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조갯살 속 감칠맛이 하늘을 나는구나
2월의 제철음식 - 새조개
겨울 별미로 손꼽히는 새조개. 속살이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새조개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남당항의 '한송이네집'. 샤부샤부를 주문하자 무, 파, 팽이버섯, 바지락 등을 넣고 물을 가득 부운 납작한 냄비를 식탁 위 가스렌지에 얹어준다. 국물이 팔팔 끓으면 새조개를 담근다. 20초쯤 지났을까. 새조개가 탱탱하게 익으면서 새의 '머리'와 '부리'가 발딱 일어선다. 영락없이 자그마한 새 모양이다.
한송이네집 주인 한연구(47)씨는 "모양도 그렇지만, 새처럼 빠르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새조개를 잡아다 수조에 넣어두면 부리로 바닥을 짚고 껑충껑충 뛰어다녀요. 하도 빨라서 나는 새 같다니까요." 그러니까 부리처럼 보이는 부분은, 실제로는 새조개의 발이란 소리다.
남당항이 지금은 새조개로 유명하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에 새조개는 없었다. 남당항 토박이들은 "1984년 천수만을 간척하면서 새조개가 나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간척을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황토를 바다에 부었는데, 그때부터 새조개가 잡혔어요. 그전에는 새조개를 알기는커녕 구경도 못했죠." 새조개는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는 만 안쪽, 수심 3~20m쯤 되는 연한 개흙에서 잘 산다. 천수만이 들어서면서 새조개가 살기 이상적 조건이 갖춰졌고, 어디선가 새조개가 찾아와 번성하게 된 것이다.
뜨거운 국물 속에서 탱탱하게 익은 새조개. 정말 새처럼 생겼다. 냄비 속새조개는 연출한 것으로, 실제로는 국물에 둥둥 뜰 뿐‘머리’를 곧추 세우지 않는다.
볶아도 먹고 무쳐도 먹고 날로도 먹지만, 새조개는 역시 샤부샤부로 먹어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탱탱한 조갯살을 깨물면 육즙이 스며 나와 입안을 흥건하게 적신다. 노골적으로 강하지 않으면서 디테일은 충분히 섬세하게 살아있는 감칠맛. 그야말로 우아하다.
새조개를 서너 개만 담가도 맑았던 냄비 속이 뿌옇게 변할 만큼 농축된 풍미가 녹아난다. 여기에 죽이나 칼국수를 끓여 먹으면 기가 막히다. 젊은 사람들은 라면을 더 선호한다. 지방은 다른 맛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라면 국수에서 녹아 나오는 기름이 새조개의 단맛을 폭발시킨다. 이때 포인트는 라면 수프를 넣지 않는 것이다. 수프의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새조개 감칠맛을 가린다. 정 심심하면 면발에 수프를 살짝 뿌린다.
해산물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잘 안다는 일본 사람들이 새조개를 모를 리 없다. 그들은 옛부터 새조개를 '도리가이(トリガイ·새조개)'라 부르며 최고급 초밥 재료로 인정했다. 전남 여수와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50여 년 전부터 새조개를 대량 번식해 일본에 수출했다. 일본으로 전량 수출됐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새조개를 잘 몰랐다. 그러다 1980년대 남당항에서 새조개가 나면서부터 국내에도 알려졌고, 미식가들 사이에서 차츰 소문이 퍼졌다.
새조개는 11월 말부터 5월 말까지 먹는다.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특히 산란을 앞둔 2월에서 3월 사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남당항 사람들은 "5월이 지나면 새조개에 알이 실리는데, 알에 영양을 뺏겨서인지 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남당항에서는 매년 2~3월 새조개 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올해는 1월 18일로 한 달여 앞당겨 축제를 시작했고, 5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 때문이다. 정충규 '남당항 새조개 축제' 사무국장은 "천수만은 타르가 전혀 들어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새조개 맛에는 예년과 비교해 아무 변화가 없어요. 그런데 축제를 2월에 한다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새조개도 기름 피해를 입었구나' 생각할까봐 앞당겨 시작했어요. 같은 이유에서 5월까지 연장했어요. 예년엔 3월부터 5월까지는 주꾸미 축제를 했는데, 올해는 새조개와 주꾸미 축제를 같이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은 새조개. 어린 아이 주먹만하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정충규씨는 "신문하고 방송에서 도와준 덕분인지 요즘은 찾아오는 사람 숫자가 예년과 비슷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말이면 1만여 명, 주중 3000여 명이 남당항을 찾는다고 한다.
어른 남자 집게·가운데 손가락만한 굵은 새조개는 1㎏에 12개쯤 되고 4만원쯤 받는다. 1㎏은 껍데기를 제거하고 살과 내장만 잰 무게. 남자 어른 둘이서 먹기에 약간 아쉬운 정도 양이다. 이보다 조금 가는 새조개는 1㎏에 18개쯤이고 3만5000원, 새끼손가락 크기로 잰 새조개는 1㎏당 30여 마리에 3만원쯤 한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씨알 굵은 새조개를 먹는 편이 쫄깃한 육질과 감칠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바람이 세게 불거나 물때가 맞지 않아 출항하지 못하는 날은 가격이 1만원쯤 오른다. 포장도 가능하다.
대부분 가게에서 새조개를 주문하면 키조개, 가리비조개, 굴, 개불, 멍게 등이 푸짐하게 접시에 담아 먼저 내오고, 이어 샤부샤부로 먹도록 새조개와 냄비를 내온다. 냄비에 담긴 국물은 집집마다 다르다. 한송이네집(010-7634-3446)에서는 무, 파, 바지락, 팽이버섯 등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붓는다. 칼국수 사리는 1인분 2000원, 라면 사리는 1000원 받는다. 죽을 끓여도 기막히지만, 손이 많이 가서인지 해주는 식당이 없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 홍성IC나 광천IC에서 빠지면 '남당항'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새조개 축제' 깃발과 플래카드가 워낙 많아 길 잃기가 더 어렵다. 서울에서 홍성까지 약 2시간 30분, 고속도로를 나와 남당항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문의 홍성군 문화관광과 (041)630-1224, tour.hongseong.go.kr
홍성=김성윤 기자 gourmet@chosun.com
입력시간 : 2008.02.20 23:52