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창호 소목장 심용식

세칸 2007. 8. 10. 02:29

금강송 창호 소목장 심용식씨

                                                                     

 

                                

최근 경복궁 태원전 권역 복원에 금강송 140여그루가 동원됐다. 곧고 단단한 이들 금강송은 태원전의 대들보와 기둥, 문짝이 되었다. 금강송이 대목장, 소목장의 손길을 거쳐 천년 문화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문화재 기능 보유자 심용식(53·소목장)씨. 창호 장인인 그는 서울 만리동 고개와 충남 아산에 공방(성심예공원)을 운영하며 궁궐이나 사찰, 전통 한옥에 쓰이는 창호를 대주고 있다. 창덕궁 인정전이 대표작.

“금강송의 곧은 기품과 뛰어난 솔향, 목재의 질은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입니다. 세계에 내놔도 흠잡을 곳 없는데 우리가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심씨는 열일곱 살에 지역의 큰 목수였던 조찬형(인간문화재 소목장)의 눈에 띄어 기본적인 목수일과 창호 만드는 법을 익혔다. 10여년 후 상경한 그는 당시 서울 만리동 고개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며 장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목수 최영환(85년 작고)을 만나 그 밑에서 배운 솜씨를 물려받는다.


“선생님은 저를 5년가량 지도하시다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심씨는 귀향을 포기하고 목공소에서 눌러앉았다. 금강송으로 문짝이나 가구를 만들고 나면 그 솔향에 취해 목공소를 벗어날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당시 최영환의 문하에는 목공이 많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돈 되는 일’을 찾아 하나둘 떠나갔다. 모두 50명가량이 목공소를 거쳐 갔지만, 그는 스승이 떠난 빈자리를 굳게 지켰다.

“금강송으로 마루를 만들어 놓으면 문양이 참 좋지요. 금강송 가구는 칠을 안 해도 붉고 누런 빛이 가구를 안정감 있게 합니다. 특히 그윽한 솔향이 인체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요.”

그는 소목장이 되면서 바빠졌다. 경주 불국사, 순천 송광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의 큰 법당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영국 대영박물관 내에 지어진 한옥 ‘사랑방’의 창호도 그의 작품이고, 프랑스의 이응노화백 소유 고암미술관 창호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한옥의 운치를 한껏 뽐내고 있는 강원도 평창의 한옥문화원과 강화 학사재는 천년을 이어주겠다는 긍지로 제작했다.

‘꽃살문 창호 제작의 귀재’라는 그는 눈꼽쟁이창, 머름창, 팔각창, 불발기문, 소슬모란무늬문, 격자문 등 수백 가지 창호 문양을 다 만들어 봤다. 때론 전통에도 없는 문양을 창작해 보기도 한다. 수백년 후 후손들에게 평가받고 싶은 욕심에서다.

심씨는 직접 좋은 목재를 구하고 고건축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을 헤집고 다니고 때론 외국에도 나간다. 한달에 서너 번은 꼭 한옥문화원에 나가 후학들을 지도한다. 아직 나이는 많지 않지만 자신의 기술을 썩히지 않고 사회 어딘가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점점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다. 그는 8명 남짓 되는 제자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금강송이 너무 줄었어요. 60년대 산림녹화 운동이 일어났을때 시기만 했어도 지금쯤 제법 컸을 텐데 아쉽습니다. 당시는 땔감으로 켜가기 바빴지요.”

금강송을 고를 때 그의 눈은 빛난다. 그는 직접 현장에서 춘양목을 고르고, 아산 공방에서 2년여 비바람을 맞히며 자연건조시킨다. 그래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150년 된 춘양목은 손톱도 안 들어 갈 정도로 강하다. 한국 문화재의 격을 높이기에 제격인 셈이다.

그는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는데,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딸은 한국 창호문화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다. 유학을 떠날 때 아버지의 창호 문양 책을 한보따리 싸가지고 가더니, 서양 디자인에 한국 전통문양을 접목해 학교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집 근처 수덕사에 찾아가 나무로 만든 문살과 단청을 보며 넋을 빼앗기곤 했던 가녀린 소년은 어느덧 천년 문화재를 빗는 명장으로 자라 우리 전통문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글 정성수, 사진 이제원기자  2004년 11월 16일 (화요일) 17 : 12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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