교교이고” 하면서 특유의 동생 딴지 걸기를 했다.
“아 알았어! 그런데 너는 어땠어” 했더니 “아빠 ! 다음에 또 가고 싶어요”, 아들 친구왈 “ 우리 아빠는요 이런 방송국 사장님 안내로 우리를 데려갈 수 없어요, 아저씨 다음에도 또 끼워 주세요” 그날 나는 어깨가 쭉 펴지는 느낌으로 운전을 하였고 고객과의 집 이야기가 주마등 처럼 지나가기 시작 했다.
2000년 봄 강화도 가는 선착장을 지나 강화도가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언덕위에서 앞으로 집을 지을 땅을 보고 그 아래의 횟집에서 처음으로 건축주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 했다.
건축주께서는 암선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수술 등 치료가 잘되어 회사에도 정상 출근을 하시는 상태였고 부인께서는 테니스를 좋아 하시는 건강미 넘치고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시는 보기 좋은 부부셨다. 자녀분들은 장성하여 대학생인 딸과 아들을 두고 계셨다.
< 대지 분석도 >
두분께서는 집을 지으시기 위하여 오랫동안 이곳 저곳을 섭렵 하듯 다니시면서 예쁜 외관을 가진 사진들을 수도 없이 찍으셨고 그것들도 모두 펼쳐 보여 주셨다.
당시 건축주분들의 요구 조건을 몇 가지로 정리를 해 보면
첫째> 아름 다운 서해 바다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바닷가 언덕위의 예쁜집
둘째> 부인께서는 남편의 건강을 생각할 수 있는 햇볕이 따뜻한 건강 주택
셋째> 아무래도 아이들이 자주 올 수 있으면 좋겠고
넷째> 바로 뒤에 친구분이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싶지만 적당한 프라이버시 확보 등 소박한 내용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땅이 가진 장점은 좋은 조망이 있는 반면 단점으로는 언덕위에 넓은 땅에 외로이 집 두채만 서 있어야 하고 겨울이면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과 봄철 중국 쪽에서 불어 닥치는 차가운 황사 바람 등에 정면으로 노출이 되는 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 좋은 서향을 버릴수도 없고 남측의 넓은 정원의 푸르름을 버릴 수도 없는 점이었다.
당시 건축설계를 맡은 건축사로서 생각은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첫째> 비교적 넓은 대지를 축구 선수들이 운동장을 넓게 쓰려고 많은 훈련을 하듯이 기본적으로 집을 평면적으로 넓게 펼쳐야 하고자 하여 바다위의 조각배처럼 작은 공간으로 분리하여 여러동의 건물로 메스를 분할 하되 다시 이 배들이 대오를 정렬하여 북서풍의 강한 바람과 스산함에 대적 하도록 지붕이나 데크, 가시설등으로 묶은 다음 그 사이에 생기는 작은 마당 공간들을 만들어 넓은 대지의 정원에 딸린 바람소리 작은 뜰을 만든다.
둘째> 20대의 젊은 자녀들이 서울에서 부모님을 보러 강화까지 올때에 친구 하나쯤 데리고 와서 밤새 기타도 뜯어보고, 음악도 듣고, 또 때론 밤에 거실까지 올 필요 없이 라면을 끓여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펜션 같은 원룸의 별채를 만든다.
셋째> 부부 침실은 볕이 가장 잘 드는 남측으로 둔다.
넷째> 부부 두 분만 계시는 시간이 많을 것이므로 거실과 식당을 한 공간으로 연출하되 내부는 조금은 카페 같은 느낌으로 층고를 높여 주고 여기서 외부와 시선이 차단이 되고 서해 바다의 아름다운 낙조가 한번에 쏟아져 들어올수 있으며 넓은 정원과 연결된 데크를 둔다.
다섯째> 뒷집으로 향하는 도로측에 건축물 일부를 바짝 붙여 담장 아닌 담장 역할의 기능과 이 건물과 본 건물 사이에 자연스레 만들어 지는 중정을 두어 집의 대문을 들어서서 현관까지 부드러운 시선과 보행을 두되 대문에서 현관은 1자로 연결하고 그 대문에서 현관을 통하여 거실 앞의 데크까지 한순간에 연결이 되도록 하기 위해 현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으로 거실이 있고 그 좌측으로는 별동 같이 연결된 부부 침실을 두고 곧바로 다시 문을 열고 나서면 서해 바다가 보이는 거실앞 데크로 연결을 시키고자 한다.
< 땅과 집에 대한 건축주의 의견과 건축가의 생각 정리 >
건축설계를 하면서 진행되는 과정들은 때론 지루하기도 하고 때론 흥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 과정들은 비슷하게 이루어 진다.
이렇게 대지분석이 끝나고 건축주와 몇 번을 만나면서 대충 정리가 되면 공간에 대한 컨셉을 확정하게 되고 책상위에서 공간에 대한 다이아 그램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다이아 그램은 앞으로 그려질 도면의 가장 기본이 되기에 처음에는 연필로 그려 놓고 그 위에 플러스 펜으로 다음에는 더 진한 유성펜으로 거의 낙서에 가깝도록 그리고 또 그려 보게 된다. 그러면서 확신이 서게 되면 다시 트레이싱 페이퍼(도면 작업용 투명 기름종이)를 그 위에 겹쳐놓고 마지막 다이아 그램을 완성하게 된다.
< 다이아 그램으로 표현된 동선 계획 >
위의 그림에서 보면 60평 밖에 되지 않는 건물이 4동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주방/식당동 건물과 안방은 하나의 건물로 다시 묶되 현관 부분을 시선이 투과 하도록 하여 시각적으로 재분리를 하였고, 손님방과 안방 그리고 현관을 데크로 연결하였다.
마지막으로 차고/창고는 손님방과 떼어 놓고 보니 그 사이에 생긴 통로를 자연스럽게 이 집을 들어가기 위한 출입구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매스의 분할을 통한 주 진입로의 형성>
< 1층 평면도 >
구체적으로 각실의 계획을 하고 치수를 부여 하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식당의 위치 였다. 거실에서 식당으로 곧바로 들어 갈 수는 있되 필요시 공간 분리가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거실앞 데크와 식당앞 데크는 너무 커서 횡할것 같은 느낌 마저 들어서 거실앞 데크의 한 귀퉁이에 필자의 전매특허인 소나무 한그루 꽂아 두고 그 주위에 벤치를 두면서 식당앞 데크를 2계단만 들어 올렸다. 이로서 서해를 바라보기 좀더 쉬워진듯 했고 현관에서 바라보이는 데크의 볼륨감도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전망쪽에서 바라본 데크전경>
차고의 컨셉은 기본적으로 지붕만 있는 구조를 하여 자칫 도로쪽에서 본채가 너무 가려 지지 않도록 하여 주차후 다시 돌아 나가서 대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되 부분적으로 키낮은 벽체를 세워 개방감과 동시에 영역성을 두기로 하였다.
<차고와 창고>
<중정데크>
< 2층 평면 계획 >
2층의 기능은 자녀방만 두 개를 두기로 하였으며 자녀의 성별차이(남,여)를 고려하여 각방들이 떨어져 있도록 하였으며 이를 연결하는 것은 복도가 아닌 다리(BRIDGE)개념을 도입하고 그 브릿지에서 볼수 있는 것은 거실을 통하여 거실앞 데크, 그리고 계단쪽 창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솟아 오른 차고동의 높은 지붕 그리고 그 위를 지나 도로가 보이도록 하였다.
<2층 자녀들 방을 연결하는 2층 브릿지>
<강화도 주택 전경>
공사가 완료된 후 건축주 내외분께서 “언제든 서해 쪽으로 놀러 오실일 있으면 가족들 데리고 오세요! 독립된 손님 공간 뿐만 아니라 아예 집 전체를 빌려 드릴께요” 하시면서 아이들이 자기네들 방은 잘 이용 하지 않고 아예 두 남매가 서로 손님용 별채를 먼저 점령하고 한다고 하시면서 덧붙이시기를 “이 방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와서도 지내고, 혼자 와서도 아예 그 방에 있는 답니다, 모두가 최소장님 덕분입니다”
고객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설계의 에너지가 된다.
출처 : | 최길찬의 전원주택 이야기 | 글쓴이 : 김경선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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