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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상에서 인류가 모두 사라진다면

세칸 2008. 5. 13. 09:42

내일 지구상에서 인류가 모두 사라진다면

환경영화제 다큐멘터리 ‘인류 멸망 그 후’ 5월말 상영

 

연합뉴스

 

 

이유는 묻지 말자. 그리고 만약 내일 갑자기 지구상에 인류가 없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그동안 주인으로 군림해오던 인간들이 없는 세상, 지구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쥐죽은 듯 고요해진 지구에 생기는 첫 번째 변화는 정전이 될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의 발전시설은 인류의 가장 큰 에너지원인 화석연료를 계속 공급해줘야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끊기면서 발전소도 멈춰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는 애완견이나 애완용 고양이 같은 가축들이 어슬렁거린다. 그동안 주인에게 먹이를 받아 먹고 사는데 익숙해진 애완동물들은 필사적으로 음식 찌꺼기를 찾겠지만 사냥 능력을 잃어버린 까닭에 머지않아 상당수가 도태돼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없어진 지 1달쯤 지난다면 아스팔트나 벽돌로 된 도로의 틈에서 풀들이 돋아날 것이다. 회색의 도시가 녹색으로 변할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만약 지구상에 인류가 없다면?’이란 가정 속에 지구의 운명을 그려 낸 다큐멘터리 영화 ‘인류 멸망 그 후’(Life After People)가 조만간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올해 초 미국의 ‘히스토리채널’에서 방영된 뒤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다큐멘터리는 환경재단이 오는 5월22~28일 개최하는 ‘제5회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됐고 오는 4일 한국의 히스토리채널에서 먼저 방영된다.

다큐멘터리는 미국 방영 당시 히스토리채널 역사상 처음으로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송을 시청했으며 케이블TV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언론이 리뷰를 게재했다.

다소 황당한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미국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인류가 사라진 지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동안 인류가 지구에 끼친 피해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만든 것은 당장 내일 모레면 상할 음식에서부터 시작해 천년은 족히 견딜 에펠탑까지 다양하지만 결국은 모두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자연은 그 위에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자연과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인류가 지구상에 남긴 흔적은 차츰 사라지고 종국에는 문명이며 역사 같은 인류의 부산물 역시 존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인류가 사라져도 지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을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가짜 화면을 통해서이지만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스타워즈’ 제작사인 ILM社가 에펠탑과 금문교 같은 지구의 대표적인 구조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부터 뉴욕 시내가 숲으로 변해가는 광경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 냈다.

인류가 사라진 지 2년째. 유명한 뉴욕 지하철은 물에 잠긴 지 오래다. 펌프를 이용해 계속 지하수를 퍼다 지하 역사 밖으로 버려야 하는데 전기 공급이 멈춘 지 오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는 문명화된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코요테나 사슴 같은 야생 동물들이 활보하기 시작하며 그동안 인간의 방해 없이 마음껏 음식이며 가구를 먹어치우던 쥐들은 먹을 게 떨어지자 야생으로 돌아가거나 도태됐다.
 
미국 남부에 자동으로 전력을 공급해오던 초대형 댐인 ‘후버’댐은 홍합 같은 수중생물이 배수 파이프를 막아 전력 생산을 멈췄다. 댐의 발전소가 멈추자 아마도 지구상 가장 마지막 인공 조명이 있던 라스베이거스에도 전력 공급이 중단돼 이제 지구의 밤은 어둠이 지배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깔아놓은 돌 바닥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게 됐다. 죽은 동물과 식물, 이들을 분해하는 미생물 위에 새로운 토양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100년 후. 런던이나 암스테르담 같은 저지대의 도시들은 이제 현대의 베네치아처럼 물에 잠긴 도시가 됐다. 담쟁이식물들이 헤집고 들어오는데다 나무 자체가 썩는 까닭에 나무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브루클린 다리 같은 철제 구조물은 그동안 보수를 안 해줘서 녹이 슬다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으며 자동차는 철이 산화되어 더 이상 자동차의 외형을 갖추지 않고 있다. 자연은 원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철 역시 보수 없이는 존재하기 쉽지 않다.
 
다리를 지탱하던 케이블 역시 철로 돼 있기 때문에 산화돼 훼손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케이블 선이 하나씩 끊기며 마침내 금문교 같은 대형 다리도 붕괴된다.
 

 

1천년 후. 나무가 썩고 철이 산화되며 맨해튼의 건물들은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를 언덕과 산이 대신했다. 인류가 수도관 속에 가둬놨던 물은 밖으로 흘러나와 강이 됐으며 댐의 붕괴와 홍수로 흘러나온 강물이 여기 합류했다. 사막 같은 건조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더 이상 인류의 흔적은 이 땅 위에 남아있지 않다.

인류가 없는 지구가 자연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 다큐멘터리는 인류가 지구에 가한 가장 큰 폭력인 ‘온난화’라는 요인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아마도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동안 지구를 잔뜩 달궈놓은 정도만으로도 육지의 면적은 다큐멘터리가 예상하는 모습보다 대폭 줄어들어 바다가 육지를 삼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며 한반도는 더 이상 해수면 위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이번 세기 말까지 지구의 온도가 최고 6.4도까지 상승하고 해수면의 높이는 최고 59㎝ 상승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으며 지난 1월 해양수산부는 2040년까지 한반도의 바닷물 온도가 0.67도 높아지고 24.57㎢가 침수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의 말미. ‘인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발칙한 가정에서 출발한 이 다큐멘터리는 황당해보이는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45억 년쯤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역사를 하루 동안인 24시간이라고 한다면 인류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어느 정도로 환산될까?


다큐멘터리 속 내레이션이 들려주는 대답은 “길어봤자 30초쯤”이라는 것이다. 30초면 휴대 전화 연결음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거나 TV용 광고 1편이 방영되는 정도의, 아니면 이 기사를 읽는데 소요됐을 법한 시간이다.


지구가 애초부터 인류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인류가 잠깐 빌려서 쓰고 있는 이 지구를 어떻게 가꿔 나갈지를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찰나’의 개발과 발전에만 한눈을 팔게 아니라 지구 온난화나 물 부족 문제 같은 지구의 존망이 걸린 환경 이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환경영화제 황혜림 프로그래머는 “관객들이 인류가 사라진 다큐멘터리 속 지구를 보고 역설적으로 인류 외의 다른 생태계는 오히려 살기가 좋아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류가 그동안 살았던 지구에 어떤 피해를 줬는지 돌아보고 자연과 공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